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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이야기 ⑩
출가이야기 ⑩
  • 경남매일
  • 승인 2022.07.11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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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 스님산 사 정 담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 스님산 사 정 담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절집에 회자되는 말 가운데 "사람 못된 게 스님 되고, 스님 못된 게 참선하는 수좌 되고, 수좌 못된 게 도 튼다"는 말이 있다. 이때 `못되다`는 말은 인성이 나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출가 수도하고 도를 이루려면 세상에서 요구하는 좋은 사람 노릇만 해서는 오히려 도를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세상에서도 어떤 분야에 성공을 하려면 마음 한 켠에 독한 근성이 있어야 하듯 해탈의 저 언덕에 이르기 위해서는 매정하게 세속의 인연을 끊는 강단도 때론 필요하다.

일례로 부처님의 경우 예고 없이 갑자기 출가해 부모를 섬기지 않았으니 불효자요. 무책임하게 처자를 떠났으니 무정한 남편이며 아버지라 할 수 있다. 자신 앞에 놓여진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지만 세속의 인연을 단칼에 끊었으니 어찌 냉정하다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세상을 등졌던 그의 출가야말로 후세에 수많은 사람들을 고뇌로부터 벗어나게 하였고 인류의 영적 진보에도 커다란 족적을 남기게 된다. 이렇듯 출가하여 수행을 잘하면 속가(俗家)와 승가(僧家), 두 집안에 이익이 되나 수행을 제대로 못 하면 양가에 죄를 짓는다 하니 출가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필자는 20대의 방황기에 세간과 절간을 몇 번을 오가게 되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송광사의 첫 번째 출가는 닷새 만에 막을 내렸고 일여 년 후 다시 기장의 묘관음사로 향했다. 당시 묘관음사는 조실(祖室)스님과 주지스님 그리고 나보다 어린 원주스님, 이렇게 스님 세 분과 나이 많은 공양주 보살님이 있었다. 나는 주지스님과 조실스님께 출가를 허락받고 즉시 행자 생활에 들어갔다. 새벽 예불을 시작으로 낮에는 도량을 청소하고 텃밭을 가꾸었으며 밤에는 예불문과 천수경을 외우는 주경야선(晝耕夜禪)의 생활이 이어졌다.

원래 시골 출신에다 산 생활을 어느 정도 하였기에 별로 무리 없는 나날이었다. 얼마 후 원주스님은 나에게 목탁 치는 법과 새벽 도량석 도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도량석(道場釋)이란 이른 새벽, 예불하기 전에 도량의 기운을 청정히 정화하는 의식으로 짧은 경전이나 조사(祖師) 스님들의 게송을 외우는 것으로 되어있다.

도량석을 배운지 며칠째 되던 날 목탁을 치는 게 익숙하지 않은 탓에 사소한 실수를 했는데 원주스님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일도 아닌데 당시에는 굉장히 자존심이 상했다. 스님의 입장에서는 행자가 처음 배울 때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사소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보다 나이도 어린 사람이 이만한 일로 이러나` 싶었고 여기서 출가하면 앞으로 계속 이런 일들로 피곤하겠구나 하는 염려가 되었다.

그날 이후로 행자 생활은 재미가 없어졌고 이 도량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일로 촉발되었지만 묘관음사를 떠나는 결정적 요인은 따로 있었다. 행자 생활이 두어 달이 넘어갈 즈음 조실스님과 주지스님이 번갈아 나를 부르더니 당신들의 제자가 되라고 권유하셨다. 두 분께서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는 나를 좋게 봐주시는 것은 감사한 일이나 본인은 두 분 중에 한 분을 스승으로 모실 마음은 전혀 없었다. 필자는 당시 주제넘게도 산 생활 중 들었던 도인(道人)들의 모습과 불서에서 보았던 큰 스님들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어지간한 분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은 탓도 있었다. 또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출가하여 일정 기간 행자 생활을 마치기만 하면 스승은 누구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줄 생각했었다.

그 도량에 계속 머물렀다가는 어쩔 수 없이 두 분 중 한 분을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이 됐고 그리하여 일단 도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마침 경주 골굴사에서 불가의 전통무술 선무도(禪武道)를 가르친다는 불교신문의 광고를 보고서 일단 그쪽으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어느 날 꾀를 내 두 스님을 찾아뵙고 지금 몸이 좋지 않은데 골굴사에 가서 기(氣) 수련과 운동을 하면 나을 수 있다는 논리로 설득했다.

처음에 두 분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하셨지만 나의 완고한 의지에 골굴사로 가는 것을 허락하셨다. 다만 나머지 행자 생활은 골굴사에서 하되 정식 수계는 묘관음사 스님 중 한 분으로 해야 한다는 단서조항이 붙었다. 며칠 후 묘관음사를 떠나 경주의 골굴사로 향했고 주지이자 선무도 총재이신 적운 스님을 만났다.

도를 이루는 세 가지 요소가 있는데 스승과 도반 그리고 도량이다. 미지의 길을 가는데 있어 훌륭한 멘토의 지도를 받을 수 있고, 함께 수도하는 벗이 있으며, 번뇌를 쉬는 적정처를 만나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어렵게 마음을 내어 출가했는데 세 번째 도량에서는 나에게도 이런 행운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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