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3:28 (목)
반지성으로 소란스러운 평산
반지성으로 소란스러운 평산
  • 김중걸 기자
  • 승인 2022.05.18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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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걸 편집위원
김중걸 편집위원

지난 10일 오전 한 라디오 방송국 시사 프로그램 방송작가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이날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앞둔 시간에 걸려 온 전화는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출연 섭외 전화였다. 국내 지상파 방송 3사 중 하나인 이 방송사의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은 대중적으로 크게 인기를 끌고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이다. 소개를 받았다는 작가는 "퇴임해 오늘 오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로 귀향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귀향 분위기와 주민의 입장을 얘기해 달라"며 방송 프로그램 전화 인터뷰 참여를 요청했다. 나는 하북면 주민이 맞기는 하나 균형을 가져야 하는 언론인이어서 방송 출연은 곤란하다며 정중히 사양했다. 그러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평산마을과 인접한 순지마을 등 마을 커뮤니티와 관련된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졌다.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 이야기의 시작은 `라디오 방송에 참여할 다른 주민을 소개해 달라는 데서부터` 대화가 이어지게 됐다. 방송작가는 족집게 과외라고 했다.

나는 노무현ㆍ문재인 두 전 대통령과는 취재현장에서의 연(緣)이 있다. 대통령 때 연은 없지만 노 전 대통령은 울산 현대자동차 노사분규 때 처음으로 만났다. 지난 1998년 8월의 더위 속에서 노사는 극한 대립을 했다. 당시 현대차는 재벌기업 최초로 1500여 명을 정리 해고했다. 이에 맞서 2만 8000여 명의 노조원은 30일째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했다. 당시 노동부 장관이 직접 중재에 나섰지만 실패하자 당정에서 국민회의는 노사정위원회와의 합동 중재단 파견을 결정했다. 당시 노 부총재 측근은 "부총재는 자기가 보기엔 분명히 해결할 수 있는데, 파국으로 치닫는다며 당정 협의 전에 미리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에게 중재단을 파견하자고 건의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장관의 입장은 달랐다고 한다. 조 대행에게 "`당은 2선으로 물러서 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회고했다. 당시 쟁점인 정리해고제는 외환위기가 온 1997년 말 국제사회가 한국 정부에 강력히 요구해 1998년 2월 노사정위원회의 합의로 법제화됐다. 6개월 뒤 재벌그룹으로는 처음으로 현대자동차가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같은 해 8월 24일 협상 최종 타결 기념사진에 노 부총재와 현대차 회장 사이에 취재 중인 내 모습이 중앙지 1면에 박제됐다. 노 부총재는 현장에서 밤샘 뻗치기 중이던 몇몇 기자들 사이에 찾아와 노사분규 현안을 놓고 열정적인 담소를 하던 모습이 선하다. 두 번째 만남은 대통령 당선인으로 찾은 김해 봉하마을 생가 방문 때다. 당선인 측으로부터 청와대 보도 완장을 받아 가까이에서 취재를 했다. 퇴임 후에는 양산 에덴밸리 리조트 노사모 모임과 양산 통도사 서운암 방문 때다. 열정 노사모인 마을 후배가 함께 있었다.

문 전 대통령은 부산 사상구 국회의원 출마 중 양산 넥센타이어 구내식당에서 같은 당 양산시장 후보 지원 유세 때다. 식판에 함께 밥을 먹던 기억이 새롭다. 지난 2016년 2월 양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서형수 국회의원 후보 기자회견장에서였다. 매곡사저에 이어 평산사저로 성공해서 귀향하기를 바라는 글을 여러 차례 썼다.

"산속 마을을 선호하는 문 대통령의 성향을 볼 때 조용히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산행을 하고 주민과 인사를 하는 유유자적한 일상의 삶을 살고 싶어 할 것이다"며 그간의 연(?)을 곁들인 나의 생각을 말했다. "세간에서는 봉하마을 얘기를 많이 하나 평산마을은 좁은 산길이고 도시처럼 개발할 용지도 없다. 주차장을 조성할 곳도 없는 데다 만들면 집회장이 된다. 불교성지 옆에 정치성지 탄생은 또 다른 마찰과 갈등 요인이 될 우려가 있다는 말을 경청했다. 영남권은 원래 보수색이 강한데다 진영 간 갈등이 격한 지방선거 때이고 더군다나 정권이 바뀐 정치적 상황에서 평산마을 주민이 방송에서 `환영.반대`를 말하는 것은 주민 개인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주민은 이사를 오는 이웃사촌에게는 별다른 감정은 없겠지만 이런저런 말을 하기에는 편향으로 치우친 `작금의 정치`가 편치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산사저 앞에는 연일 보수성향 단체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확성기 소리에 마을주민들이 힘들어하자 지난 10일 귀향 후 침묵을 지키던 문 전 대통령은 지난 15일 SNS에 `성당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확성기 소음과 욕설이 함께하는 반지성이 작은 시골 마을 일요일의 평화와 자유를 깨고 있다. 평산마을 주민 여러분 미안합니다`라며 불편한 심경의 글을 올렸다. 문 전 대통령이 자연을 택한 만큼 지지를, 반대하든 주민과 함께 자연 속에 평안하게 살도록 국민이 절제를 해야 한다. 언론도 부추김을 자제해야 한다는 말을 끝으로 작가와 나는 숙연했다. 평산마을이 평산(平山)해야 하는 숙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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