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게이트와 바이킹
스웨덴 게이트와 바이킹
  • 김제홍
  • 승인 2022.08.1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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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제 홍<br>경남도 해양수산국장<br>
김 제 홍
경남도 해양수산국장

레딧(Reddit)이라는 미국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 지난 5월 25일, 레딧에서 `남의 집에서 문화나 종교의 차이 때문에 겪었던 이상한 사건`을 묻는 글이 올라왔고 여기에 세계 각국에서 겪은 많은 사건이 댓글로 달렸다.

여기서 한 사람이, "스웨덴인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 엄마가 식사 시간이 되었다고 부르자 친구가 자기 밥 먹고 올 때까지 방에서 기다리라고 하더라"는 댓글이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네티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스웨덴 사람들이 오히려 인류의 보편가치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통하는 접대의 관습(Hospitality customs)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기 때문이다.

이러한 얘기들이 그동안 `북유럽 선진국`이라는 이름 하에 조명되지 않았던 스웨덴 사회의 음성적인 백인 우월주의 및 인종차별 사례에 대한 얘기로 확대되면서 스웨덴의 과거뿐만 아니라 노예무역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에 우호적이던 행보가 함께 재조명되고 있는데 이를 두고 `스웨덴 게이트(Swedengate)`라고 한다.

그 뒤로 `LoverOfGeoraphy`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재미있는 지도가 나왔는데 손님께 식사 제공을 하느냐에 따라 4가지로 유럽의 각 나라를 분류했다. 재미있게도 5개의 바이킹 국가(스칸디나비아 3국, 덴마크, 아이슬란드)들은 `거의 안 줌`으로 분류된 반면,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와 동유럽에서는 `거의 줌`이라고 분류되었다.

스웨덴의 선조들, 과거 스칸디나비아에 살던 바이킹들은 춥고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 살았기 때문에 이러한 비접대 문화가 생긴 게 아닐까? 이들은 인구증가와 식량부족 때문에 서기 800년 경 새로운 곳으로 대거 이동하게 된다.

그들은 주로 뛰어난 선박제조기술과 항해술을 바탕으로 배로 이동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피오르드(협만(峽灣), fiord) 해안으로 항해술이나 조선술이 발달할 충분한 조건이 되었다. 바이킹들이 조선기술이 뛰어난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들은 목재와 같은 유기물을 가열ㆍ분해해 점성이 높은 검은색 액상 물질인 타르(tar)를 만들고 이 물질로 뛰어난 방수처리를 했다. 바이킹들은 이를 통해 당시 가장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배를 만들 수 있었다.

용수선(Drekar)이라고 불리는 배는 전투선으로 선체가 길고 폭이 좁은데 15~30쌍의 노를 이용해서 뛰어난 기동성이 가지고 있었다. 또 상인들이 사용하던 배를 크노르(Knorr)라고 하는데 배 중앙에 큰 창고를 가지고 있으며 돛을 이용해서 항해를 하였다.

바이킹은 이 배를 타고 지중해는 물론 대서양 해역을 항해하면서 대규모 약탈을 자행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항로가 열리면서 유럽 전역에 대규모 교역이 시작됐다. 자기들이 생산한 모피나 상아, 순록고기 등을 팔고 소금, 비단, 도자기, 포도주 등을 사 갔고, 심지어는 노예들도 사고팔고 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들은 해양물류의 개척자들이다.

세계 최대 물류회사인 머스크(Mearsk)사는 바이킹의 나라 덴마크에 본사를 둔 해운그룹이다. 물경 130개 국가에 320여 개의 사무실 및 터미널을 가지고 있다. 1000여 척의 선박, 190여만 개의 컨테이너를 갖고 있다. 한국에 있는 머스크 코리아의 선박만 550척이다. 부산항 신항에도 가장 규모가 큰(6선석) 제2부두를 머스크가 속한 2M(머스크와 MSC)이 사용하고 있다. 지금도 바이킹의 후예들은 세계 해양물류를 쥐락펴락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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