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5:01 (금)
소설 같은 정치가 주는 허무
소설 같은 정치가 주는 허무
  • 경남매일
  • 승인 2022.08.18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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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의 주인공은 자격
미달이다 악한으로 설정돼
있는데 선인으로 그리다
보니 국민이 헷갈린다
서향만리류한열 편집국장
서향만리류한열 편집국장

요즘 정치판은 소설 같은 이야기를 뿜어낸다. 여당 쪽에선, 이준석 전 당 대표가 내부 총질 주범으로 몰리고, 며칠 전까지 당을 이끌던 사람은 대통령을 저격하고 당을 낭떠러지로 몰아붙인다. 매일 벌어지는 예상을 뛰어넘는 사건에 눈을 뗄 수 없다. 야당 쪽에선, 당헌 개정을 시도해 이재명 예비 당 대표를 살리기 위해 방탄복을 입히기까지 갔다 겨우 손을 놓았다. 이재명 개인 한 명 살리자고 당을 찢는데까지 갈뻔했다. 소설은 재미있지만 소설 같은 정치는 국민을 피곤하게 한다. 요즘 민감한 정치 사안은 재미가 있지만 관심을 기울이고 좇아가면 가슴앓이를 해야 한다. 일반 국민은 정치가 돼가는 꼴을 보면서 분개하기도 하고 허탈해하기를 반복한다. 구멍 뚫린 가슴을 안고 일상생활을 할 수 없어 정치인에게 분개만 할 뿐이다. 정치 무관심의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원래 정치는 소설 같은 것"이라고 푸념해도 속이 시원하지 않다.

소설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을 일어날 것처럼 이야기로 꾸밀 때 재미있다. 독자가 현실에서는 이런 인물이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보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끝까지 읽는다. 당 대표에 물러난 사람과 당 대표가 되려는 사람을 보면서 까도 까도 솟아나는 상식을 뒤엎는 이야기에 많은 사람은 속앓이를 했다. 바로 허탈감이다. 보통 소설은 감동을 남기고 끝을 맺지만 이런 정치 사태는 허망함을 안겨준다.

여러 소설 종류 가운데서도 역사소설이 가장 재미있다. 역사소설은 일단 스케일이 크고 사실을 바탕에 깔기 때문에 너무 허무맹랑하지 않아서 좋다. 인류 역사에서 최고의 정치 사건을 택하면 프랑스 혁명이 둘째가라면 서럽다. 루이 16세가 1789년 과세 승인을 위해 소집된 삼부회를 무력으로 탄압해 프랑스 혁명을 유발했다. 성난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부숴 폭동이 일어나면서 프랑스 혁명이 들불처럼 열기를 더했다. 그 후 자신의 측근이 죽자 고립된 루이 16세는 의회에 무시당하고 파리 시민들에게 굴욕을 당한다. 루이 16세는 처형 투표에서 과반수 이상이 찬성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소설 프랑스 혁명`을 읽으면 너무 흥미진진하다. 프랑스 혁명을 대충 알고 읽는 사람은 혁명의 이면을 알수록 재미에 빠진다. 루이 16세의 비참한 최후는 소설의 재미로 보면 최고조에 속한다.

역사는 반복되고 그 역사를 통해 교훈을 배운다. 하지만 역사를 읽으면서 교훈을 배우기가 만만찮다. 사람들 대부분은 역사의 행간을 읽는 능력이 부족하다. 역사를 재미 이상으로 보는 식견이 있어야 어리석은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역사를 꿰뚫어 보면 미래를 보는 혜안이 생긴다. 우리 현대사의 질곡에 빠진 지금, 미래를 예견해 더 큰 불행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이 또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다.

정치인은 현재 정치판을 보면서 가슴앓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빨리 풀어줘야 한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자기 쪽으로 틀어 역류시키려는 부류나 지류를 만들어 자기 이름을 내려는 사람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정치판에 등장하는 온갖 소설적인 재미에 씁쓸한 마음이 더해진다. 현재 여야가 만드는 정치는 나만 있고 너는 없다는데 꽂힌다. 정치는 항상 두 세력이 부딪치게 돼 있다. 진보와 보수, 이상과 현실 아니면 좌파와 우파가 머리를 맞대 싸우면서 어떤 때는 극한 상황까지 부른다. 하지만 요즘 우리 정치는 너무 소설 같다. 자격 없는 사람이 주인공을 자처하니 정치 소설이 재미가 없다.

소설을 이끄는 주인공은 여러 부류가 있다. 끝없이 선하거나 끝없이 악하거나, 주인공의 성격과 행동을 잘 그려야 소설이 성공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정치판의 주인공은 자격 미달이다. 악한으로 설정돼 있는데 선인으로 그리다 보니 국민이 헷갈린다. 자기 역할에 맞게 대사를 쳐야 하는데 정반대의 언사를 쏟아내 짜임새가 허물어졌다. 매력적이지 못한 주인공이 소설 테마를 이끌고 가면 독자는 중간에서 책을 덮는다. 심지어 책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린다. 우리 정치판 주 무대에서 설치는 사람이, 잘 못 쓴 소설을 끝까지 읽다 허무에 빠지듯, 정치 무관심으로 더 몰아갈지 우려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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