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6:15 (수)
출가 이야기(出家記) ③
출가 이야기(出家記) ③
  • 경남매일
  • 승인 2022.05.24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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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 스님
산사정담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스님들의 이름을 법명(法名)이라 하고 출가한 햇수가 오래되거나 진리의 한 소식을 얻으면 법명 이외에 법호(法號)를 쓰는데 대개는 스승으로부터 받거나 스스로 지은 자호(自號)를 쓴다. 성철 큰스님은 자신을 낮추어 `뒷방 늙은이`를 뜻하는 퇴옹(退翁)으로 호를 지으셨는데 평생 세상에 잘 드러내지 않았던 자신의 정체성을 법호에 담았다.
한편 스님의 법호는 또 다른 방식으로도 짓는데 예를 들면 조선 시대의 서산대사 같은 경우이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승병의 총대장인 총섭(摠攝)으로 국난을 극복하는 데 일조했을 뿐 아니라 높은 깨달음을 얻은 대선사(大禪師)였다. 스님의 법명은 휴정(休靜)이고 호는 청허(淸虛) 또는 세간에 알려진 서산(西山)이다. 이 법호는 스님이 서산의 다른 이름인 묘향산에 오래 머물렀기에 붙여졌다. 불가에서 스님이 머물렀던 산 이름과 법호를 함께 쓰는 경우는 흔하다. 이는 외부의 대자연과 그 속에 의지하고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소자연은 분리되지 않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필자는 운명의 회오리 속에서 이십 대에 혹독한 심적 고통을 겪으면서 치유의 공간으로 산을 택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얼른 심신의 고통을 극복하고 멋지게 세상에 복귀하겠노라고. 젊은 혈기에 마음은 `오늘 자고 나면 내일은 몸과 마음이 회복될 것이다` 여겼지만 회복은 더뎠다. 
희망과 불안 속에 먼저 입산한 분들의 도움으로 산 생활은 시작했으나 첫날부터 이름 모를 산짐승의 괴성으로 두려움에 잠을 설쳤다. 밤이 되면 산짐승의 울음소리는 온 산을 뒤흔들었고 산그늘이 드리워지면 슬슬 두려움이 몰려왔다. 잠을 설치길 며칠째 산 생활 초보인 총각이 어찌 사는지 토끼봉에 사는 자인 스님이 내왕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랐다. 그에게 밤마다 울어대는 그 짐승에 대해 물었더니 그 소리의 주인공은 `고라니`라고 했다. 필자가 두려워한 짐승이 호랑이나 늑대도 아닌 초식동물인 고라니라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발정기 때에 짝을 찾느라 저렇게 울어 댄다고 하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해가 됐다. 어쨌든 그날 이후 아무리 괴성이 나도 두렵지 않았는데 기껏해야 고라니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후 자인 스님과의 왕래는 빈번해졌고 며칠씩 상대의 토굴에서 묵어갈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는 세속도 맞지 않고 절집도 맞지 않은 경계인이었지만 자연의 품은 예외였고 의식주가 열악한 산속 환경에서 그만큼 잘 적응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럭저럭 산 생활이 한 달이 지날 즈음 검은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오는 육십 대 초로의 사내가 커다란 배낭을 메고 나의 토굴을 찾아왔다. 건장한 체격의 그는 100여m 떨어진 주인 없는 토굴에서 살려 왔다고 했다. 적적한 산중에서 이웃이 생긴다니 내심 반가웠고 다음 날 바로 그의 산막을 찾았다. 그에게 인사하고 산에 사는 내력을 간단히 말했는데 나의 사연을 듣고서 젊은 사람이 산에 사는 것에 대해 측은하게 여겼다. 그리고 자기소개를 하였는데 듣고 보니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범상치 않은 외모만큼 신상도 특이하였다. 
그는 영가무도(詠歌舞蹈)라는 우리 민족 전통의 선도(仙道) 수행자였고 그 단체의 수장이었다. 배 선생으로 불린 그의 설명에 의하면 `영가무도`란 음, 아, 어, 우, 이의 다섯 가지 소리를 고저장단으로 반복해 내면에서 신명이 나면 자리에서 일어나 발꿈치를 들고 춤까지 추게 된다고 한다. 오음(五音)의 파장이 그와 연결된 `오장(五臟)`을 정화해 피가 맑아지면 몸의 병이 없어지고 정신도 밝아져서 영통(靈通)한다는 것이다. 
심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온갖 약과 민간요법은 물론 굿까지 하였지만 도무지 차도가 없어 산에 들어온지라 그의 말을 들어보니 귀가 솔깃하였다. 그래서 며칠 후 제자의 예를 갖추어 배움을 청했고 그와 단둘이 마주 앉아 소리 내는 법을 배우게 됐다. 
그와의 관계가 깊어지던 어느 날 자인 스님이 방문차 와서 우연히 세 사람이 한자리에 앉았는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둘의 대화 중 자인 스님은 탈속한 자신의 수행에 대한 우월감을 설파했고, 이에 맞서 배 선생 또한 진정한 도는 세속을 벗어나 있지 않는다는 논지로 되받아쳤기 때문이다. 조용한 산중에서 마음으로 의지하던 두 분의 논쟁으로 인해 필자는 입장이 난처했다. 세상의 시끄러움을 피해 산에 왔는데 산도 결코 평안하지만은 않았다. 사실 고요함의 핵심이 장소에만 있지 않고 투쟁 없는 각자의 내면에 있다는 걸 입산 초년생인 당시에는 몰랐다.
세월이 흘러도 말 없는 저 산들은 언제나 모든 것을 받아들여 평화롭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기 생각의 틀 때문에 시비를 일으켜 번뇌에 묶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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