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4:14 (금)
한국 붕당정치의 민낯
한국 붕당정치의 민낯
  • 이광수
  • 승인 2022.08.2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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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주역 의리파의 종주인 정이(程伊:정이천)은 <정전>에서 `천리(天理)와 천명(天命)이 행하는 일에 순종하는 것이 의(義)에 합당하고 명(命)에 순응함이다. 의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명은 천명으로 바른 이치(正理)이다. 의를 잃음은 바른 이치를 잃음이요, 하늘의 명에 따르지 않음이다. 의와 명에 합당해야 함은 환란에 처한 사람이 취할 태도이다. 무릇 환란에 처한 자는 반드시 올곧음과 올바름을 지켜야 한다. 설사 환란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해도 바른 덕을 잃지 않으면 결국 환란에서 벗어나게 된다. 만약 환란을 만나 바름을 굳게 지키지 못하고 사악함과 탐탐(耽耽)함에 빠져 환란을 모면할 지라도 역시 악덕이다. 의와 명을 아는 자는 결코 그러하지 않는다`고 했다. 언 듯 공리공론의 현학적 수사로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현 정치판을 들여다보면 필자가 왜 이런 말을 인용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정치결사체인 정당의 설립목적은 권력쟁취이다. 그러나 아집과 독선, 내로남불과 후안무치가 난무하는 한국의 정치판은 조선시대의 망국지병인 붕당정치와 다름없다. 정권 사수에 실패한 야당은 선거패배의 원인 규명과 혁신은 뒷전으로 밀린 채, 누가 권력의 헤게모니를 잡느냐에 혈안이 되어있다. 대선패배의 반성은 고사하고 근소한 표차로 선거에 진 것은 단지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탄식한다. 한편, 천신만고 끝에 권력을 되찾은 여당은 의회 열세의 덫에 갇힌 반쪽짜리 승리임에도 불구하고 논공행상의 밥그릇을 놓고 차기당권경쟁으로 사분오열이다. 국정쇄신으로 성공한 정부를 만드는 일에 일심동체 합심해도 모자랄 판에 죽 쑤어 뭐 주는 형국으로 자중지란이다. 여든 야든 국민의 정치 불신을 말끔히 청산하고 생산적인 정치를 해야 함에도 반성 없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으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는 선진한국의 위상과는 거리가 먼 쑥시기판과 다름없다. 앞서 정이가 말한 명과 의를 모르는 사람이나 설령 알아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제물치용(濟物致用)의 도를 망각한 허장성세일 뿐이다. 대중을 구제할 수 있는 쓰임이 있지만 대중에게 미치지 않으면 그 쓰임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치가 국민의 삶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하는 데 쓰임 받지 못하면 오히려 그 국민에게 분열과 대립과 고통만 안겨준다. 공자는 <십익>에서 `본성을 완성하고 본성을 보존함이 도의(道義)의 문(門)이며, 궁리진성(窮理盡性,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본성을 다해 천리에 이름)하여 명에 이른다. 리(理)는 성(性)이고 명(命)이니 이 셋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니며 궁리는 진성이고 진성은 지천명(知天命)이다. 천명은 천도와 같아 그 작용을 두고 말하며 명이라 일컫는다.`고 했다. 리(理)와 욕(慾)의 관계에서 자신을 닦는 도리에서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분노와 욕심이니, 그 분노를 징계하고 욕심을 덜어 천리를 회복해야 올바름이 된다는 뜻이다. 바름의 궁극은 마음을 비워 내가 없음을 말한다.

지금 우리 정치판을 바둑판 위에 올려놓고 흰 돌과 검은 돌로 가정해 판단해 보면 앞서 언급한 명과 의에 어떤 수로 응수해야 할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공(公)은 사(私)를 죽여야 살아난다. 사가 공을 누르면 본말(本末)이 전도된다. 정치 불신은 국가발전을 가로막는 암적인 존재가 되고 국론분열과 지역갈등의 진원지가 된다. 그런 정치는 이제 이 땅에서 진작 사라질 때가 되었다. 조선 500년을 망국으로 몰고 간 붕당정치의 악폐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천우신조 기적처럼 이룩한 오늘의 번영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하늘의 준엄한 명과 의에 따라 의로움이 충만한 사회를 위해 우리 정치인들은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성심으로 분골쇄신(粉骨碎身)해야 함은 당연지사이다. 당쟁에 취한 무능한 정치권력은 성난 민심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가 국민의 품격을 고양하지 못하면 그 정치는 존재할 가치조차 없다. 정치가 갈지자 걸음을 하면 공무원들은 권세에 좌고우면한다. 세금만 축내는 삼류정치인들이 판치는 세상은 결국 전체주의 탄생의 빌미가 된다. 지금 세계 곳곳에는 그런 나라들이 장기독재체제를 유지하며 건재하고 있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돈의 국제정세를 외면한 채 정쟁으로 날밤 지새울 때가 아니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정길회망(貞吉悔亡)이라 했다. `바르게 행하면 길하니 후회함이 없다`는 뜻이다. 천하가 돌아감은 같지만 길은 다르며 이치는 하나이나 생각은 백 가지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는 하나이니 그 길은 비록 다를지라도 궁극의 지향점은 하나이며 정치의 최종목적은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일이다. 맹자가 말한 `불위야 비불능야(不爲也 非不能也, 안 하는 것이지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님)`를 통찰해야 할 중차대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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