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9:29 (토)
수에즈 운하와 판도라
수에즈 운하와 판도라
  • 경남매일
  • 승인 2022.07.07 23: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제헝 경남도 해양수산국장
김제홍 경남도 해양수산국장

수에즈 운하는 홍해(아시아)와 지중해(유럽)를 연결하는 길이 193.3㎞의 초대형 운하이다. 통과하는 선박이 매년 2만 척, 화물이 10억t에 달하는데, 이는 국제무역량의 12%에 달한다. 우리나라가 유럽(로테르담)까지 갈 경우,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서 간다면 약 2만 6300㎞를 항해해야 하는데, 수에즈 운하를 통하면 2만 100㎞ 정도로 대폭 단축된다. 운하를 관리하는 이집트는 앉아서 하루에만 184억 원을 벌어들인다.

수심 24m인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최대 크기의 선박을 수에즈맥스(Suezmax)라고 부르는데 보통 16만DWT(적재화물중량톤수) 정도이다. 선박의 길이는 400m, 수면 위 높이 68m, 단면적 1006㎡(흘수선 20.1m/선체폭 50m 또는 흘수선 12.1m/선체폭 77.5m) 수준이다. 이보다 더 큰 배는 케이프사이즈(Capesize)라고 불리는데, 남미 끝단의 케이프혼(Cape Horn)이나 아프리카 희망봉(Cape of Good Hope)을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배들은 철광석 등 압축이 불가능한 원자재를 운반하는데, VLOC(Very Large Ore Carrier)라고 불린다. 수에즈 운하는 실제로 선박제작에서 크기를 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지난해 3월 23일 초대형 컨테이너 화물선 에버기븐호(MV Ever Given)가 수에즈 운하에서 좌초된 사건이 있었다. 이집트 수에즈운하청(SCA)은 사고 해결을 위해 뱃머리 주변 흙과 모래를 준설하고 평형수를 빼내어 좌초된 지 6일 만에 예인선으로 선체를 이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정확한 피해 액수 산정은 상당한 시일이 걸리지만, 해운업계에서는 최소 1천억 원에서 최대 수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가장 피해규모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사고 기간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지 못한 다른 선박들이다. 수에즈 운하 이용을 포기하고 항로를 바꿔 아프리카 대륙을 우회한 선박도 엄청난 손해를 본 것이다.

지금도 해양물류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수에즈 운하는 사실 근대사의 `판도라 상자`였다. 수에즈 운하는 프랑스의 주도로 1859년에 착공해서 10년간의 공사를 거쳐 1869년 개통했고, 99년간 투자회사가 운영한 후 소유권을 이집트에 넘기기로 했다. 그러나 운하 개통 불과 2년 만에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터지고, 그 전쟁에서 프랑스가 참패하는 바람에 영국이 주식을 대량 매수해서 대주주가 된다. 1882년부터는 아예 영국군대까지 주둔시킨다.

1952년 7월에 이집트의 나세르(Gamal Abdel Nasser)가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된 후, 미국과 영국에게 아스완 댐(Aswan dam) 건설 지원을 받아 댐 공사를 시작했지만, 나세르가 아랍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아랍권을 규합하려고 하자 두 나라는 원조를 끊어 버린다. 이에 나세르는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선언하며 영국이 관리하던 수에즈 운하를 점령했다. 영국은 프랑스와 손잡고 공군을 동원해 수에즈를 폭격했고 영국과 프랑스의 사주로 이스라엘이 이집트 시나이반도를 침공했다(제2차 중동전쟁, 수에즈 전쟁). 이 전쟁이 자칫 세계 대전으로 번질 위험이 있어서 미국과 소련이 영국과 프랑스에 압력을 가했다. 특히 소련의 후루시초프는 두 나라가 수에즈에서 즉각 철수하지 않으면 런던과 파리에 핵폭탄을 쏘겠다고 위협했고 우방이라고 믿었던 미국조차 두 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핵우산을 제공하지 않았다.

영국과 프랑스는 자존심을 접고 수에즈에서 철수했다. 당시 영국은 1952년부터 핵무기를 보유했지만, 국토 면적이 큰 러시아에 맞서 핵전쟁을 벌일 수는 없었고 프랑스는 절치부심해 핵 개발을 시작해 1960년 마침내 핵보유국이 되었다. 수에즈 운하 관할권 문제가 강대국들의 핵무장을 촉발하고 말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