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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근대사` 산청 동학농민군 학살지 발굴을"
"`아픈 근대사` 산청 동학농민군 학살지 발굴을"
  • 김영신 기자
  • 승인 2022.07.05 2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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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사업회, 군청 회견
"180여명 피해" 관심 촉구
"역사 규명ㆍ원인 교육해야"
산청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5일 군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동학농민군 학살지 발굴을 촉구하고 있다. / 산청동학농민기념사업회
산청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5일 군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동학농민군 학살지 발굴을 촉구하고 있다. / 산청동학농민기념사업회

동학농민혁명의 영남지역 발상지로 알려진 산청에서 아픈 근대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동학농민군 학살지를 발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청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5일 군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촉구했다.

이들은 "매년 3ㆍ1절과 광복절이 오면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토로하지만 원인에 대한 교육은 요원하다"며 "아픈 근대사를 규명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1894년 4월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 중태리에서 백낙도 대접주(大接主ㆍ동학농민혁명의 대단위 조직인 포의 책임자)를 중심으로 500여 명의 동학농민이 봉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백낙도 대접주는 보름여 만에 체포돼 참형을 당했으며 동학농민군은 의령, 사천, 고성, 남해, 함안, 진주 등 경남 서부지역으로 확산했다"고 소개했다.

기념사업회는 또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동학농민군 180여 명이 하동에서 지리산 쪽으로 모여들었다가 일본군 등에 학살됐다고 한다"며 "주민들이 이들의 시신을 한 곳에 가매장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런 뼈아픈 역사에 행정기관, 군민 등이 깊은 관심을 두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난 2015년 `동학농민혁명 영남지역 발상기념비`를 세운 산청군과 천도교에 동학농민군 학살지에 대한 발굴을 요청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천도교 등에서 요청을 받아들이면 발굴위원회를 구성하고 절차에 따라 활동하겠다"고 덧붙였다.

천도교 진주시교구가 지난 2014년 개최한 `산청 동학농민혁명 학술강연회`에서 시천면 내대리가 영남지역 동학농민혁명 발상지임을 확인한 게 동학농민혁명 영남지역 발상기념비 건립 계기가 됐다.

기념비 건립에는 산청군 예산 3500여만 원이 투입됐다. 주탑은 천지인(天地人) 3단으로 하늘과 땅, 사람이 우주와 일체임을 형상화했으며, 좌우 보조 탑에 당시 농민혁명군의 슬로건인 `척양척왜`와 `보국안민`을 새겼다. 높이 1894㎜는 1894년 봉기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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