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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이야기 ⑤
출가이야기 ⑤
  • 경남매일
  • 승인 2022.06.06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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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과거 출가인은 세속과 인연을 끊고 고향을 멀리 떠나 입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또한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속가를 찾지 않는 것이 진정한 출가인의 자세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월이 변해서인지 절집의 풍속도 많이 변하고 있다. 과거 출가자가 고향을 멀리하였던데 반해 이제는 고향이나 그 가까운 곳에서 사찰을 짓고 포교하는 것을 흔하게 본다. 또한 스님들의 부모님이 상(喪)을 당하면 도반이나 인연 있는 스님들께 부고(訃告)를 알리는 것이 특별한 일도 아닌 시대가 되었다. 

필자도 고향을 멀리 벗어나 출가하려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절 뒷산에 오르면 고향 앞산이 저 멀리 보이는 곳에서 행자 생활을 하였고 돌고 돌아 이제는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

10대에 얻은 마음의 병을 산에서 치료하기로 결심하고 20대 중반에 입산했다. 여러 인연을 만나던 중 선방에서 토굴로 수행하러 온 선객 스님과 동갑내기 처사를 만나게 되었다. 스님께 출가를 권유받았지만 당시만 해도 출가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당시 필자는 출가의 진리보다는 세속에서 도를 완성한다면 그것이 더 가치 있다고 여겼다. 그것은 나에게 `영가무도`를 전수해준 배 선생님이 설파하신 유가 공맹(孔孟)론의 영향도 있었고 `이왕이면 현실 세계의 행복과 이상세계의 깨달음을 얻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이 더 큰 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있어서였다. 

자기 몸과 마음 하나 제대로 못 추스르면서도 세상에서의 걸림 없는 삶을 동경하던 철없던 시절이었다. 얼마 후 배 선생님도 본가인 계룡산 인근 논산으로 가시고 층층골은 스님과 총각처사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 살게 되었다. 토굴살이를 해보면 대개 아주 부지런하거나 아주 게으르거나 하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는데 나는 전자이고 스님댁은 후자였다. 

배 선생님은 늘 "그 사람 사는 마당을 보면 그 사람 살림살이를 안다."고 하였기에 나는 틈만 나면 마당에 풀 뽑고 텃밭을 일구거나 산에서 약초를 캤다. 그러다 간혹 스님 토굴에 가면 사람 다니는 길만 풀이 없고 곳곳에 잡풀이 무성하였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분들도 자신들의 규칙대로 수행에 중점을 두고 생활했으며 소소한 일상에는 무심하였음을 알게 된다. 

나는 하루 일상이 나름 바빴는데 시간이 나면 틈틈이 유교의 사서(四書) 중 하나인 공자의 중용(中庸)을 보았다. 공자님 도의 핵심이 중용에 있다는 배 선생님의 말을 듣고 한번 탐독해 보았는데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어쨌든 공자님 사상의 진수가 담겨있는 유교의 경전을 수행과 경륜이 부족한 나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니 어려운 게 당연하였다. 그러다 시간은 흘러 10여 개월의 산 생활을 청산하고 부모님이 사시는 부산의 본가에 머물게 되었다. 산에 살다 속가의 아파트로 가니 매우 갑갑하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집 부근의 골목 전봇대에 붙여진 `중용 무료강의`라는 벽보를 보았다. 순간 놀랍고도 기뻤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중용을 무료로 강의해 주는 데가 있다니…

전화로 위치를 파악해 그곳에 가보니 `배달민족학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성현의 가르침을 강의하는 수행처였다. 그곳은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을 신봉하는 민족 종교인들의 공부방이었고 선체조라는 일종의 요가 비슷한 도인(導引) 체조를 병행해 가르치고 있었다. 경전을 가르치는 분은 백공 선사(仙師)라는 분으로 대춧빛 얼굴에 가슴까지 내려오는 멋진 수염과 동굴 속이 울리는 듯한 근사한 음성의 소유자였다.

그는 유, 불, 선을 넘나들며 내가 알지 못하는 깊은 내용의 강의를 해주었고 스승과 제자의 예는 맺지 않았지만 마치 제자처럼 자애롭게 대해 주셨다. 백공 선사와 제자들로 구성된 수련생들과 함께 마치 가족처럼 편하게 지냈다. 학당의 주요 구성원이었던 미리솔, 오사범, 범님은 내가 방황할 시기에 격의 없이 대해줬던 고마운 분들이다. 중용을 배우러 갔지만 진리를 배우기보다 마음 따뜻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선사님이 삼랑진에 있는 수련도량 삼일원(三一院)에 가보자고 하여 다른 몇 사람과 함께 갔다. 삼일원은 밀양 삼랑진의 가장 깊숙한 산골 오지인 통짐에 위치했는데, 마을에는 대여섯의 산채가 있었고 그중에 저의 출가 은사가 되신 정여 큰스님의 토굴도 있었다. 도시 생활이 갑갑하던 나는 얼마 후 선사님의 배려로 쌀 한말과 김치와 된장을 지원받아 삼일원 지킴이가 되었고 여기에서 정여 큰스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인생은 다양한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는 여정이다. 인생에서 출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으나 새로운 세계로 가는 관문의 역할을 한다. 또한 그 도상에서 만난 숱한 인연들이 모두가 출가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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