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1:47 (금)
"한국 양궁 저력 DNA 때문? 치밀한 전략ㆍ뼈 깎는 노력 결과죠"
"한국 양궁 저력 DNA 때문? 치밀한 전략ㆍ뼈 깎는 노력 결과죠"
  • 황원식 기자
  • 승인 2022.07.17 2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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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차 김해경제포럼
강사 서거원 대한양궁협회 이사
주제 `도전과 열정 그리고 성취`
40년간 세계 1등 신화 만들어

1984년 LA올림픽 때부터 주목
국산 장비 상용화 앞장서 노력
스타도 예외 없는 선발전 고집
선수와 함께 훈련 솔선수범 보여

지난해 열린 도쿄 올림픽, 양궁 종목에서 대한민국은 총 5개 금메달 중에 4개 싹쓸이. 매번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이 열릴 때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한국 양궁이 압도적 1위를 차지하는 것을 지켜본다. 한국 양궁이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배경에는 한국 양궁계를 이끄는 리더의 노력이 있었다.

서거원 대한양궁협회 전무이사가 지난 15일 오전 7시 김해중소기업비즈니스센터에서 열린 2022년 김해경제포럼에서 `도전과 열정 그리고 성취`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이날 홍태용 김해시장, 홍성옥 김해의생명산업진흥원장, 김해지역 기업 임직원 등 100여 명이 이른 아침에도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서거원 전무이사는 지난 40년 간 한국 양궁을 세계 1등 자리에 있게 만든 인물이다. 그는 지난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양궁팀 대표코치를 맡으면서 신화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후 국가대표 감독을 맡으면서 한국 양궁을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저서로는 `따뜻한 독종`이 있다.

이날 그는 우리나라가 활을 잘 쏘는 것이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동이(東夷)족이기 때문에 성적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 궤변이라는 것이다. "동이족이라는 말 자체가 중화 중심 사상에서 나온 말로, 동쪽의 오랑캐라는 뜻입니다. 이 내용을 알면 그런 말을 안 씁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활을 잘 쏘는 민족은 많았고, 양궁 자체도 서양인들의 골격에 맞는 스포츠입니다. 한국 양궁의 성공은 뚜렷한 목표의식, 치밀한 전략, 뼈를 깎는 노력의 결과입니다."

 

지난 15일 오전 김해중소기업비즈니스센터 5층에서 열린 `제170회 김해경제포럼`에서 서거원 대한양궁협회 전무이사가 강연하고 있다.
지난 15일 오전 김해중소기업비즈니스센터 5층에서 열린 `제170회 김해경제포럼`에서 서거원 대한양궁협회 전무이사가 강연하고 있다.

"한 번만 일본 이겨보자" 끈기로 얻은 정상

서거원 이사는 한국 양궁의 역사로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70년대까지 한국을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 대표팀은 아시아에서 최하위로 무시를 많이 받았습니다. 정말 서러워서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일본을 이겨보자는 심정으로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한국 양궁이 처음 성과를 낸 것은 지난 1984년 미국 LA올림픽 때부터였다. 당시 여자 대표팀에서 첫 금메달을 딴 것이다. 그 사건이 동기부여가 돼 남자팀도 열심히 노력했고, 그 결과 4년이 지난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남녀 대표팀 모두 세계 최정상에 올라섰다. 당시 세계 양궁은 남자는 미국, 여자는 러시아가 20년 동안 최강으로 군림하던 시절이었는데 아시아의 조그마한 빈민 국가가 남녀 1등을 한 것은 기적적인 일이었다. 그 이후부터 한국 양궁은 거칠 것 없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올림픽에서 양궁이 효자 종목이라는 말이 나왔으며, 10여 년 동안 국제 대회 메달을 싹쓸이했다.

