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20:38 (화)
가야 고도 김해 고분군 `세계유산` 달고 부활 꿈꾼다
가야 고도 김해 고분군 `세계유산` 달고 부활 꿈꾼다
  • 김용구 기자
  • 승인 2022.06.13 2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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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유적 발굴 현장을 가다

1∼5세기 지배층 대성동 무덤
시, 9년간 유네스코 등재 추진
내년 위원회 결과 발표 전망
가야 중심 세계관광 자원 인정
양동리서 청동솥ㆍ창 등 발견
고대 중국ㆍ일본 교류 입증
예안리서 온전한 인골 출토
가야인 생활상 연구에 도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김해시 대성동고분군 유적공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김해시 대성동고분군 유적공원.

가야 역사는 발굴을 통해 역사의 중심 무대로 떠오르고 있다. 잊혀진 역사는 지금까지 문헌의 증거 부족 때문이었다. 가야사 복원이 힘을 받으면서 도내 중심으로 가야사 발굴 현장에 눈길이 더 가고 있다. 도내 발굴 현장의 현주소를 들여다보고 앞으로 더 상세하게 기술될 가야사를 기대한다. 

<글 싣는 순서>
① 김해 금관가야고분군  ② 함안 말이산고분군 ③ 창녕 가야고분군 ④ 합천 가야고분군 ⑤ 고성 송학동고분군 

 

지난 2011년 대성동고분군 76호분에서 출토된 목걸이(보물).
지난 2011년 대성동고분군 76호분에서 출토된 목걸이(보물).

2000년 전 금관가야 도읍지인 김해시에서는 당시 뛰어난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문화재가 다수 출토됐다. 국보 제275호인 도기 말머리장식 뿔잔과 국가 사적인 수로왕릉ㆍ왕비릉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최고 지배층 무덤인 대성동고분군은 도내 다른 지역 고분군 6곳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다. 이들 고분군은 가야 정치체의 각 중심지에 있으며 가야 문명의 사회 구조를 반영한 묘제와 부장유물을 갖춰 당시 생활상을 잘 보여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양동리고분군 270호분에서 지난 1992년 출토된 수정목걸이(보물).
양동리고분군 270호분에서 지난 1992년 출토된 수정목걸이(보물).

당초 이달 러시아 카잔에서 열리는 `제45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었지만 전시 상황으로 연기됐다. 이에 따라 최종 평가는 내년 위원회에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해시는 지난 2012년부터 9년간 등재를 위해 공을 들여왔다. 등재에 성공하면 가야문화권 중심도시로서 입지를 더욱 굳건히 다지는 것은 물론 세계적인 관광자원으로 위상을 높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역에서는 등재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고조되고 있다. 이에 김해에 있는 고분군 현장을 방문해 발굴 현황과 그 가치를 살펴본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대 `대성동고분군`

국가사적 제341호인 대성동고분군은 1~5세기 최고 지배층 무덤이다. 옛 김해만을 바라보는 낮은 구릉지에 들어섰다. 유적공원이 조성된 이곳은 구시가지 중심에다 해반천을 끼고 있어 지역 대표 휴식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부산김해경전철과 인접해 접근성도 뛰어나다. 이 때문에 평일ㆍ휴일 할 것 없이 여유를 만끽하고자 하는 연인, 가족단위 방문객 등으로 붐빈다.

대성동고분군은 전기 가야연맹을 주도한 금관가야의 발전, 계층구조, 대외관계를 잘 드러내는 대표 고분군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이곳은 신라, 백제 등 주변의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와 병존하면서도 연맹이라는 독특한 정치체계를 유지했던 가야 문명을 잘 보여준다.

시는 지난 1990년부터 2020년까지 총 10차례 걸친 발굴조사에서 널무덤, 덧널무덤, 굴식돌방무덤 등 다양한 양식의 무덤을 발굴했다. 특히 지난 2019년 12월 9일부터 2020년 7월 3일까지 목곽묘 29기, 목관묘 26기 등을 대상으로 진행된 조사에서 600여 점의 유물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보존이 완벽한 귀족층 무덤인 108호분(덧널무덤)과 가야 무덤 최초로 문양이 새겨진 다량의 칠기(漆器) 흔적도 확인됐다. 또 국내 최초로 청동 화살촉이 무더기로 발굴됐다.

