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1:47 (금)
김해시사(金海市史) 유감
김해시사(金海市史) 유감
  • 도명스님
  • 승인 2022.08.15 1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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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스님 <br>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기록하는 자가 승리한다. 그래서 적국을 정복하고 나서는 그 나라의 역사서를 불태우기도 하고 자국의 관점에서 역사서를 다시 편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주변국의 침탈로 인해 고대의 사서들은 거의 유실되었으나 그나마 다행히 김부식의 삼국사기나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덕분에 잃어버린 고대사를 상당히 되살릴 수 있었다.

국가에 대한 역사서처럼 지방에도 예부터 지방의 역사와 인문ㆍ지리를 기록한 면지(面誌), 군지(郡誌), 읍지(邑誌) 등이 있었고 근래에는 시사(市史)가 있다. 김해는 1929년에 발행한 김해읍지가 있었는데 이후 새로운 시지(市誌)를 제대로 편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2017년, 허성곤 전 김해 시장 재임 시에 야심차게 20억 원의 예산을 책정하여 김해시사 편찬위원회를 구성하고 시사를 편찬하기로 하였다. 편찬위원회는 시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실질적으로 시사의 골격을 짜는 부위원장은 이영식 전 인제대 교수가 맡았다.

몇 년 전 김해 시사가 새로 편찬된다는 소식을 듣고 가야문화진흥원 측에서도 위원회에 연락하여 가야불교에 관한 원고를 실어달라고 요청하였다. 전문 학자도 아닌 스님들이 그러한 요구를 하게 된 배경에는 가야사 주류 사학계의 가야 초기불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 때문이었다. 시사는 사람이 쓰는 것이라 시사편찬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허왕후를 신화화하고 가야초기의 불교도래를 부정하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사사의 내용은 불 보듯 뻔할 것이었다. 특히 이 교수는 저서에서뿐 아니라 가야초기의 불교도래는 인정하기 어렵다는 말을 자주 하여 왔는데,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작년 8월경 어느 분이 "스님 김해 시사 수정 기간인데 보았는지요?, 수정할 부분이 한두 군데면 몰라도 참 난감합니다"하곤 허탈해하였다. 그래서 시사를 열람해보니 몇몇 학자들이 쓴 `가야는 임나이다`라는 문제의 소지가 많은 주장뿐 아니라, 조원영 합천 박물관장은 아예 가야 초기의 불교도래를 조목조목 부정하는 논문을 싣고 있었다. 그는 허왕후를 신화화하고 장유화상을 조선 후기에 창작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었다. 심지어 김태식 교수는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세기의 로맨스를 `낙랑군 상인의 염문설화`라고 폄하했다. 무슨 뚜렷한 문헌적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닌 추정으로 왕과 공주인 가락종친회의 시조를 상인으로 격하했다.

그리고 얼마 후 시사편찬위원회에서 불교계로 삼국유사의 금관성 파사석탑조에 나와 있는 부분을 수정하라는 요구가 들어왔다. 내용인즉 원문은 <然于時 海東末 有創寺 奉法之事> "그럴 때 해동의 끝에서는 절을 짓고 불법을 받들었다"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위원회에서는 원문이 <然于時 海東 未有創寺 奉法之事> "그럴 때 해동에는 절을 짓거나 불법을 받들지 않았다" 인데 왜 원문을 자의적으로 수정하냐고 지적하고 원문대로 할 것을 요구하였다. `末`이냐 `未`냐 하는 글 한 자에 따라 내용이 정반대로 달라지는데, 원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이는 불교계가 아니라 쓰보이 구메조라는 일본의 역사학자였다. 지금 국보와 보물로 되어 있는 서울대 규장각본과 고려대 소장본에도 분명히 "해동의 끝에서는 절을 짓고 ~"로 기록되어 있건만 식민사관에 물든 우리 역사학계는 아직도 쓰보이 구메조가 조작한 "해동에서는 절을 짓거나 불법을 받들지 않았다"로 해석하고 있다. 위원회의 수정 요구 시에도 분명히 판본을 보여 주었건만 가락종친회로 보내온 답변에는 과거의 기조를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증거를 보내 주었는데도 일제 관제사학자의 조작된 근거를 계속 따르는 시사편찬위원회의 의도가 무엇인지 매우 궁금하다. 김해에 서기 48년 허왕후와 파사석탑이 오고, 불교가 도래하면 무슨 큰일이 나는가.

시사편찬의 목적은 시에 전해오는 역사ㆍ인문ㆍ지리를 편찬하여 사라져 가는 시의 역사를 보존하고 이를 통해 시민들이 자긍심과 애향심을 가지는 계기를 만드는 데 있다. 그러나 작금의 시사를 보면 통사(通史)가 아닌 논문집 형식이라 어색하고 일반 시민이 보기 어렵다. 다른 도시들은 남아 있는 역사 유물들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애쓰건만 김해시사에는 문헌에 있는 가야불교의 역사를 부정하고, 파사석탑을 고려 시대의 탑이라는 추측성 논문을 실어 그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시사편찬위원회는 막대한 시민의 세금으로 가야의 역사를 지우려는 이런 일을 해선 안 된다. 누구를 위한 시사인가. `가야를 지우고 임나`를 주장하는 일본 극우를 위한 시사인가. `가야 초기불교는 허구이다`라는 것을 확정하기 위한 시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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