위기도 있었다. 지난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때 여자팀은 금메달 2개 따는 데 성공했지만 남자팀이 단체전 은메달, 개인전 동메달에 그친 것이었다. 한국이 세계 정상 궤도에 올라 있었기에 못 따낸 금메달에 따가운 시선이 있었다. 이를 두고 한국 양궁계에서는 미국 선수들의 최신형 활에 비해 우리나라 선수 장비가 성능이 떨어졌고, 올림픽 시합 전에는 외제 활을 구하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불리했다고 분석했다. 활의 사용기한이 6개월 남짓이라는 점을 이용해 일종의 악의적 수출 규제가 있었던 셈이다. 이에 한국 양궁계 최초로 200인의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결국 우리 손으로 최고의 양궁 장비를 개발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당시 양궁계는 빈약했던 국내 활 제작 회사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서거원 이사는 공장을 계속 드나들며 제품 개발에 열정적으로 피드백했다.

하지만 서 이사는 10년 넘게 이어진 제품 개발 과정을 돌이켜 보면 힘든 순간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초ㆍ중등 학생들이 국산 활에 익숙하도록 의무 사용을 규정하는 과정에서 큰 저항에 부딪혔고, 내부에서 리베이트 의혹을 제기할 때마다 전부 포기하고 싶었지만 한국 양궁의 미래를 보고 버텨낸 시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국내에서 IMF 이후 외제 활 가격이 올라 가격이 싼 국산 활 사용 비중이 점차 높아졌고, 결국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한국 선수들이 전원 국산 활을 사용해 금메달 4개 중에 3개를 따냈다.

이후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부터 세계적으로도 국산 활의 성능이 입증됐다. 지난 2016년 리우 올림픽 때에는 전 세계 양궁 시장의 70% 이상 국내산이 점유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 부분에서 청중들은 서거원 이사가 힘들게 버텨낸 시간에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스타 선수도 어드밴티지 없어" 공정 최우선

서거원 이사는 한국 양궁의 다른 성공 요인으로 `공정`을 꼽았다. 그의 방침은 한국 양궁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는 예외규정 없이 철저하게 `성적`만 가지고 뽑는 것이었다.

실제 올림픽 시작 전 1000명이 넘는 지원자들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단 6명이 선발된다. 심지어 지난해 열린 도쿄올림픽에서 이미 대표팀이 선발됐으나, 코로나19로 1년 연기되자 반대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선발전을 치르기도 했다. 서 이사는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도쿄올림픽 3관왕의 안산 선수와 2관왕의 김제덕 선수가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원칙은 (대표팀 선발과정에서) 아무리 스타 선수라도 절대 어드밴티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명이든, 스타이든 관계없이 노력해서 성적이 나오면 뽑습니다. 이 과정이 나이 어린 양궁 선수들에게 신뢰를 주고, 꿈과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그는 지도자로서 선수들과 직원들과의 소통을 중시했다. 특히 최근 체육계 분위기가 달라져 누구에게도 강압적인 지시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수들 스스로 노력하게 하게 하는 것은 `소통`이라고 강조했다. "코칭과 티칭은 의미가 다릅니다. 티칭은 가르치려는 것이고, 코칭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저는 뒤에서 방향을 알려주는,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만드는 코칭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선수들을 성장시키기 위해 솔선수범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실제 실력은 있지만 담력이 약한 한 선수에게 번지점프를 제안했고, 그도 9번이나 같이 뛰어내렸다고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그 결과, 그 선수는 스페인에서 1000명이 넘는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한 발로 우승이 결정되는 결정적 순간 침착하게 10점을 쏘아 금메달을 땄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극한 상황을 극기할 수 있는 정신력을 기르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훈련을 지도자들도 똑같이 함께하고, 함께 밤잠 안 자고, 함께 고생하면서 명령하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솔선수범 하는 존재로서 그들을 이끄는 점이 더욱 중요합니다. `저 나이 많은 감독님도 우리와 함께 하고 있구나, 감독님도 하는데 내가 못하면 말이 안 되는 거구나` 하고 저절로 느껴지게끔 해야 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살아오면서 중요하다고 느낀 것 3가지를 언급했다. 첫째, 이 세상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극복하지 못하는 자는 험난한 세상을 이겨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둘째,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것이다. 극한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으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것이다. 셋째,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주변이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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