 

대성동고분군 88호분에서 발견된 금동허리띠장식(도 유형문화재).
대성동고분군 88호분에서 발견된 금동허리띠장식(도 유형문화재).

특히 발굴 막바지에 청동거울, 호랑이ㆍ말모양 청동허리띠고리 등 가야시대 주요 유물이 쏟아져 학계 이목을 모으기도 했다. 아울러 이곳에서 출토된 철제무기 등은 중국ㆍ가야ㆍ일본으로 이어진 국제교역이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현재 출토품은 지난 2003년 문을 연 대성동고분군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시는 7억 7000만 원을 들여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가야마당에서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화강석 바닥재를 들어내고 황토로 재포장하기도 했다. 또 기존 광장을 철거하고 잔디와 나무를 심는 공사를 마치며 휴양 기능을 강화했다.

 

예안리고분군 출토 유물.
예안리고분군 출토 유물.

지배 구조 실마리 제공 `양동리고분군`

주촌면 양동리 산3에 있는 양동리고분군(국가사적 제454호)은 전기 가야 무덤 유적이다. 또 다른 지배층 무덤 중 하나로 권력 이동 과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됐다.

지난 1984년부터 2011년까지 8차례에 걸친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이어 중앙부 500㎡를 집중 발굴한 지난 2020년 조사에서는 목관묘(나무널무덤) 37기, 목곽묘(나무덧널무덤) 3기, 석곽묘(돌덧널무덤) 11기, 석관묘(돌널무덤) 1기, 옹관묘(독널무덤) 5기, 수혈(구덩이) 7기 등 중소형 무덤이 다수 발견됐다.

반면 대형 무덤은 발굴되지 않으면서 고분군 내 신분에 따라 무덤을 조성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해당 고분은 대성동고분군과 우위를 다투던 세력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3세기 말을 기점으로 부장유물의 질이 대성동고분군과 비교해 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패권이 옮겨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 금관가야 왕권이 정립됐다. 

또 이곳 무덤은 조밀하게 겹쳐 조성돼 있으며, 등고선과 평행하게 5~6열에 배치되는 양상이 처음으로 확인돼 연구 중이다. 이와 함께 1~4세기 통모양그릇받침, 철검 등 15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또 청동솥과 청동창 등 고대 중국, 일본과의 교류를 알 수 있는 유물도 나왔다.

김해 가야고분군들은 역사적 가치가 높은 만큼 도굴 피해가 적지 않다. 특히 양동리고분군은 피해가 커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예안리고분군 출토 유물.
지난 2019년 양동리고분군에서 발굴 조사가 추진 중인 모습.

온전한 가야 인골 확인 `예안리고분군`

국가사적 제261호로 지정된 예안리고분군은 가야인골의 보고(寶庫)로 불린다. 지난 1976년부터 1980년까지 최초 조사에서 많은 가야인골이 출토됐다. 

지난 2019년 조사에서도 목곽묘(나무덧널무덤) 6기, 석곽묘(돌덧널무덤) 31기가 발견됐으며 무덤마다 인골 흔적들이 나왔다. 특히 목곽묘 1호와 21호에서 완벽한 인골 2기가 확인됐다.

인골은 형질인류학분석을 통한 성별ㆍ나이ㆍ질환 파악, 안정동의원소 분석을 통한 식생활 연구, DNA 분석을 통한 친족 관계 확인 등 연구 가치가 높다. 이는 가야인의 생활상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곳에서는 국내 처음으로 이마를 납작하게 변형시키는 풍속인 편두가 발견되기도 했다.

무덤 조성 시기는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초까지로 추정된다. 유물들은 토기와 철기 위주로 출토됐다. 또 목곽묘에서 석실묘로 변해가는 무덤의 변천 과정도 보여준다.  

이외에도 김해에는 △구산동 고분군 △봉황동 유적 등 가야유적이 있다. 

시 가야사복원과 관계자는 "고분군을 포함해 지역 내 유적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국제적인 문화도시 브랜드를 창출하는 동시에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많은 사람과 가야역사 문화의 가치를 향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위 기사는 경남도 지역신문 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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