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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이야기 12
출가 이야기 12
  • 경남매일
  • 승인 2022.07.26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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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br>
도명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사찰에 가 보면 법당과 주위에 있는 전각(殿閣)의 벽에는 대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벽화 내용은 부처님의 수행 과정을 여덟 부분으로 나눈 팔상도나 사찰의 창건 설화가 주를 이룬다. 또 그중에는 스님들이 수행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나타낸 심우도(尋牛圖)가 있다.

심우도는 송나라 시대 곽암 스님이 지은 저서 십우도(十牛圖)에서 출발하는데, 이는 수행자가 도를 이루는 과정을 소와 연관시켜 그린 것으로 열 개의 단계로 표현했다. 그림은 그 첫 과정인 소를 찾는 심우(尋牛)부터, 두팔을 늘여드리고 세상에 다시 돌아오는 `입전수수`(入廛垂手)의 마지막 십 단계까지를 멋진 비유로 묘사하였다.

모든 일이 시작되면 일정한 과정을 거쳐 결론에 이르듯 수행도 출가부터 시작해 일정한 수련 기간을 거치면 무르익게 되고 마침내 완성인 해탈에 이르게 된다.

필자는 20대에 산 생활을 한 몇 년 후에야 겨우 자신을 찾아가는 `심우` 단계에 이르렀다. 세 번의 행자 생활은 원만하지 못했고 결국 골굴사를 나와 또 다른 길목에서 갈 길을 잃고 멈춰 서 있었다. 세상은 넓으나 내가 갈 곳은 없었다. 집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고 다른 마땅한 곳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분이 정여 큰스님이셨다. 스님과는 `통점마을`이란 공동의 생활 공간을 인연하여 가끔 마주치던 사이였다. 

스님께서 언젠가 나에게 송광사로 출가를 권유한 적은 있지만 당신의 제자로 출가하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후 출가를 했지만 좌충우돌하다 모든 활로가 다 막힌 상황에서 결국 스님이 생각났다. 스님은 당시 지리산 쌍계사에서 두문불출하며 3년의 선 수행을 마친 얼마 뒤라 얼굴은 맑았고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당시 필자는 진짜 스승이란 달마와 같은 남성적인 모습과 기개를 가진 선사의 모습일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어서 이런 온화한 분을 스승으로 모신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기대가 허물어지고 몸 하나 기댈 곳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스님이 떠올랐고 감포의 시골 마을 공중전화로 스님이 계신 부산의 여여선원에 전화를 했다.

사찰 종무원에게 나의 신분을 밝히고 스님을 바꿔 달라고 부탁했다. 전화기를 건네받은 스님께 "저 출가하려는데 스님께 의탁해도 되겠습니까?" 하였더니 껄껄 웃으시며 "그래 잘했네, 어서 내려오시게" 하셨다. 나는 그 한마디에 그동안 가슴을 억눌렀던 번뇌가 한꺼번에 내려놓아지는 듯하였다. 며칠 후 스님의 명을 받고 삼랑진의 암자에서 일 년 가까이 행자 생활을 하게 됐다.

당시 산골의 조그만 토굴에 불과했던 여여정사는 주위의 토지를 확보해 대웅전 불사를 막 시작할 때였다. 불사 도량이라 매일 절집에서 노동이라 불리는 울력(雲力)이 이어졌지만 나의 일로 받아들이고 성실히 임했다. 스님은 "평생 스님 생활의 복은 행자 때 다 짓는다. 또 행자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마음 자세를 가지고 모든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말씀을 그때 다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유효한 말씀이라 생각한다.

여여정사의 행자 생활 중에도 몇 번의 고비는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반드시 행자를 마치고 수계를 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무사히 잘 넘기게 되었다. 결국 범어사를 본사로 하여 송광사에서 예비 승려인 사미수계를 받고 정식으로 출가 수행자가 되었다. 이후 경전을 공부하는 승가대학인 강원을 졸업하고 지리산과 강원도에서 토굴 생활을 하였다.  토굴 생활을 정리하고 충남 서산의 개심사를 시작으로 선원을 몇 철 다니던 중 은사이신 정여 큰스님의 배려로 밀양 여여정사와 김해 여여정사의 주지 소임을 맡게 됐다. 

또한 김해에 몇 년 살다 보니 `가야불교`라는 가락국 시대 불교 도래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접했고 우연한 기회에 연구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수년간의 연구 결과를 묶어 지난 4월 <가야불교 빗장을 열다>라는 단행본을 내기도 했다. 

필자는 돌아보니 출가해 대도(大道)를 얻거나 세상을 위해 대단한 공덕도 짓지 못하였다. 스스로를 평가해 보면 아직도 부족함이 많은 수행자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십여 편의 칼럼을 통해 출가에 관한 개인사를 풀어놓은 이유는 그것이 나의 현재를 만든 과정일 뿐 아니라 인생의 기로에서 성장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얼마간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또한 이것이 나를 성장시킨 세상과 절집, 양가(兩家)에서 입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는 길이라 여겨진다. 

출가는 새로운 길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간절했던 초심(初心)이 현재까지 이어오는 삶의 방향타가 되고 있음을 새삼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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