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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 시대의 역학자
원나라 시대의 역학자
  • 경남매일
  • 승인 2022.08.10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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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연구가 이 지산

송나라가 망하고 원나라가 건국되었지만 한족(漢族)지식인의 한법(漢法)을 행해야 원나라가 번성할 수 있다는 건의를 받아들여 주학(朱學)이 관학(官學)으로 정착되었다. 원대는 주돈이, 정이, 장재, 주희의 전통계보가 공인되어 주학의 지위가 확립됨으로써 역학에도 영향을 끼쳐 원대의 역학은 의리역과 상수역을 절충하는 경향을 띠었다. 역학자 오징(吳澄)은 <오경찬언>을 저술하여 주희역의 미진한 부분을 탐색했다. 그는 한림학사, 태중대부 등 관직을 역임했으나 오래 머물지 않고, 역학을 궁구하여 경학지사(經學之師)가 되었다. 오징은 `복희 3도`를 역의 근본으로 삼아 소강절의 상수역을 추송해 그의 선천역학을 계승해 원대 상수역 발전에 기여했다. <사고전서총목제요>에는 오징이 <찬언>을 지어 한결같이 상(象)을 결단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천지만물의 상이 모두 복희씨의 괘획에 귀일한다고 보았다. 세상 만물은 괘획의 상이 천지의 기(氣)로 융합하여 관통하는 배치에서 나온 결과라는 것이다. 역해집설에 자주 등장하는 호병문(胡炳文)의 <주역본의통석>과 응량보의 <주역본의집성>에서 한역과 왕필역을 절충하거나, <주역본의>처럼 정이와 소옹을 겸하거나 하나로 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증관(曾貫)은 <역학변통>에서 순수하게 의리로만 역을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호체설을 취하기도 했다. 그리고 장리의 <대역상수구심도>와 전의방의 <주역도설>에서는 주역을 도식으로 강론했다. 장리는 `역이란 나의 마음이고 나의 마음이 곧 역이다.`고 추론한 역을 도식으로 그려 해석했다. 이는 상수학파 소강절의 선천역해의 관점에서 역을 해석한 것이다.

한편 도교역학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역학자인 유염(兪琰)이 유명하다. 그는 <독역거요> <역외별전> <주역집성> <서재야화> <주역참동계발휘> <음부경주> 등의 많은 역서를 저술했다. 그가 지은 역서들은 널리 유포되었으며 그 영향력 또한 컸다. 원래 유학자였으나 도교학자로 변신했지만 주학을 숭상해 역을 <주역본의> 위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천리(天理)와 중리(衆理)로 강론하되, 상수를 밝히면서 리가 그 속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하도낙서에 대해서는 주희의 천지지수(55)와 대연지수가 하도낙서로 같다는 것은 부회(附會)라고 비판하고, 상수와 의리의 관계에서 주희는 리를 제1자로 봤으나 유염은 의리가 상수에 종속된다고 했다. 그리고 주역을 빌려 연단술을 강론해 위백양과 소강절의 사상인 천인일체사상을 더욱 체계적으로 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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