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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ㆍ청시대의 역학자 ①
명ㆍ청시대의 역학자 ①
  • 경남매일
  • 승인 2022.08.17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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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연구가 이 지산

명대의 주역은 정주(程朱)만을 존숭하고 송학(宋學)을 정통 관방사상(官方思想)으로 떠받들어 팔고문(八股文: 명청시대의 과거고시문체)으로 관료를 선발하고 사서(四書)는 주희집주에 의거토록 규정했다. 그리고 문자옥(文字獄)을 일으켜 이단사상과 이설(異說)을 철저히 배척하고 탄압했다. 명대의 역학저작은 200여 종, 청대는 460여 종에 달했으며 그 내용을 보면 명ㆍ청시대는 송역과 한역(漢易)이 서로 대립했다. 송역은 상수학과 의리학으로, 한역은 문헌학과 고거학(考據學)의 방법으로 역을 해석했다. 

명대의 송역학자인 호광(胡廣)은 영락제의 칙명으로 41명의 학자들과 함께 <주역전의대전:周易傳義大全>을 편찬했다. 이 책은 명나라 초기 사상통일을 위해 반포한 <리학대전:理學大全3부>중 하나인<오경대전>의 일부이다. <주역전의대전>은 <이천역전>과 <주역본의>에 근거해 다른 여러 학설을 채집해 집설했다. 이 책은 명대 200여 년간 과거시험의 표준이 되었다. <사고전서총목제요>에는 `명대역학이 처음 학문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바로 이 책 때문이고, 그 뒤에 고루함을 면치 못하게 된 것도 이 책 때문이다.`고 비판했다. 이는 <주역전의대전>이 주역의 다양한 연구방법을 가로막는 장해물이 되기도 했지만, 역학초심자들은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독역여언>을 지은 최선(崔銑)은 <이천역전>을 위주로 왕필과 오징의 학설을 아울러 채집해 주희의<주역본의>와는 다르게 상수를 배제하고 의리를 강조했다. 그는 진단(진희이)이 전한 도서상수학은 역의 본뜻과는 무관하며 유가의 괴변설도 취할 바가 아니라고 했다. 또한 <역경몽인>을 지은 채청(蔡淸)은 주희의 <주역본의>를 근거로 역을 연구했으나, 공자의 `상전`과 `문언전`에서 6효가 용구(用九)인 건괘 위주로 말한 것을 주희는 이 설을 주장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 밖에 건괘효사에 대한 주희의 해석이 공자의 해석과 여러 부문에서 어긋남을 지적하고 재해석했다. 채청은 명대역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최선의<독역여언>, 응과의 <주역상지결록>, 임희원의<역경존의>, 진심의 <역경천설> 등은 모두 채정의 <역경몽인>을 이용하고 계승해 자신의 역학론으로 발전시켰다. 명대 중기에는 왕양명의 심학(心學)이 굴기하자 그 학술이 역학에 영향을 끼쳐 반영되었다. 고반룡의 <주역이간설>은 심학으로, 초힁의 <역전>과 방시화의 <역인>은 불경과 선학으로 역을 해석하여 심학과 불교, 선학이 주역해석에 뒤섞여 역해석의 새로운 방법론이 대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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