2024-04-20 14:54 (토)
남 모르게 복 짓는 무위행(無爲行)
남 모르게 복 짓는 무위행(無爲行)
  • 도명스님
  • 승인 2022.08.29 2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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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복은 쌓은 대로 가고 죄는 지은 대로 간다. 인과가 분명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세간에서 떠도는 복에 대한 오해의 말이 있는데 복을 많이 지으면 지은 죄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죄가 50일 때 100의 복을 지으면 50만큼의 죄와 복은 상쇄되고 50의 복은 남는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자신이 지은 죄는 복이 많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 죄의 과보는 크든 작든 지은 그대로 받아야 한다. 물론 복이 커지면 죄가 상대적으로 작아져 보이게 되는데, 비유하면 어린애일 때 들지 못하는 무게를 어른이 되면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현재 생존해 계신 대만의 성운대사는 "혼자 있을 때는 좋은 생각을 하고, 둘이 있을 때는 좋은 말을 하며, 셋이 있을 때는 좋은 일을 하라"고 하셨는데 복을 짓는 방법의 핵심을 말씀하셨다. 선업이든 악업이든 신(身), 구(口), 의(意) 즉, 행동과 말 그리고 생각으로 짓게 되는데 성운대사의 짧은 말씀 속에 행복으로 가는 길의 핵심이 담겨있다.

또 복을 짓는 좋은 방법은 남모르게 선행을 많이 하는 것이다. 불가에서 흔히 `음덕(陰德)을 많이 지으면 귀신도 못 잡아간다`라는 말을 한다. 이때 음덕이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남모르게 하는 선행으로 무위행(無爲行)이라 한다. 성경에서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과 같다. 이러한 음덕이 많이 쌓이면 운명조차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무위행에 관한 옛이야기가 하나 전해 온다.

옛날 어떤 한의사가 복을 짓기 위해 만 명의 가난한 사람을 무료 치료해 주기로 원을 세웠다. 그래서 한 사람을 치료해 줄 때마다 콩알을 하나씩 말통에 넣어 숫자를 세었다. 한해 두 해 가난한 사람에게 대가 없이 치료해 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의 말통도 점점 채워져 갔다. 근 삼십 년 가까이 치료를 해준 어느 날 저녁 콩알이 몇 개인가 세어보니 만개가 넘었고 그는 자신의 목표가 이미 달성되었음을 알았다.

세월이 좀 더 흘러 그 한의사는 세상과 인연이 다하여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했고 저세상에서 옥황상제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 망자의 공과(功過)가 적혀있는 치부책을 꼼꼼히 살펴보던 상제 왈 "이 의사는 세상에 있을 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상(無償)으로 침을 놓고 약을 지어 주었으니 그 복이 매우 크다. 저승사자는 이 사람을 중품(中品)의 극락세계로 안내하라" 하였다. 복 짓고 착한 사람들이 간다는 극락은 상, 중, 하의 단계가 있는데 중품이란 최상이 아닌 중간의 극락을 말한다. 순간 한의사는 "옥황상제님 그 판결에 이의 있습니다" 하였다. 상제는 의아해하며 그에게 말해보라 하였다. "상제님 제가 평생동안 만 명이 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침과 약을 주어 치료하였습니다. 이러한 저의 커다란 공덕을 감안하면 중품이 아닌 상품(上品)의 극락세계로 보내 주심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하고 항변하였다.

이야기를 경청하던 상제는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를 보며 말하길 "그대의 말은 잘 들었다. 사실 그대의 공덕은 매우 크다. 그러나 나의 판결은 옳다. 왜냐하면 그대의 공덕으로는 상품의 극락세계는 가지 못한다. 그곳에는 복을 짓되 공덕을 바라거나 생색을 내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결코 가지 못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순수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도와주어야 하며 조금도 그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야 가능하다. 그런데 그대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줄 때마다 콩알을 세며, 그 공덕으로 자신이 극락 가기를 원하지 않았었느냐?, 타인을 위한 행동 속에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고 있지 않았느냐?" 하고 반문했다. 상제의 말을 듣고 있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였고 기쁜 마음으로 중품의 극락세계로 향했다고 한다.

크든 작든 남을 돕는 것만도 훌륭한 일이며 분명한 인과가 있다. 그러나 순수한 선행이 아닌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나 칭찬을 받기 위해서 또는 이익을 바라는 선행은 그 의미가 퇴색되어 버리기 쉽상이다. 선행에 대해 인정받고 박수받는 것만으로도 일부 보상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선행은 자신의 입장이 아닌 타인의 입장만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선행은 남이 알아주든 몰라주든 그 자체로 마음 뿌듯하고 스스로 기쁨이 샘솟게 되는 힘이 있다.

물론, 이러한 무위의 선행을 늘 하면 좋으련만 처음부터 순수한 마음을 갖기는 어렵다. 처음에는 과보(果報)를 바라고 선행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서 꾸준하게 선행을 하다 보면 타인을 돕는 그 자체가 즐겁고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운명은 자신의 반복된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으로 만들어진다. 평소의 자기 습관에 따라 복을 짓는가 복을 까먹는가 하는 자기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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