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7 03:40 (월)
"우리 도자기 맥 잇고 전통 사발 이름 되찾는 `불의 예술` 정진하죠"
"우리 도자기 맥 잇고 전통 사발 이름 되찾는 `불의 예술` 정진하죠"
  • 김중걸 기자
  • 승인 2022.05.16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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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사람 신한균 사기장 <양산 평산마을 신정희 요>
`신한균의 달항아리전`에서 작품을 보고 있는 신한균 사기장.
`신한균의 달항아리전`에서 작품을 보고 있는 신한균 사기장.

부친 신정희 사기장 가르침 가마로 굽는 전통방식 고수
청와대 국빈 선물로도 선호 `우리 사발 알리기` 등 책 출간
다수 방송 출연 등 강연 활동 부산 해운대서 `달항아리전`
달항아리 등 20여점 선보여

끊어진 우리 도자기의 맥을 잇고 우리의 전통 사발의 이름을 되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16일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신정희 요`에서 만난 신한균 사기장은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15일까지 한 달여 가까이 부산시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부산 센텀시티점 갤러리에서 진행된 `신한균의 달항아리전`의 여독에도 특유의 미소를 잊지 않았다. 이번 달항아리전에는 20여 점의 달항아리와 분청용호문, 백자정병, 양산노랑병, 황도사발, 양산법기선문사발, 양산법기노랑사발 등이 전시됐다. 전시는 성황리에 마무리 됐다. 그는 사발뿐만 아니라 조선의 달항아리도 꾸준하게 빚고 있다. 곡선이 풍만한 달덩이를 닮은 달항아리는 조선백자 중에서도 으뜸이다. 특히 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달항아리이다. 우아하면서도 소박한 선은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해 말하지 않아도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마치 한국 여인의 풍성한 치마 곡선을 닮았다. 유려한 곡선은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든다. 꾸밈없는 평범한 백자가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달항아리의 매력은 푸근한 어머니의 감성을 미학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부친인 신정희 사기장의 가르침 대로 가마로 굽는 전통방식을 고수한다. 1년에 3번 정도 가마에 불을 때 그릇을 구워낸다. 제대로 된 달항아리는 겨우 4~5점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귀한 만큼 청와대 국빈 선물로도 선호된다. 신 사기장의 달항아리는 풍부한 색과 질감으로 우리 그릇의 멋을 마음껏 표현했다는 극찬을 받고 있다.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사기장 애환

신 사기장은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된 조선 전통 사발을 400년 만에 국내에서 최초로 재현한 고 신정희 사기장의 장남이자 후계자이다. 도자기가 모태신앙인 신 사기장은 부친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다. 그는 30년 동안 도자기를 만드는 일과 함께 일본 학자가 왜곡한 우리 도자기의 본질을 바로 알리기 위해 우리 사발을 알리는 책을 여러 권 출간하고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1989년 일본 도큐백화점에서 첫 전시를 시작으로 해마다 초대전을 열고 우리 사발과 민족의 아름다운 멋이 깃든 달항아리 등 전통 도자기를 알리고 있다. 2008년에는 끊어진 한국 사발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조선시대 우리 사발의 애환을 담은 장편소설 `신의 그릇`을 출간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사기장의 파란만장한 삶과 사랑, 조국애와 고향에 대한 향수 등을 다룬 이 책은 황도사발(이도다완)에 얽힌 비밀을 소설로 풀어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신 사기장은 한국이 도자기의 종주국이면서도 전통 도자기의 명맥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은 한국의 현실 속에서도 꿋꿋하게 우리 그릇을 알리고 있다. 그는 우리 사발이 `막사발`로 불리고 있는 우리 사발을 `조선 사발(황도사발)`이라고 부를 것을 주장하며 끊임없는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일본인은 오히려 우리 사발을 `고려다완`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난 15일 폐막한 부산 해운대 신셰계백화점 센텀시티점에서 열린 `신한균의 달항아리전` 작품 모습.
지난 15일 폐막한 부산 해운대 신셰계백화점 센텀시티점에서 열린 `신한균의 달항아리전` 작품 모습.

