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1:12 (금)
260년 전 화원의 깜빡 실수 유물이 되다
260년 전 화원의 깜빡 실수 유물이 되다
  • 김중걸 기자
  • 승인 2022.08.10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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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걸 편집위원
김중걸 편집위원

영축총림 양산 통도사(通度寺) 대광명전(大光明殿)에서 조선시대 채기(彩器ㆍ물감그릇) 1점이 발견됐다. 조선시대 사찰에서 사용한 채기의 원형이 확인되면서 관련 연구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발견된 채기는 단청화승(단청을 그리는 승려)이 단청 작업을 하면서 대광명정 고주기둥 상부 주두(장식 자재) 위에 놓아둔 채기를 깜빡 잊고 단청 작업을 마치면서 채기가 남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깜빡 실수는 260년이 지난 뒤 발견되면서 현세의 우리에게 또 하나의 소중한 유물과 역사 속 이야기를 소환하고 있다. 통도사는 지난 7월 대광명전 단청 기록화 조사를 벌이던 중 후불벽 높이 5m 고주기둥 상부 주도(장식 자재) 위에 놓여 있는 채기를 발견했다. 채기 안에는 말라 굳은 상태의 단청 안료(육색ㆍ肉色ㆍ살색)와 그을음이 남아 있었다. 6ㆍ25 전쟁 때 통도사가 31육군병원 분원으로 운영된 사실에 비춰 볼 때 당시 난방용 불을 피우면서 채기에 그을음이 침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송천 통도사 성보박물관장은 "채기는 백자지만 채기가 발견된 대광명전은 6ㆍ25 전쟁 때 군병원으로 사용되면서 겨울에 불을 때면서 그을음이 발생해 채기가 갈색 등으로 변했다"며 사실을 뒷받침했다. 통도사는 채기가 발견되자 통도사역지(通度寺略誌) 기록을 살펴본 결과 대광명전 후불탱화, 단청, 본존불 개금(改金)이 1759년에 이뤄졌다는 근거를 확인했다. 이에 따라 성보박물관은 1759년 대광명전 중수과정에서 이 채기가 사용된 것으로 판단했다. 1759년 이후 단청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비춰 볼 때 발견된 채기는 260년 만에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인 셈이다. 통도사 채기는 1974년 경주 월지에서 통일신라시대 단청용 그릇이 발견된 이후 이번이 두 번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통도사 대광명전에서 발견된 채기는 직경 15㎝, 높이 7.5㎝, 굽 직경이 5,5㎝로 조선 후기 백자분청사발에 속하며 당시 전형적인 막사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송천 관장은 9일 오전 통도사 종무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채기에 남아 있던 얀료 분석과 대광명전 현판 기록에서 사용자와 시기 등을 추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대광명전 현판에는 1756년 10월 대광명전에 화재가 발생해 전소됐고, 이후 1758년부터 대광명전 중건에 착수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1759년 4월에서 6월 사이 단청을 그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에 따라 이 채기는 1759년 4월에서 6월 사이 단청을 그리던 임한 스님 또는 그 제자가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임한 스님은 조선 후기 영남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원스님이다. 1734년부터 1759년까지 통도사를 거점으로 석남사, 운문사, 기림사 등 영남일대 사찰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임한 스님과 제자들은 통도사 주요 전각에 봉안되는 탱화와 단청을 전담하는 등 당시 영남 일대에서는 가장 영향력이 있는 화원 집단이었다고 한다. 스님의 대표작품으로는 통도사 영산전의 영산화상도(1734년)와 울산 석남사 영산회상도(1736년), 통도사 대광명전 삼신불도(1759년) 쌍계사 후불도(1739년) 등이 있다.

이번 통도사 대광명전에서 채기 발견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통도사가 6ㆍ25 전쟁 당시 31육군병원 통도사 분원으로 지정돼 당시 3000여 명에 달하는 부상자를 치료한 사실이 지난 2019년 9월 구화스님 친필인 `용화전 미륵존불 갱 조성연기`에서 발견됐다. 이후 2021년 11월 1일 영축총림 통도사는 국내 사찰 최초로 국가보훈처로부터 국가현충시설로 지정됐고 지난 6월 18일 현충시설 지정 기념 `호국영령위형재`를 거행했다. 통도사가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이어 호국불교의 성지로 그 위상을 만방에 떨쳤다. 여기에다 이번 260년 전 화원의 깜빡 실수(?)로 놓고 간 채기로 인해 통도사는 물론 사찰의 유물과 문화가 재조명되고 있다. 송천 통도사 성보박물관장은 "조선시대 사찰에서 사용하던 모든 물품 등은 스님이 직접 만들고 생산했다"며 "채기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에 발견된 채기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후기 백자 분청사발로 확인됐고, 현재 통도사 인근 하북면 답곡리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송천 관장의 말에 따르면 승복의 염색과 채기는 물론 제기나 식기류 등을 자급자족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찰을 중심으로 염색, 도자기 등 관련 산업을 지역경제 주력 산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는 오래전부터 통도사 서운암에서 염색과 된장을 제조해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채기 발견 계기로 옛날 사찰의 자급자족 문화를 사하촌(寺下村)으로 전수.확산하게해 지역경제 산업화로 발전시키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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