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밖을 내다보자 17
나라 밖을 내다보자 17
  • 박정기
  • 승인 2022.08.0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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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열정얘기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북군이 그 치열한 전쟁에서 승리한 역사적 장소다. 그 흔한 전승비는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없다. 역사적인 항복 장소인 집만 남겨 두었을 뿐, 하다못해 지방 정부는 관광지로도 기막히게 써먹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닌가? 없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다.

역사의 흔적을 일부러 지우고 있다. 완전히 없애는 것은 서운하니까 집 하나 남기고, 비석 하나만 세웠다. 미국인의 속은 깊고 깊다. 미국인은 지혜롭다. 그냥 총잡이가 아니다.

생각해보면, 남북전쟁은 미국의 비극이었다. 젊은 생명이 60여만 명이나 죽어간 대참사였다. 그것도 저희끼리, 형제간에 서로 죽인 아픈 역사다. 다시는 생각하고도 싶지 않은 비극이다. 실제로 전쟁 때 형제간에 서로 총을 겨누고, 심지어 부자간에도 남북으로 갈려 싸웠다. 지나고 보니 후회가 앞섰다.

지금도 아프다. 가슴이 저린다. 하긴 뭘 해! 덮자. 몽땅 덮어버리자. 생각도 말자. 몽땅 잊어버리자! 상처가 너무 크다. 건드리지 말라. 건드리면 덧난다. 무조건 잊는 거다. 마음에서 지우자. 남쪽도 북쪽도 전쟁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

나는 아메리칸의 치유법이 옳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은 그 자체가 처음부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과거는 과거다. 묻어 두는 게 정답이다. 잊는 게 정답이다. 과거를 들먹이면 과거에 발목 잡힌다. 과거란 수렁에서 절대 못 빠져나온다.

만일 그때 과거를 청산하기로 했다면 아마 나라는 거덜이 났을 것이다. 남군은 모두 반란군이다. 엄연한 미합중국에 총을 겨눈 적이다. 13개 주가 연방을 탈퇴했다. 그것도 작당까지 해서 정식으로 덤볐다. 대통령도 선출하고 장, 차관까지 임명해서 마음먹고 전쟁을 걸어왔다. 과거청산을 했다면 남부 대통령 데이비스부터 줄줄이 문제가 된다. 적폐 청산을 했다면 반역죄로 수천 명을 사형하거나 감옥으로 보내야 하고, 총살할 반란군만도 수만 명은 되었을 것이다.

어제 일, 얘기할 필요가 없다. 과거가 아니라 내일을 걱정하고 내일 얘기를 하자. 원리는 간단하다. 오늘 일도 사실은 벅찬데 내일도 아닌 지나간 일에 왜 매달리느냐 말이다. 아픈 과거는 굳이 돌아볼 필요도 없다.

돌아보면 사달난다. 과거사 조사위원회, 적폐 청산 등 다해 봤지 않느냐. 그래 얻은 게 뭔가? 원래 과거를 캐는 것은 헛된 일이다. 과거를 들추다 보면 과거에 갇히고 만다. 못 빠져나온다.

그뿐만 아니라 캐내 봤자 소용이 없다. 왜? 사람은 안 변하기 때문이다. 몇 놈 죽여 봤자 나쁜 놈은 또 나온다. 아무리 적폐 청산해도 또 청산할 일이 생긴다. 사람은 안 변한다는 거 다 알지 않느냐. 역사는 되풀이하는 거 몇백 년을 봐 왔지 않는가.

그러니까 과거는 가볍게 처리하고 미래에 매달려야 한다. 교육하고, 방지책을 마련하면서. 내일을 걱정하는 게 정답이다.

과거에 집착한 것, 인간을 너무 모르기 때문에 하는 짓거리다. 과거에 매몰되면 망한다. 진리다. 여러 말 말라. 미국 사람들 남북전쟁 처리하는 것 봤지 않느냐. `과거`는 잊자. 그게 현책이다. 더 놀라운 얘기를 하자. 전쟁이 끝나기 6개월 전쯤 북군 총사령관 그랜트가 링컨을 만났다. 포토맥 강 배 위에서 두 거인의 만남이다.

"각하, 전쟁은 곧 끝날 것 같습니다. `저 사람들` 어떻게 할까요?" 그랜트 장군은 생전에 남군을 적이라고 안 불렀다. 육군은 공식적으로는 반군이라고 정해 놓고도 말이다. 그는 부하들과 대화할 때도 반군이라 하지 않고 한사코 `저 사람들`이라고 부른 사람이다. 대통령 앞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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