"흙서 꼬신내 나야 참된 사기장" 새겨

신 사기장의 우리 사발에 대한 열정은 부친의 DNA를 고스란히 닮아있다. 고 신정희 선생은 생전에 도자기 귀신이 씌었다고 할 정도로 도자기에 열정을 쏟았고 마침내 우리 옛 조선 사발을 재현해 냈다. 그는 "흙에서 꼬신내를 느껴야만 참된 사기장이 될 수 있다", "도자기는 손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비 개인 후 발자국이 있는 흙을 퍼 와서 도자기를 만들어라 그러면 지구상에서 존재하는 단 하나의 작품을 얻을 수 있다", "사기장은 흙의 자조적인 힘을 끌어내는 자"라는 어록같은 말씀을 들으며 성장했다. 신 사기장에게는 부친의 말씀이 마치 한 편의 시와 같았다고 한다.

도자기는 불의 예술, 흙과 불이 전부

신 사기장은 부친의 가르침에 따라 흙과 불을 생명처럼 여긴다. 그는 도자기는 한마디로 불의 예술이라고 한다. 도자기의 색을 결정하는 것은 불의 온도이기 때문이다. 화가가 캔버스에 붓으로 그림을 그려 나가는 것처럼 사기장에게는 장작개비가 붓이고 물감이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개비는 물감이 돼 어떤 모양으로 조형된 흙에 채색을 한다. 사기장은 심산유곡을 다니며 좋은 흙을 찾고 밟아 물레를 치고 장작불을 때서 만드는 것이 도자기이다. 장작개비 하나에 도자기의 빛깔과 모양을 좌우한다. 1300도가 넘는 온도에서는 공기 중의 습도가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하는 등 가변적인 요소가 차고 넘치는 자연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도자기는 일반 그릇이 아니다. 작가의 개성이 묻어난 작품이다. 가슴으로 만든 예술이다. 조각가가 돌을 보고 형상을 찾아 주는 사람이라면 사기장은 흙을 보고 흙 고유의 때깔을 도자기로 완성하는 사람이다. 그는 "사기장은 흙의 자주적인 힘을 끌어내는 사람"이라며 "부친은 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며 첫째도 둘째도 흙이고 다섯째도 흙이다고 강조했다.

신 사기장은 "원래 그릇은 쓰라고 만든 그릇이다"며 "그림은 눈으로 보는 것이지만 그릇은 손으로 만져야 그 사발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며 많은 사람이 그릇을 `보는 그릇`으로 오해를 하는 것을 안타까워 한다. 그는 "제가 만든 그릇들이 가정에서 직접 사용되고 대를 물리는 명기가 됐으면 한다"며 "원래 그릇은 누가 만든 것 보다 누가 쓰는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 사기장은 우리 전통 그릇은 처음 만나는 순간의 색감과 질감의 아름다움은 평범하다고 할 수 있지만 쓰는 사람의 인격과 품성으로 다듬어지고 완성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도자 3분의 1은 도예가가 만들고 3분의 1은 가마의 여신이 만들고 3분의 1은 쓰는 사람이 만든다"며 결국 그릇은 사용을 위해 만들어졌고 사용함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릇은 특히 우리 민족에게는 그릇에 그치지 않고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담고 있는 하나의 세계라고 한다. 특히 차인들이 애용하는 사발은 그 시대 사기장의 정성과 인간들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민족의 정신이고 정체성이다. 도자기는 당시 첨단 기술의 하나였다고 한다. 당시 도자기 기술은 우리나라와 중국, 베트남 등 일부 국가에 그쳤다. 조선 사발은 임진왜란 전후로 일본으로 들어가면서 일본의 국보와 보물이 되고 도자 기술이 전파됐다. 정작 우리나라는 조선 사발을 잘 모른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고 한다.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신정희 요에서 조선 사발을 이야기하고 있는 신한균 사기장.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신정희 요에서 조선 사발을 이야기하고 있는 신한균 사기장.

