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밖을 내다보자 12
나라 밖을 내다보자 12
  • 경남매일
  • 승인 2022.06.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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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남군의 힐 군단이 먼저 도착했다. 뷰퍼드의 1개 여단은 밀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근처에 있던 레이놀즈 1군단이 달려와서 겨우 남군의 예봉을 저지하였다. 정오 무렵에는 하워드의 북군 11군단이 도착했다. 거의 같은 시각 이월의 남군 2군단이 도착하였다.

남북 양군은 결국 예기치 않은 곳에 대군을 집결시키게 되었다. 게티즈버그는 남북 양군 사령관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결전장이 된 것이다. 이때까지도 북군의 미드 사령관이나 남군의 리는 전장에 도착하지 않았다.

여기서 잠깐 딴 얘기를 해야겠다.

남북전쟁은 사실상 성립이 안 되는 싸움이었다. 남북의 국력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북부 인구 1500만에 남부 인구 550만, 국내총생산은 북부가 남부의 20배― 어른과 아이 싸움에나 비교할까.

그런데 어떻게 남부가 잘 견뎠나? 견뎠을 뿐만 아니라 외려 전쟁에서 밀리는 쪽은 항상 북부였다.

왜냐하면 군사적으로 전통이 깊은 남부에 우수한 지휘관이 많았기 때문이다. 실로 리나 잭슨 같은 지휘관은 불세출의 명장이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북부의 고통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실은 남부의 비극이었다. 나아가 미국 전체의 불행이기도 하였다. 잘난 리나 잭슨 장군 때문에 1~2년에 끝날 전쟁을 4년이나 끌었다. 그중 제일 답답한 사람은 링컨이었다. 노예해방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다. 그런데 노예해방 선언을 여태 못하고 있다. 전쟁 난 지가 1년이 넘었는 데도 전쟁은 계속되었다. 최초로 남북 군이 붙은 매너서스 전투에서 북군은 참패했다. 뒤이어 있은 반도전투에서도 우세한 북군이 형편없이 밀렸고ㆍㆍㆍ.

이렇게 계속 밀리는 판에 노예해방 선언을 했다가 전쟁에서 지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링컨을 더 불안하게 한 것은 미묘한 국제관계였다. 당시 영국이나 프랑스는 강성한 미국을 원치 않았다. 따라서 남북으로 갈린 현재의 미국을 환영하였다.

영국은 공업력이 큰 북부와는 경쟁 상대지만 면화와 농작물을 공급하는 남부는 은근히 도왔다. 프랑스는 멕시코를 통해 영토 확장을 시도하고 있던 터라 강력한 미국을 원하지 않았다. 외려 이참에 군사력까지 개입해서 남부를 지원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링컨의 절실한 바람은 남부의 기를 꺾고 영ㆍ불에는 보란 듯이 결정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일이었다. 노예해방 선언도 그때를 봐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 해 전인 1862년 9월 17일, 매릴랜드주의 앤티텀에서 남북은 한바탕 큰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도 리가 싸움을 걸어와서 일어난 전투였다. 이 전투는 단 하루 싸움이었는데, 하루 동안에 2만 2000명 이상의 남ㆍ북군 사상자를 낸 격전이었다. 하루 손실로는 전쟁 중 남북이 최대 손실을 본 전투였다. 남ㆍ북군 장군만 18명이나 전사했다. 이 전투는 어느 쪽도 결정적 승리를 하지 못했다. 단지 북군이 명목상 조금 유리하게 끝낸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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