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밖을 내다보자 13
나라 밖을 내다보자 13
  • 경남매일
  • 승인 2022.07.11 23: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우리 주 예수께서 오신 1863년째의 해의 정월 초하루를 기해 합중국에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의 모든 주와 특정 지역의 노예는 영원히 자유의 몸이 되었음을 선언한다."

1862년 9월 22일, 앤티텀 전투가 끝난 지 닷새 만에 링컨이 행한 `노예해방 선언`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예해방 선언은 이처럼 전쟁이 나고 일 년이 넘어서야 이루어진다.

링컨이나 리는 이런 영ㆍ불의 의도를 다 읽고 있었다. 이에 맞는 정치, 전략 행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리가 노리는 점은 첫째, 링컨의 인기를 북부에서 떨어트리는 것, 둘째, 우호적인 영국이나 프랑스의 남부 정부 승인을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남부가 결코 북부의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전쟁에서 북부의 코를 납작하게 할 전투의 대승밖에 없다고 믿었다. 리는 조바심이 났다. 전쟁의 주도권은 자기가 쥐고 있으면서도 북군에게 결정적 타격을 준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리의 바람은 한 번이라도 북군의 주력을 격파하는 결정적 승리였다. 그러나 북군은 자기 주문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리가 늘 걱정하는 것은 바로 남부의 국력이었다. 전쟁을 더 끌면 안 된다. 그러니까 국력이 더 소진되기 전에 대판 싸움에 이겨 우호적인 영ㆍ불의 승인을 받아 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자면 적의 수도인 워싱턴을 위협해서 북군의 주력을 불러내야 한다. 게티즈버그에 리가 나타난 것도 다 그런 사정 때문이다.

1863년 6월 초 리는 3개 군단 75000명을 동원했다. 1군단장 롱스트리트. 리가 `나의 백전노장`이라고 부르는 가장 유능하고 신임하는 그의 오른팔. 2군단장은 이월, 두 달 전 챈스러스빌에서 전사한 천하 명장 스톤월 잭슨 휘하의 사단장 출신이다. 3군단장은 힐 장군, 역시 스톤월 잭슨의 사단장 출신이다.

리로서는 어떻든 이른 시일 내에 한판 크게 벌여 북부의 주력을 꺾어야 한다. 그런데 그의 희망대로 게티즈버그에 북군의 주력이 와 주었다. 기회는 왔다.

내 추론이지만, 리는 게티즈버그를 전쟁을 끝내는 마지막 전투장으로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 전투에서 끝장을 내지 않으면 남부의 국력으로는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하기는 어렵다고 본 것이다. 이것이 일종의 강박관념으로 리에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세계 전사에도 전무후무한 3개 사단 돌격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그의 용병을 보면 지나칠 정도로 과감한 것은 사실이다. 남은 절대로 쓰지 않는 작전을 과감히 한다. 그러나 무모에 가까운 그의 작전도 따져보면 모두 일리 있는 용병술이다. 2개월 전 스팟실베니아나 챈슬러스빌 전투 때 그의 신출귀몰한 용병술은 가히 신의 경지였다. 그런데 게티즈버그 전투 제3일째, 3개 사단 착검 돌격은 좀 무모한 공격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도 많은 병학도의 논란거리가 되는 것이다. 1마일의 개활지를 건너는 돌격은 누가 보아도 무리다. 그러나 리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단행한다. 특히 리의 오른팔 롱스트리트도 정면으로 반대한다. 리는 세 번이나 그의 건의를 묵살한다. 나는 이때의 리를 지지한다. 결과론적으로 돌격이 실패하였으니까 반대론자들의 생각이 옳은 것으로 인정되었지만, 그때 그 상황에서 리의 고집은 옳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전술적으로는 문제가 있는 돌격이다. 그러나 남부의 능력을 고려할 때 적의 주력이 모처럼 집결해준 이때마저 놓치면 승부를 걸 기회조차 없다. 협상의 기회도, 영ㆍ불 양국의 지지도 놓치기에 십상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여기서 결판을 내자. 결정적 승리를 하자면 돌격이 최고다. 돌격 앞에 무너지면 수습 못 한다. 북군의 전쟁 의지를 완전히 꺾으려면 그 길밖에 없다. 그냥 돌격이 아니다. 3개 사단이 동원된 대규모 돌격이다. 방어진지가 뚫리면 그땐 적도 수습이 불가능하다. 3개 사단 15000명이 개활지를 전진할 때 절반이 손실되어도 7000~8000명은 적진에 도달한다. 최악의 경우 2/3의 손실을 보아도 5000명이 적진에 난입한다. 좋다! 게티즈버그에서 결판을 내자. 1863년 7월 3일 정오, 남군의 포병이 포문을 먼저 열었다. 공격 준비 사

격이다. 남군의 포병 150문이 전원 동원된 일제사격이다. 평화롭던 들판은 갑작스러운 포성과 포연으로 혼란해졌다. 북군도 가만있을 리 없다. 포병끼리 붙는 대 포병전이다. 그런데 북군의 대포가 시원찮다. 남군이 세 발 쏘면 북군은 한 발 꼴이다. 북군은 포탄을 아꼈다. 계획적이다. 공격 준비 사격 다음에 있을 보병들의 돌격을 예상하고 포탄을 아끼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