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이야기(出家記) ②
출가 이야기(出家記) ②
  • 도명 스님
  • 승인 2022.05.16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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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시골에서 태어나 살면서 유독 산을 좋아했다. 내가 나서 자란 곳은 들 한복판이지만 뛰놀고 추억이 서린 곳은 오히려 산이 더 많았다. 자연은 살아있는 거대한 유기체다. 그리고 푸르른 산의 순수한 원기(元氣)는 병든 사람을 되살린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니 자연의 법칙을 역행하면 병이 나고 반대로 자연의 흐름에 맡기면 자연히 치료가 되는 이치이다.

모든 존재의 가장 일차원적인 목표는 생존이며 이익과 손해, 好(호), 不好(불호)도 생존이 그 기준점이 된다. 사람은 몸과 마음이 병들고 생존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건강했을 당시 행복을 가져다준 장소가 그리워지게 마련이다.

운명의 강물 속, 사춘기에 각인된 상처들은 청년기까지 이어졌고 마음은 무의식적으로 회복의 공간인 산으로 향했다.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고 계속된 방황 속에서 몸과 마음은 한없이 지쳐갔다. 그러던 중 친척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조그만 산골 암자에 의탁하며 몸과 마음을 추스르게 되었고 더 깊은 산속에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한 사내를 만나 마음을 서로 나누었다.

얼마 후에는 그곳에서 세속을 등진 또 다른 이를 만났는데 그는 머리 깎은 수행자였다. 하룻밤을 그와 함께 보내면서 그가 출가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출가는 완고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인연한 새엄마와 이복형제간의 갈등 때문이었다. 출가하였지만 그는 틀에 매인 절집도 맞지 않아 구속 없는 자연 속에 홀로 살고 있었다. 그는 늦은 밤까지 자기의 수행 경험과 신비체험 등을 말해 주었고 나는 딴 세계 같은 그의 이야기에 그만 매료되었다.

며칠 후 그는 떠나면서 자기의 거처와 그곳을 안내해줄 또 다른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산골 처사와 토굴 스님이 사는 중간에 김씨 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들은 각자의 사연으로 산을 의지해왔고 서로가 마음을 나누는 도반들이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이들은 아웃사이더였고 사회에 적응 못 한 패배자로 비춰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재기를 꿈꾸며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운명과 치열한 패자부활전을 치르고 있었다. 며칠 후, 산골 처사와 함께 층층골에 사는 몸이 깡마른 김씨를 만났다. 나를 바래다준 산골 처사는 자기 처소로 돌아갔고 나는 김씨의 안내로 토끼봉에 사는 스님 토굴로 가게 됐다.

수려한 산림을 지나 처음 본 스님의 토굴은 충격이었다. 커다란 바위를 한쪽 벽으로 삼아 종이박스로 지은 초라한 누더기 집이었다. 그때가 초봄인데 온돌은 있었지만 벽을 통해 들어오는 추위가 장난이 아니었다. 날이 저물어 셋이서 하룻밤을 함께 보냈고 이후 더욱 빈번하게 만남을 가졌다.

이들은 깊은 산골에서 세상과 떨어져 고독하게 살고 있었다. 붓다는 "인간은 외롭게 홀로 태어나 살아가다가 홀로 죽어간다"라고 했다. 짧지만 인간 존재의 본질을 정확히 간파한 말씀이다. 사람들은 가족과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지만 알고 보면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생로병사의 문제를 혼자 안고 살아야 한다. 그러기에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본질을 마주할 때는 생사가 오가는 깊은 고뇌를 할 때나 아니면 독립된 공간 속에 홀로 있을 때이다.

인간에게 외로움만큼 큰 고통도 없지만 `절대고독`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으면 성숙한 내면을 갖추기 어렵다. 대표적인 예가 부처님이 홀로 숲으로 가서 명상하거나 예수님이 홀로 광야로 가신 것인데 이는 세상으로부터 도피가 아니라 고독과 적정(寂靜)을 통해 진정한 자신과 마주보기 위해서였다. 세속을 떠난 깊은 산은 욕망을 벗어나게 하고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 영성(靈性)을 고양시킨다.

한편, 얼마 후 김씨가 떠나고 층층골 토굴이 비게 되었다. 친척 아주머니에게 계속 의탁하는 것도 그렇고 해서 독립을 하자 싶어 옷가지 몇 벌 챙겨 그 넓은 층층골에 홀로 살게 되었다. 전기도 없는 깊은 산에 홀로 산다는 것이 약간 두렵기도 하였지만 앞서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용기를 얻게 됐다.

거처를 옮긴 첫날 밤 약간의 두려움 속에 잠을 청하는데 갑자기 "웩! 웩! 꽥! 꽥!" 하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산을 뒤흔들었다. 생전 들어보지 못한 커다란 괴성의 주인공이 누구인지에 대한 상상으로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홀로 된 첫날은 이러한 두려움으로 시작됐다. 두려움은 실제보다 상상이 더 크다고 하는데 실체를 알면 머리에서 지워지지만 모르면 의구심으로 인하여 두려움을 눈덩이처럼 키우기 때문이다.

삶은 끊임없이 여러 현상과 마주해야 하며 새로운 환경은 자신에게 크든 작든 신고식을 치루게 마련이다. 낯선 산중 토굴에서 보낸 첫날 밤의 고독과 두려움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또 다른 통과의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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