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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밖을 내다보자 15
나라 밖을 내다보자 15
  • 경남매일
  • 승인 2022.07.25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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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br>
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이 행사는 원래 대통령까지 참석하는 국가행사가 아니었다. 처음, 게티즈버그 주민들이 부지를 사들여 공동묘지를 조성해서 시체 처리를 하려던 예정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부지를 살 돈이 없어 유가족으로부터 매장료를 받을 생각이었다. 이때, 32세의 젊은 판사 윌스가 나서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를 설득하여 2400달러를 배정받아 17에이커의 부지를 사들였다. 연사로는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국무장관을 지낸 당대 최고 연사 에버렛을 초빙했다. 링컨에게는 주 연사는 에버렛이 될 것이므로 대통령께는 간단한 헌사만을 부탁한다고 밝혔다. 11월 18일, 기차 편으로 게티즈버그에 도착한 링컨은 윌스 판사 집에서 묵는다. 그리고 연설 원고를 다시 손봤다. 백악관에서부터 손을 보던 원고다. 링컨은 여러 날 연설문을 다듬고 다듬은 게 사실이다. 기차에서 연설문을 썼다는 얘기며, 편지봉투 뒷면에 적당히 썼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닌 것 같다. 행사는 펜실베이니아, 메릴랜드, 뉴저지 등 6개 주의 주지사와 15000여 명이 참석하는 큰 행사가 되었다. 스탁턴 목사의 기도에 이어 에버렛의 2시간짜리 연설이 시작되었다.

이 해의 마지막 농사를 지켜보는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우뚝한 엘리게니 산이 내려다보는 이곳, 형제들의 무덤이 우리들의 발아래 있는 이 자리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나는 머뭇거리며 두려운 마음으로 감히 위대한 자연과 신의 침묵을 깨려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내게 주신 소임은 완수되어야 하기에 감히 여러분의 깊은 이해와 양해를 구하면서 연설을 계속하겠습니다. 멋진 연설이다. 그리고 2시간이 계속된 연설은 이렇게 끝난다.

나는 확신합니다. 이곳에서 장렬히 산화한 영웅들의 유해와 우리가 작별을 고하는 동안, 이 위대한 전쟁은 문명 세계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며 최근까지 기록된 그 어떤 영웅담도 게티즈버그 전투 기록보다 빛나는 페이지는 없을 것입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연설에 매료되어 몽롱했던 사람도 깨어났다. 명연설이다. 사람들은 감동하여 박수를 멈추지 않는다.

링컨이 단상에 올라갔다. 키가 크다. 실례지만 볼품은 없다. 링컨은 어색하게 일어서며 안경을 고쳐 썼다. 그리고 원고에서 거의 눈을 떼지 않고 높은 음성으로 읽어 나갔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것은 종교 행사 때 성당 안과 같은 위엄 있는 침묵이었다고 전한다. 연설의 평가는 그 당시 엇갈렸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시카고 타임즈`는 링컨이 외국 지성인 앞에서 너절한 연설을 늘어놓아 미국인에게 큰 망신을 주었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주 연사인 에버렛은 자신의 2시간짜리 연설보다 대통령의 2분짜리 연설이 더 훌륭했다고 극찬하였다. 어쨌든 이 연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명연설로 남았다. 87년 전 건국 아버지들의 이상과 뜻을 내세우고, 전몰자들이 못다 한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위해 헌신하며,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우리를 바치자고 역설한 것이다. 미국의 이상, 미국의 사명까지를 언급한 `미국 예외주의`와 `명백한 운명`을 확인하고 있다.

번역은 안 하겠다. 솔직히 겁난다. 영어와 한국어는 다르다. 링컨의 심오하고 고매한 연설이 혹시라도 왜곡될까 정말 두려워서다. 원문을 그대로 소화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00번을 읽으면 맛이 난다. 공부 삼아 한번 각자 번역해 보기 바란다. 좋은 번역은 많다. 링컨은 정말 위대한 인물이다. 알수록 겁나는 사람이다. 오늘 위대한 미국은 `그 사람` 작품이다. 링컨이 없었으면 남북전쟁에서 지거나, 평화 협상으로 종전이나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랬으면 지금 미대륙에는 텍사스 공화국, 조지아 공화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왕국 등 대여섯 개의 국가가 난립했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링컨은 진짜 `괴짜`였다. 위대한 대통령이었고, 최고로 위대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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