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04:21 (수)
아라가야 500년 역사 품은 왕릉 당시 원형 잘 보존
아라가야 500년 역사 품은 왕릉 당시 원형 잘 보존
  • 음옥배 기자
  • 승인 2022.06.22 2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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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유적 발굴 현장을 가다

국내 최대급 최고 지배자 묘역
군, 유네스코 등재 신청 추진
가야사 연구 획기적 유물 출토
집모양토기 등 상형토기 `다양`
말이산 45호분 `금동관` 출토
75호분 `연꽃문양 청자그릇`
가야문화권 내 첫 中 청자 발견
남문외, 말이산고분군 추가 지정
함안 남문외고분군의 말이산고분군으로 사적 추가 지정으로 가야 전 시기의 역사ㆍ고분군 발전 양상을 보여주는 완전성을 확보했다.

가야 역사는 발굴을 통해 역사의 중심 무대로 떠오르고 있다. 잊혀진 역사는 지금까지 문헌의 증거 부족 때문이었다. 가야사 복원이 힘을 받으면서 도내 중심으로 가야사 발굴 현장에 눈길이 더 가고 있다. 도내 발굴 현장의 현주소를 들여다보고 앞으로 더 상세하게 기술될 가야사를 기대한다. 

<글 싣는 순서>
① 김해 금관가야고분군 
② 함안 말이산고분군
③ 창녕 가야고분군
④ 합천 가야고분군
⑤ 고성 송학동고분군 

 

5세기 초 아라가야 위상을 보여주는 `금동관`.

함안군은 아라가야의 고도로 알려진 지역으로 말이산고분군, 성산산성, 가야리유적 등 아라가야의 핵심 유적과 1600년 전 집모양ㆍ배모양 토기 등 보물급 유물들이 남아 있어서 아라가야 500년의 역사를 지키고 있다.

특히 말이산고분군은 아라가야 시대에 조성된 당시의 원형이 잘 보존돼 탁월한 경관을 가지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발굴된 말갑옷 등의 출토 유물이 아라가야의 우수한 문화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2020년 9월 그 가치를 인정받아 김해ㆍ고령ㆍ고성ㆍ창녕ㆍ합천ㆍ남원의 가야고분군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 대상`에 선정됐다.

당초 이달 러시아 카잔에서 열리는 `제45차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에서 등재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었지만 전시 상황으로 연기됐다. 이에 함안에 있는 고분군 현장을 방문해 발굴 현황과 그 가치를 살펴본다.

말이산고분군 유물 `사슴모양뿔잔`.<br>
말이산고분군 유물 `사슴모양뿔잔`.

말이산고분군, 가야고분군 중 `최대`
함안 말이산고분군(사적 제515호)은 아라가야 최고 지배자의 묘역이다. 단일 유적으로 국내 최대급 규모(면적 532.271㎡)를 가진 아라가야의 왕릉으로 해발 40~70m의 능선 정상부에 대형 봉토분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다. 이러한 모습은 과거 함안을 중심으로 성장해 세력을 떨친 아라가야의 문명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다.

말이산고분군에서는 1600년 전 집모양토기, 배모양토기 등 보물급 유물을 비롯해 5세기 초 아라가야 위상을 보여주는 금동관과 5세기 중국 남조의 연꽃문양 청자그릇 등 가야사 연구의 획기적인 유물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45호분은 대형 봉분을 갖춘 덧널무덤으로, 구릉 정상부의 암반을 깎아 봉토의 기저부를 조성하고 그 내부를 다시 파서 덧널의 매장주체부를 조성했다.

무덤 내부에서는 보물급 유물들이 다수 출토됐다. 특히 피장자의 머리 위쪽 유물부장공간에서는 다수의 유물과 함께 집모양토기, 배모양토기, 사슴모양뿔잔, 등잔모양토기 등 다양한 상형토기들이 출토됐다. 지금까지 한 고분에서 이처럼 다양한 상형토기가 출토된 사례는 처음이다.
또한 피장자가 안치된 좌ㆍ우측과 발치 아래에서는 말갑옷과 투구, 큰 칼, 금동제 말갖춤새 등이 확인돼 이 고분이 아라가야 최고 지배층의 무덤임을 보여준다. 출토 유물과 유구 현황을 종합적으로 볼 때 고분의 축조 시기는 400년을 전후한 시기로 아라가야 최초의 고총고분의 등장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말이산 45호분에서는 국내 최초로 봉황장식 금동관이 출토됐다. 금동관은 횡으로 긴 관테 위에 봉황 두 마리가 마주보는 형태의 세움장식이 올려져 있다. 관테는 이마의 윤곽에 맞춰 만든 듯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1매의 동판에 관테와 세움장식은 일체형으로 표현돼 있다.

