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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밖을 내다보자 ⑩
나라 밖을 내다보자 ⑩
  • 경남매일
  • 승인 2022.06.13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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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어쩌자고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왔나. 훌륭한 건국의 아버지들이 세운 좋은 나라, 그 많은 인재를 키운 미국이 어떻게 이런 비극을 자초했단 말인가.

앞서 본 정치, 경제적 여건과 사건들이 국가의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지만, 인간의 아집과 편견이 적지 않게 역사의 진로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바로 이들 과격파, 편집광들이 사태를 결국 망쳤다고 나는 본다. 노예 소유주나 지지자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죽여야 한다며 아들과 합세하여 캔자스에서 마구 살인을 저지른 브라운 같은 사람, 남부의 비위를 조금만 건드려도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당장에 연방을 탈퇴하겠다`라고 입버릇처럼 으름장을 놓아온 부통령 출신의 칼훈 같은 사람, 남부의 노예 형편을 `아내가 강간을 당하는 상황으로, 아이가 불길 속에서 타죽는 위급상황`으로 비유한 `해방자`의 발행인 게리슨, 링컨에 반항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링컨 인형을 화형하는 사람들ㆍ. 이들 부류가 건전한 사람들의 현명한 사태 수습의 기회를 방해하고 봉쇄해 사태를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몰고 가게 한 것이다.

그런데 일을 그르치게 하는 부류는 이런 광신도 같은 사람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상당 수준의 지식인, 지도적 인사 중에도 완고한 아집에 빠져 사태를 파국으로 빠트린다. 바로 북부의 도덕적 절대주의나 남부의 법률적 절대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도 광신도 못지않게 파국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 북부의 꽉 막힌 도덕가들은 자기들은 신의 소명에 따라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므로 어떤 타협도 있을 수 없다. 법적인 절차나 다수결의 원칙 같은 것도 인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 보스턴의 변호사 필립스 같은 사람은 노예 폐지 게리슨협회 회원인데, "신의 편에 선 사람은 비록 하나일지라도 다수이다."라고까지 주장하였다. 

한편 남쪽의 법률 절대론자들의 교조적 경직성과 강경책은 북의 절대론자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한 치도 모자람이 없었다. 결국 이런 과격론자, 절대주의자들은 어느 사회에나 다 있기 마련이다. 사회가 건전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이런 독버섯 같은 인물들이 처음부터 자라나지 않도록 현명한 조처를 해나가야 한다.

결국, 이런 편집광, 절대론자들이 세상을 필요 이상으로 처절하게, 광적으로 끌고 가 참혹한 전쟁을 4년이나 치러야 했던 것이다.

마. 게티즈버그미국을 얘기하면서 링컨이나 게티즈버그 전투를 빼놓을 수 없다. 세기의 명연설 `게티즈버그 연설`도 이곳 전투에서 산화한 젊은이들을 추모한 연설이다.

나는 20여 년 전에 외람되게 미국 남북전쟁사를 쓴 적이 있다. 5년이 걸렸다. 속된 사투리로 정말 `식겁`했다. 정말 힘들었다. 쓰다가 중간에 그만둔 적도 서너 번이다. 원고지를 앞에 두고 몇 시간을 천장만 바라보다가 그냥 일어났다. 글이 안 써지기 때문이다. 영감이 안 떠올랐다. 꽉 막혔다. 역사가도 아닌 내가 남의 나라 역사를 쓰겠다는 게 무리였다. 그때 번개처럼 떠오르는 생각, `현장에 가보자, 미국에 가자`는 생각이었다.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에서 여행 계획을 세웠다. 버지니아, 매릴랜드, 펜실베니아 등 한 달 동안 전쟁터를 두 차례나 돌았다. 매너서스, 앤티텀, 챈슬러스빌 등 격전지를 골라 차례로 돌았다. 게티즈버그에는 다섯 번을 갔다. 나는 놀랐다. 가는 곳마다 너무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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