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 허성원
  • 승인 2022.08.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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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 <br>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대표 변리사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대표 변리사

2012년 12월 스페인에서 열린 국제 크로스컨트리 대회 결승 라인에서 있었던 일이다. 선두를 달리던 케냐 선수 아벨 무타이가 결승점을 불과 몇 미터 앞두고 멈췄다. 결승점을 통과했다고 착각한 것이다. 2위로 뒤따르던 스페인의 이반 페르난데스 선수는 상황을 알아챘다. 그래서 무타이에게 더 달리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무타이는 스페인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이에 페르난데스는 그를 뒤에서 결승선까지 밀어주었다. 그리하여 무타이가 우승할 수 있었다.

그에게 한 리포터가 물었다. `왜 그렇게 행동하셨어요?` 페르난데스는 "내 꿈은 우리가 우리 자신 및 다른 사람들이 승리하도록 밀어주는 그런 모습의 공동체 삶을 언젠가 갖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답했지만, 그 절호의 우승 기회를 가벼이 버린 그를 이해할 수 없었던 리포터는 `왜 케냐 선수가 승리하게 해주었죠?`라고 다시 물었다. 페르난데스가 답했다. "내가 그를 이기게 해준 게 아닙니다. 그는 이기게 되어있었어요. 그 경주는 이미 그의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리포터는 집요했다. `그런데 당신이 이길 수 있었잖아요?` 페르난데스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이기면 뭐가 좋아지나요? 우승 메달의 명예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우리 엄마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엄마는 어떻게 생각할까?" 정말 가슴 서늘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내 아들이 살면서 도덕적으로 결정적인 선택의 기로에 섰다고 하자. 그때 과연 이 애비를 머릿속에 떠올릴까. 그리고 `아버지라면 어떤 결정을 할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볼까. 아~ 그때 나라는 존재가 과연 내 아들에게 맑은 거울이 되어줄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그 수없이 많은 어리석고 부끄러운 내 삶의 얼룩들을 어찌할 것인가. 그런 비루한 삶의 행적이, 지금도 위태로운 나의 설익은 가치관이, 아들의 결정적 선택에 도덕적 기준이 된다면, 그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을 어쩌란 말인가.

최근 전도유망한 한 어린 골퍼에게 일생일대의 위기가 닥친 뉴스가 있었다. 만 19세의 그녀는 장타력을 기초로 국내 골프대회에서 생애 첫 우승을 거머쥐고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 기쁨은 며칠 가지 못했다. 그 한 달 전의 다른 경기에서 있었던 부정행위가 밝혀진 것이다. 러프에 들어간 티샷 공을 찾아 경기를 진행했는데, 그게 자신의 공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린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시 혹은 그 후 조속히 바로잡았더라면 벌타나 작은 징계로 넘어갔을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한 달 이상 은폐하다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문제는 부모와 코치도 진작부터 알았던 듯한데도 누구도 서둘러 바로잡으려 애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결국 한 인재의 골프 운명과 그 가족의 평화가 백척간두에 서 있다.

이 가여운 골퍼의 처신은 페르난데스의 태도와 어떻게 다른가. 양심, 도덕, 인격, 품위 등과 같은 추상적인 언어는 일단 제쳐두고, 그로 인해 당사자가 감내해야 할 내적 갈등만을 생각해보자. 극심한 고통의 지옥과 평온한 행복의 천당과 같은 차이일 것이고, 그만큼 각자가 소모하는 정신적인 에너지도 다를 것이다. 이를 독일의 뇌과학자 게랄트 휘터는 그의 저서 `존엄하게 산다는 것`에서 열역학 제2법칙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인간의 뇌는 가만히 쉴 때도 가용 에너지의 20%를 사용하며, 정신 고통이나 감정 변화가 있으면 그 소비가 급증한다. 그러면 뇌는 무질서 즉 엔트로피의 증가를 줄일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뇌가 선택하는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은 바로 양심과 도덕에 따라 옳은 행동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다. 양심에 반한 행동이 가져오는 극심한 내적 갈등의 상황과 양심에 따를 때의 평화로운 상황을 상상해보면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게랄트 휘터는 엔트로피 증가를 최소로 하기 위해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존엄`이라 부른다. 그런 존엄이 반복되면, 존엄은 무의식에 정착되어 그 사람의 내적표상 즉 가치관으로 확립된다. 그렇게 정착된 `존엄`은 영원히 버리지 못한다. 대개의 삶의 상황에서 가장 경제적이고도 효율적인 처신 방법임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페르난데스의 존엄은 `엄마의 생각`이었다. 존엄한 `엄마의 생각`은 그에게 망설임 없이 옳은 행동을 결정하게 하고, 그 과정이나 결과는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준다. 반면에 그 가여운 골퍼는 안타깝게도 아직 그 존엄을 체득하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 눈앞의 욕심에 흔들렸다. 게랄트 휘터는 말한다. `자신의 존엄성을 인식하게 된 인간은 결코 현혹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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