금동관은 하부의 관테와 상부의 두 마리 새 모양 세움장식이 마주보고 있는 대칭적 구도로 이러한 형태는 우리나라 삼국시대 금공품 가운데 첫 사례이다. 국내에서 보고된 관 중 처음 확인되는 형태로 봉황무늬가 대칭을 이루는 구도, 짧은 관테에 촘촘히 구멍을 뚫은 점, 표면과 이면에 아말감기법으로 도금된 점을 고려할 때 이 금동관은 아라가야 공방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향후 아라가야의 금공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말이산고분군 75호분 발굴조사에서 가야문화권에서는 처음으로 5세기 중국 남조에서 제작된 연꽃문양 청자그릇이 발굴됐다. 가야문화권 내에서 중국제 청자가 발굴된 것은 백제문화권과 가까운 남원 월산리고분군에서 계수호가 발견된 예는 있지만 가야 중심권역에서 처음 발굴된 것이다.

연꽃무늬 청자는 서쪽 유물 부장공간에서 무너진 돌덧널의 벽석을 들어내자 구경 16.3㎝, 높이 8.9㎝, 저경 7.9㎝ 크기의 거의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출토됐다.
아라가야 최고 지배층 묘역인 함안 말이산고분군에서 중국 남조 최고급 청자가 출토됐다는 사실은 5세기 후반 중국 남조와 아라가야가 교류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라국왕 하지가 남제에 사신을 파견해 조공하고 보국장군 본국왕의 작위를 받았다는 `남제서`의 `동남이열전` 기록에서 기존의 대가야를 지칭한 것으로 알려져 있던 `가라왕 하지`를 아라가야 왕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말이산고분군 내부에서 발견된 다양한 `상형토기`.<br>
말이산고분군 내부에서 발견된 다양한 `상형토기`.

함안 남문외고분군, 말이산고분군으로 통합 지정
`남문외고분군`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1915년 첫 조사가 이뤄졌으나 그 결과가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고, 1940년 조선총독부의 고적 지정에서도 제외돼 오랫동안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지역 향토사 단체 및 학계의 노력으로 지난 2000년 경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후 2013년 본격 조사가 시작됐다. 정밀지표조사 및 시ㆍ발굴조사를 통해 6세기 아라가야 최고 지배자의 묘역으로 밝혀졌다. 특히 남문외 6호분에서는 가야 최대 규모의 돌방무덤이 확인돼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남문외고분군의 말이산고분군으로 사적 추가 지정은 아라가야 전 시기(1~6세기)의 역사, 널무덤ㆍ덧널무덤ㆍ돌덧널무덤ㆍ돌방무덤으로 이어지는 고분군의 발전 양상을 보여주는 완전성을 확보했다. 또한 가야리 유적ㆍ말이산고분군ㆍ성산산성으로 이어지는 완전한 가야 고도 형태를 갖추게 됐다.

5세기 중국 남조의 연꽃문양 청자그릇.<br>
5세기 중국 남조의 연꽃문양 청자그릇.

함안 가야리유적, 가야문화권 최대 규모 토성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에 위치한 함안 가야리유적은 2㎞이상의 가야문화권 최대 토성으로 확인됐다. 유적의 규모가 신라의 왕궁인 경주 월성, 백제의 왕궁인 부여 부소산성 등과 비슷하며 대규모 노동력을 투입해 국가 차원에서 보호해야 할 만큼의 중요한 시설이 이 곳에 존재했음을 확인했다.

가야리유적은 지난 1587년 편찬된 함주지에 옛 나라에 터가 있던 곳으로 기록돼 오랫동안 아라가야의 왕궁지로 추정돼 왔다. 그러던 중 성벽 일부가 드러나 실체가 확인됐으며, 이후 발굴조사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대에 만들어진 토성과 목책 등 중요한 유구가 조사돼 학술적 중요성이 인정됐다. 이외에도 함안에는 △성산산성 △안곡산성 등 유적이 있다. 군 가야사 담당 관계자는 "말이산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는 아라가야의 고도 함안의 문화유산이 국제사회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은 긍지와 자부심으로 미래 발전의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 기사는 경남도 지역신문 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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