우리 사발 알리기 위해 책 저술

신 사기장은 조선 사발을 잘 모르는 우리를 위해 저술 활동에 나섰다. 그 결과 도예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지침서이자 필독서인 `우리사발 이야기`와 한ㆍ일 찻사발을 비교ㆍ분석한 `고려다완`이 일본어로 일본에서 출간됐다. 또 `사발`은 일본다도학회 회장이자 노무라 미술관 관장인 타니 아키라 박사와 공동으로 저술해 출판했다. 특히 그는 조선 사발과 관련한 자료를 모으던 중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사기장의 애환을 알게 되면서 그들의 인간적인 고뇌 등을 담은 장편소설 `신의 그릇`(2권)을 출판했다. 이 소설은 일본어로 번역돼 일본 서점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신 사기장은 "그릇을 빚는 사기장이 글을 쓰기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으나 일본에서 보물로 여기는 조선 사발이 우리나라에서는 `막사발`로 불리는 등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폄훼되는 것에 의문이 쌓이면서 결국 펜을 들게 됐다"며 "막사발은 일본의 주장처럼 아무렇게나 만든 막 쓴 그릇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조선 사기장의 탁월한 기술과 예술혼으로 구현한 생활용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글을 쓰고 싶은 강한 욕망이 타 올랐다"고 한다. 그는 일본에서 국보 대접을 받는 `이도다완`은 조선시대 우리 조상이 제사에 사용했던 제기라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내기도 하는 등 우리 사발 알리기에 진심을 다한다. 그는 10년간 자료 수집을 하고 2년여 만에 소설을 탈고했다. 탈고 후 몸무게도 15㎏이나 줄어 들었지만 책을 쓰지 않고는 가슴 속에서 끓어 오르는 열병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우리 사발의 기구한 운명과 아직도 일본식 미학으로 평가하는 전문가들과 무관심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소설로 우리 사발의 역사를 알리려는 신 사기장의 생각은 주효했다. 소설을 통해 우리 사발과 그릇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한다.

신 사기장은 조선 사발의 대를 잇기를 바란다. 어쩌면 나라에 힘이 없어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사기장에 대한 죄스러움과 안타까움일 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수한 도자 기술을 가지고도 국력이 약해 조선의 사기장이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에 그 기술을 전수하고 일본은 그 기술 덕택으로 도자기를 해외에 팔아 국부를 쌓아 조선 침략의 발판을 마련한 역사의 아이러니는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이다. 우리에게서 가져간 도자 기술이 결국 조선을 향한 칼날로 되돌아온 것이다.

도자기도 우리말 찾아야

신 사기장은 도자기의 우리말 찾기에 빠져 있다. 그는 "언제부터인지 사기장이 도공으로 불리고 사기그릇이 자기로, 사금파리는 도편으로, 가마는 요로 불러야 유식한 것처럼 돼 있다"며 한탄한다. 그는 멍텅구리라는 말이 도자기에도 쓰였다는 사실을 피력하면서 아름다운 우리말을 되찾아 알리는 일에도 헌신적이다. 도자기에서 멍텅구리는 도자기 병의 목이 좀 두툼하게 올라와서 불품이 없이 생긴 되돌이 병을 멍텅구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바보처럼 양만 많이 들어가는 병이라는 뜻이다. 끊어진 우리 도자기의 맥은 재현을 통해 다시 살아나고 있지만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 말은 사라지고서도 우리들의 마음을 담은 훌륭한 도자기가 계속 만들어 질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고 한다.

활발한 전시, 강연활동 펼쳐

양산 신정희 요에서 성장한 신 사기장은 1984년 연세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일본 도큐백화점 미술화랑에서 첫 전시 이후 거의 매년 초대전을 하고 있다. 우쿠오카 이와타야백화점, 미쓰코시백화점, 도쿄 마쓰야백화점, 일본 NHK TV 초대전, 니혼TV 초대전, 일본 긴자 마쯔야 미술화랑 초대전 등은 물론 `신의 그릇` 등 출판한 일본어판 책들도 일본에서 유명세를 받고 있다. 물론 신세계백화점 본점, 울산MBC 창사 42주년, KBS부산총국 초대전 등 다수의 전시회는 물론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도자기 자문위원, 청와대 귀반 증정용 다기와 항아리를 납품했다. NHK오하요니폰, KBS 아침마당, MBC 성공시대, KBS 한국의 미 등 다수의 방송에 출연하고 대학 등에서 우리 사발과 그릇 이야기 강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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