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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변명 `신곡`
단테의 변명 `신곡`
  • 경남매일
  • 승인 2022.07.03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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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방담<春秋放談>이 광 수  소설가
이 광 수 소설가

`인생의 반 고비에서 정도를 벗어난 단테는 어두운 숲에 있었다. 때는 1300년 부활절을 사흘 앞둔 성 금요일 저녁 무렵, 단테는 자신이 참으로 잔혹하고 혼란스러우며 통과하기 힘든 곳에 있음을 느끼면서 두려움에 온 몸을 떨었다.` 단테의 <신곡(神曲:La Divina Commedia)>은 이렇게 시작된다.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단테는 지구 위를 걸었던 사람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시성 괴테는 `<신곡>은 인간이 만든 것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 찬미했다. 최근 중학생 때 읽은 <신곡>의 새 번역서가 나와 읽어보니 그 의미가 새롭게 와닿았다. 특히 이번 번역서는 블레이크, 귀스타프, 카바넬, 안젤리코, 보티첼리 등의 명화를 삽화로 곁들여 젊은 세대들도 읽기 좋게 편집했다. 그 중 윌리엄 블레이크는 <신곡>에 묘사된 내용을 130여 컷이나 그려서 <신곡>의 화가로 불릴 정도로 단테에 매료된 화가였다.

단테는 1265년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그의 개인사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자신이 소년시절에 경험한 첫사랑 베아트리체와의 인연을 주제로 쓴<새로운 인생>이라는 작품에서 부분적으로 엿볼 수 있다. 단테는 아홉 살 때 여덟 살 난 소녀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나 연정을 느꼈으며 18세 때 다시 만나 연모의 정으로 애를 태웠다. 그러나 단테의 첫사랑은 다른 남자와 결혼했는데 24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그녀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뭍은 단테는 1298년 피렌체 도나티 가문의 딸 젬마와 결혼해 세 아들을 두었다. 그리고 현실 정치에 깊숙이 개입해 당시 피렌체 중산층을 옹호하는 겔프당원이 되어 상류층을 대변하는 기벨린당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서 중심역할을 했다. 결국 겔프당이 승리했으나 내분이 생겨 흑당과 백당으로 갈라졌다. 그는 당시 교황파와 단지오 왕가의 간섭에서 벗어나 피렌체의 독립을 주장한 백당을 지지했다. 단테는 절대 권력자였던 교황의 분노를 사 피렌체에서 추방되었다. 계속된 교황파 흑당의 회유를 거부한 그는 정치를 떠나 <신곡>의 집필에 착수했다. <신곡>은 단테의 문화적, 종교적사상의 결정체로 `지옥편`은 1304~1308년, `연옥편`은 1308~1313년, `천국편`은 1314~1321년에 각각 완성되었다. 그러나 <신곡>을 탈고한 해인 1321년 9월 14일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흔히 단테는 그리스의 호메로스, 영국의 셰익스피어, 독일의 괴테와 더불어 세계 4대 시성으로 불린다. 단테가 <신곡>을 코메디아(희극commedia)로 정한 것은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내용을 다루고 있는 `지옥편`에 비해 아름답고 행복한 내용을 그리고 있는`천국편`이 있기 때문이다. 슬픈 시작인 지옥에서 깨달음과 반성의 연옥을 지나 행복한 결말(happy ending)인 천국에 이른다 하여 이 같은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지옥, 연옥, 천국 3편으로 이루어진 <신곡>은 각 편이 33곡으로 되어 있으며 지옥편의 서곡을 합해 100곡이 된다.

<신곡>의 백미는 `지옥편`이다. 로마의 시성으로 단테가 존경하는 스승이었던 베르길리우스를 안내자로 내세워 순례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여행에서 지옥편은 인간세상의 온갖 죄악과 비리의 표본실로 묘사했다. 지옥의 등급을 9단계로 나누어 역삼각 원추형으로 그린 보티첼리의 <지옥지도>를 보면 이성에서 지은 죄질에 따라 1옥부터 9옥까지 사악한 인간의 죽은 영혼이 고통받는 모습을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지옥의 끝자락 루시퍼의 연못인 제9옥까지 전생에서 지은 죄 값을 받는 영혼들의 울부짖음 속에서 단테 생전에 살아 있던 죄지은 자들의 영혼들도 만난다. 이는 어쩌면 단테가 생전에 자신을 핍박한 타락한 교황청과 반대당의 부패한 정치인에 대한 복수심을 <신곡>이라는 작품을 빌려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신곡>은 철저한 프로테스탄티즘에 근거한 그리스도 찬양의 천국을 그리고 있다. 이는 이교도와 이단을 죄악시한 단테가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를 지옥 속에 빠뜨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옥편에는 사채고리업자, 폭력자, 동성애자, 낭비가, 탐욕자, 인색한 자, 우상숭배자, 위선자, 중상 모략자, 배신자 등등이 활활 타오르는 불속, 쇳물 속, 똥물 속, 짐승들 무리 속, 죄악의 숲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특히 제9옥 루시퍼의 연못엔 배신자들의 영혼이 차가운 얼음장 속에 갇혀 고통 받게 한다. 단테의 신곡은 단순히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차별과 구원의 문제만을 다룬 것이 아니다. 물질만능주의에 타락한 인간의 삶을 이성적 사고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개혁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신곡은 단지 신의 노래가 아니라 단테의 첫사랑 베아트리체의 부활을 찬미한 노래이기도 하다. 문득 조용필의 `슬픈 베아트리체`가 떠오른다. `그대 슬픈 눈이 어리는/ 이슬처럼 맑은 영혼이/ 내 가슴에 서며 들어와/ 푸른 샘으로 솟아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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