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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이야기 ⑥
출가이야기 ⑥
  • 경남매일
  • 승인 2022.06.13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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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정사 주지ㆍ<br>(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br>
여여정사 주지ㆍ
(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우리의 삶은 이론과 실제로 구성된다. 이론이 온갖 생각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인생의 목표를 계획하는 것이라면 실제는 자기의 이상을 현실 세계에서 부딪히며 체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반인의 삶처럼 스님들도 선방이나 토굴에서 정해진 수행 기간을 마치고 수행 중 깨달은 이치를 실제의 삶 속에서 점검하는 것을 만행(萬行)이라 한다. 

사실 수행이란 우리의 인생이 아무런 문제가 없고 완벽하다면 필요치 않다. 그러나 성인(聖人)조차도 처음엔 부족함이 있었기에 예외 없이 명상과 기도 등의 수행을 통해 완성을 이룬다. 때문에 수행의 진정한 목적은 수행 자체에 있지 않고 그것을 통해 현실에서 부족했던 것을 보완해가는 것에 있다. 그래서 수행의 결과를 최종 검정하는 곳은 극락이나 천당이 아닌 사바세계인 지금 이 자리이기도 하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했는데 필자의 청춘도 어지간히 힘들고 아팠다. 만약 아픔이 성장을 위한 청춘의 특권이라면 특권을 포기하고서라도 아픔을 겪지 않고 싶었을 정도였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청춘이란 몸과 마음으로 다가온 죽음의 불안함을 해결하고자 이리저리 헤매던 시기였다. 

생사 문제의 해결은 입산으로 이어졌고 다양한 인연들을 만났다. 또한 `출가`라는 결론의 지점에서 보면 단 하나의 인연도 배제할 수 없는 소중한 만남이었다. 산에서 10여 개월을 살다가 하산한 후 부산에서 만난 배달민족학당의 백공 선사님을 비롯한 여러 인연들도 마찬가지다. 세상과 산을 오가던 중 백공 선사님의 배려로 밀양 삼랑진에 위치한 선도(仙道) 수행도량 삼일원에 가게 됐다. 

당시가 11월 말이었는데 산골의 초겨울 추위가 엄청났다. 오후 늦게 도착해 산막에 짐을 풀고 나니 금세 어둠이 몰려왔다. 방을 데우려고 군불을 때는데 아궁이에 불은 들어가지 않고 연기만 자욱하였다. 어쩔 수 없이 첫날을 얼음 같은 냉방에서 잠을 청하는데 추위로 잠을 설치고 다음 날 깨어 보니 온몸이 단단하게 굳어있었다. 겨우 몸을 추슬러 아침에 아궁이를 살펴보니 안에서 구들이 내려앉은 탓에 불길을 가로막아 방이 냉골이었던 것이었다. 곧 구들을 고치고 갈라진 방바닥을 메웠다. 산 생활은 모든 것이 부족한 환경이라 어지간한 문제는 `맥가이버`처럼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 

삼일원에 살면서 스쳐 가는 많은 이들을 보았다. 충북 제천이 고향인 무술 하는 최사범, 당시 정수좌로 불리다 지금은 나의 사제가 된 도우 스님, 떠돌이 황도사 등 짧게는 몇 달부터 해를 넘기며 함께 생활하는 이도 있었다. 단군교의 수행터에 살았지만 단군의 진면목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그 도량에 의지하던 때라 단군의 좌상이 모셔진 법단에 계곡의 맑은 물을 올리고 때때로 절을 한 자리씩 하곤 했다.

산에 얼마간 머무르던 어느 날, 불교 계통의 어느 계간지에 한국의 선지식들이란 부분을 보았다. 거기에는 7~80년대 재가 거사로서 법풍(法風)을 드날렸던 백봉(白峰) 김기추 거사님의 수행과 깨달음에 대한 내용이 실려있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학창 시절부터 청년기까지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경에 붙들려 사형을 언도받는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을 때 간수로부터 관세음보살을 간절하게 부르면 살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을 불러, 이때 종교적 신비 체험을 하게 된다. 이후 감옥에서 해방을 맞았고 얼마간 정치계에 몸담다가 5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화두 수행 중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고 깨달음의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아 나는 그만 그에게 매료되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그는 십여 년 전에 이미 고인이 되셨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의 향훈을 느끼고 싶어 묘소가 있는 지리산 국동의 보림선원을 찾아갔다. 당시 그곳은 거사님의 아들이 지키고 있었다. 아드님은 나를 방으로 안내하였고 벽에는 청담 큰스님의 부처 `佛`자 휘호와 함께 백봉 거사님이 직접 쓴 문성막타협(聞聲莫妥協)이란 족자가 걸려 있었다. `소리를 듣되 타협하지 말라`, 즉 말이란 외적인 표현에 현혹되지 말고 본질을 바로 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날 아드님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거사님의 일화들을 알게 됐고 첫 만남에 우리는 호형호제하기로 하였다. 그는 거사님의 책을 한 보따리 주며 대뜸 "출가는 하지 마라"는 뜬금없는 당부로 나에게 거사의 삶을 권유하였다. 

이후 한동안 백봉 거사님의 책을 탐독하고 마음을 위로하며 그를 정신적 스승으로 삼았다. 이처럼 영적인 스승들에게는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그 정신은 후학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인생의 좌표를 새롭게 제시해 주기도 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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