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17:39 (목)
"통역ㆍ상담으로 베트남 이주민 도울 수 있어 행복해요"
"통역ㆍ상담으로 베트남 이주민 도울 수 있어 행복해요"
  • 황원식 기자
  • 승인 2022.08.25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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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인터뷰

정미숙 주민대표(김해시 베트남공동체)

시청ㆍ경찰서ㆍ법원ㆍ회사ㆍ병원 등 한국어 서툰 이주민 도와
김해시 방역행정 노력 인정 표창… 고향 언니처럼 마음 살펴
이주민 대상 가정폭력 상담ㆍ교육 "서로 문화 이해 노력해야"

남편한테
폭력 당할 때
피해 사실을
외부로 알릴
제도 갖춰야

베트남 출신 결혼이민자 정미숙(김해시ㆍ44) 씨로부터 인터뷰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는다고 연락이 왔다. 알고 보니 그가 통역하면서 알게 된 이주민이 갑자기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그 절차를 도와줘야 했던 것. 이외에도 이주민들이 가족과 갈등이 생기거나, 법적인 사건에 휘말릴 때, 비자나 교통문제가 있을 때, 일상생활 중에도 미숙 씨를 찾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특히 김해시에는 베트남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이 있어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을 돕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실제 그의 다이어리에는 일주일 스케줄이 가득 차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오거나 베트남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않기 때문에 통역이 필요한 경우가 많이 있어요. 결혼이민자들 경우에도 한국어를 배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역시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민자라고 쉽게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정미숙 씨는 올해 한국에 온 지 17년째이다. 통역을 한 지는 10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김해 여성자치회에서 이주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다가 김해중부경찰서 외사계를 도와 통역을 시작하게 됐다.

지난해부터는 김해시 베트남 외국인공동체 주민대표로서 활동하고 있다. 김해시 여성가족과, 김해중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과와 긴밀히 소통하며 코로나19 방역 관련 역학조사와 통역지원, 외국인 주민 정책지원사업과 복지대상자 발굴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지난 12월에는 김해시 코로나19 방역행정에 적극 기여한 공로로 김해시로부터 표창을 수여받기도 했다.

◎한국어 배움 위한 피나는 노력

김해시 내외동 카페에서 베트남 외국인공동체 주민대표 정미숙 씨를 만났다. 그는 김해 거주하는 베트남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10년 넘게 통역과 상담을 하고 있다.
김해시 내외동 카페에서 베트남 외국인공동체 주민대표 정미숙 씨를 만났다. 그는 김해 거주하는 베트남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10년 넘게 통역과 상담을 하고 있다.

정미숙 씨는 다른 이민자들보다 훨씬 빠르게 한국어를 습득한 경우다. 그는 한국에 오자마자 한국어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남보다 몇 배는 더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죽을 만큼 열심히 배웠어요. 처음에는 제가 개인적으로 한-베 사전을 사서 공부를 했어요.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아이가 생기면서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더 급하게 한국어를 배웠어요. 아이가 4살 되면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동사무소, 김해 라함센터 등 하루에 2곳에서 한국어를 배웠어요. 원래 다른 사람들은 일주일에 2일 정도 다니는데 저는 일주일에 4일, 오전과 오후 수업을 들었어요. 저는 끝까지 한국에 살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만큼 더 노력한 거예요."

정미숙 씨도 이주민에 대한 차별로 한국 적응에 어려움도 있었다. 한 번은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는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을 줄 수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또 문화가 달라서 생기는 오해도 있었다.

"예를 들어, 베트남에서는 어른들 앞에서 팔짱을 끼면 존경한다는 뜻인데, 한국에서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또한 한국 사람들은 인사성이 밝은 반면, 베트남에서는 인사를 잘하지 않는 문화입니다. 이런 차이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오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나중에서야 그 차이를 알게 됐고, 적응하게 됐죠."

한국 생활의 좋은 점도 이야기했다. 정씨는 "한국 사람들이 따듯한 마음, 정(情)이 많아서 힘들 때 많이 위로해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며 "또 어디에 가든 안전하게 다닐 수 있고 편리하다. 한국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남편과 가족의 격려로 한국어 실력도 늘고, 한국 생활에 빨리 적응하게 됐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미숙 씨는 한국 생활 중에서 가장 좋았던 일로 통역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된 것을 꼽았다. 통역은 원래 그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많은 이용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이주민들과 한번 연결이 되면 계속 저를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끝까지 가는 것이죠(웃음). 오늘 병원에서 퇴원한다고 전화 왔던 그 분도 몇 년째 알고 지낸 사람입니다. 피곤한 날에는 다른 사람 연결해주겠다고 해도 이용자들은 `안 된다`고 고집합니다. 저보다 통역을 잘하는 사람이 많은데도, 저를 언니처럼, 가족처럼 느껴서 인연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족들과 대화도 못 할 만큼 바쁜 날도 많다. 코로나19 확산세가 한창일 때는 외국인들의 역학조사를 돕기 위해 오전 8시 30분에 보건소로 출근해 밤 10시가 넘어 집에 들어올 때도 많았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컸다.

"시어머니 말씀은 제가 김해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라고 합니다(웃음). 어느 날 고향 동생들이 커피한잔 하고 싶다고 해도 예약을 안 하면 저를 못 만납니다. 통역 일이 원래 이렇게 바쁩니다." 그런데도 그는 통역에서 큰 만족을 느끼고 있었으며 앞으로도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통역 일을 하면서 베트남 출신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이 갑니다. 한국에서 잘사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은데, 안 좋은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마음이 안쓰럽죠. 그래도 제가 도움을 줘서 문제가 해결되면 정말 보람을 느낍니다."

◎언어 미숙 원인 가정폭력 개선을

정미숙 씨는 10년 넘게 경찰서 외사계에서 의뢰받아 통역 일을 하면서 대부분 다문화가정 불화 사건을 맡았다. 그러다 보니 가정폭력 상담과 교육으로까지 영역을 넓혔다. 현재 김해여성회 부설 가정폭력상담소에서도 베트남 이주민 대상 가정폭력 피해 전문 통역사를 하고 있다.

그는 수많은 다문화가정 폭력 사건을 접하면서 소통 때문에 오는 사회 부적응을 극복하기 위해서 서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결혼 이민자의 경우 한국어를 배우도록 노력해야 하며, 특히 배우자(남편) 또한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조건 강압적인 태도로 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언어가 다른 사람이 한국에 오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한국어를 못한다고 나무랄 것이 아니라,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가까운 주민센터 등을 통해 이주민을 위한 기초 교육프로그램을 알아보고 관련된 정보도 얻을 수 있어요. 그래서 아내가 남편에게 의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바라요. 아내가 한국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부탁해요."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했을 때 피해사실을 외부로 알릴 수 있는 제도도 갖춰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결혼 이주 여성의 경우 남편이 신원보증을 하지 않으면 미등록 체류자가 되는 경우도 있어 폭력을 참고 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어요. 피해를 외부로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제도와 분위기 변화가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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