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9:51 (금)
나라 밖을 내다보자 19
나라 밖을 내다보자 19
  • 박정기
  • 승인 2022.08.22 20: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링컨이나 그랜트는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내가 `남북전쟁`을 쓸 때도 그날 항복 장면을 서술하는 데 애를 먹었다. 이 사람들의 심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승자가 어떻게 패자를 저렇게 대접할 수 있는가.

장교들은 무기를 갖고 가도 좋고, 병사들은 말도 끌고 가라. 운동시합이 끝난 게 아니다. 4년이나 끈 참혹한 전쟁이다. 젊은이가 60만 명이나 희생된 싸움이다. 어디다 대고 말을 달라, 총을 달라고 하는가.

나는 혼란스런 나머지 그때 상황을 이렇게 썼다. "인심 후한 그랜트, 사람 좋은 리가 만났기 때문"이라고. 그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 장의 제목도 아예 `좋은 사람들`이라고 붙였다. 호인들의 친선회담이라고 얼버무렸다.

리는 위대한 군인이기도 하였지만 선량한 민초였다. 그는 부하를 아끼고 고향을 끔찍이 사랑하였다. 자신은 노예제도를 반대하면서도 노예제를 인정하는 버지니아를 버리지 못하였다. 그 때문에 링컨이 제안한 북군 사령관 자리도 사양하였다. 그는 명분을 내세우거나 섣부른 이념 따위를 주장하는 법도 없었다. 그는 영웅의 법칙을 굳이 외면하였다. 순수한 사람이요, 순수한 군인이었다. 신화를 낳고 전설의 주인공이 된 것도 바로 그의 착한 성품, 민초로 시종했기 때문이다.

그랜트는 그럼 어떤 사람인가? 그의 사람됨을 묘사한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천성이 조용하고 잘난 체를 모르는 말 없는 사나이. 그러나 그가 입을 열면 부하들은 주의 깊게 경청하고, 종이에 기록하기 일쑤였다. 그의 말은 직선적이요, 내면을 뚫어보는, 문제의 핵심이 손에 잡힐 듯 명쾌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의 결단은 단호하고도 신속하였다.` 그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아내 줄리아의 남편 평이다. "그이는 전쟁 얘기는 생전에 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빅스버그를 점령했을 때도 편지에 한 마디도 쓰지 않았어요. 그는 남군을 늘 측은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또한 남의 아픔을 헤아릴 줄 아는 순수한 군인이었다. 그의 아내 줄리아는 동기생 덴트의 여동생이었다.

"오빠는 율리시스(그랜트의 이름)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늘 칭찬했습니다. 식구들한테도 침이 마르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요. 그리고 내게는 `율리시스는 말이야 내가 만난 친구 중 최고의 남자거든. 그 녀석은 정말 순금 같은 사내`라고 말했습니다" 순금 같은 사나이? 하필이면 순금에다 비유했을까? 줄리아의 말을 통해 그랜트 역시 순수한 인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부하들을 사랑했던 두 사나이, 순금처럼 순수하고 천성이 착한 두 사람은 영웅의 법칙에 따라 무섭게 싸웠다. 그러나 전쟁을 끝내는 소임이 두 사람에게 맡겨졌을 때 그들은 전쟁을 이런 식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겐 승자도 패자도 큰 의미가 없었다. 명분도 관례도 큰 의미가 없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