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밖을 내다보자 14
나라 밖을 내다보자 14
  • 경남매일
  • 승인 2022.07.18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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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두 시간 가까이 계속된 대 포병전으로 들판은 온통 연기에 휩싸였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주위가 어두워졌다. 이 혼란을 틈타 남군은 돌격 대오를 갖추었다.

포연이 바람에 날려 시야가 터지자 남군의 돌격 대열이 보인다. 9개 여단 15000명이 만든 인간의 장벽. 길이가 1㎞가 넘는 횡대 대형은 형형색색의 부대기와 남부 국기까지 펄럭여 일대 장관을 이루었다. 7월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돌격 요원들의 총기들은 살기를 내뿜고 있다.

남군은 대오도 정연하게 북군 진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군 진지 어디선가 탄성이 들렸다.

"아!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이 세상 어디에서 저렇게 장엄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또 볼 수 있을까!"

넋을 잃고 남군 진지를 바라보던 북군 장교의 말이다.

30여 분 후, 대열이 없어졌다. 장엄하고 생명력 넘치던 돌격 대형이 없어진 것이다. 지고한 인간의 용기─나라를 지키고, 부모 형제를 지킨다는 넘치는 열정, 전우를 지키고 상사를 위해 죽겠다는 가슴 벅찬 정열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 증발해 버렸다. 북군 포병의 집중사격 앞에 인간의 의지와 열정은 무력하였다.

남군의 인간장벽이 300야드까지 접근했을 때 북군이 캐니스터 실탄을 썼기 때문이다. 캐니스터탄이란 산탄 포탄으로 양철통 속에 작은 철환만 가득 채운 포탄이다. 캐니스터 한 발에 30여 명이 쓰러졌다. 조준이 필요 없으니 분당 네 발씩 쏘아댔다. 평화롭던 들판은 시신과 군마의 사체들로 덮였다. 참혹하다. 15000명의 돌격대원 3분의 2가 쓰러졌다. 역사적인 이 돌격을 후세 사람들은 ` 피케트 돌격`이라고 부른다. 남군의 돌격은 결국 실패하고 남부연합은 이를 계기로 기울기 시작한다.

왜 실패 했는가? 불세출의 군신 리 장군이 지휘했다면서. 논란은 지금까지도 사람들 사이에 엇갈린다. 나는 전술적으로도 리의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결과만으로 얘기하면 물론 리는 틀렸다.

어째서 리가 옳았냐? 리는 옳았지만 리의 참모, 지휘관들이 졸렬한 지휘를 했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공격이 리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는 이 작전에 대한 수많은 비판과 비난에 대해 한 번도 변명을 한 적이 없다. 오직 한 마디, "모든 게 나의 잘못이다." 부하들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모든 걸 자기 책임, 자기 잘못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아주 가까운 몇 사람에게만은 이런 말을 하였다. "협조된 공격만 했으면 돌격은 성공했다."

내가 이 글을 길게 쓰는 이유는 병학도로서 피케트 돌격의 소수의견인 공격의 정당성을 지지하기 위해서다. 병학도가 아닌 사람도 미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게티즈버그를 읽는 게 좋고. 승패의 미묘한 갈림길, 리더십, 인간의 전장 심리를 이해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피케트 돌격의 찬반론은 우선 재미있다. "미국 역사의 클라이맥스는 남북전쟁이요, 남북전쟁의 클라이맥스는 게티즈버그, 게티즈버그의 클라이맥스는 피케트 돌격이다"라고 미국의 역사가 스튜어트는 말한다.

전투가 끝나고 4개월이 지난 1863년 11월 19일, 게티즈버그에서는 국립묘지 봉헌식이 열렸다. 이 전투에서 산화한 장병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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