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덫 사랑과 우정
인연의 덫 사랑과 우정
  • 이광수
  • 승인 2022.05.15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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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방담<春秋放談>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우정은 친구라는 말과 가깝고 사랑은 인연이란 말과 가깝다. 사랑과 우정에 관한 말과 글이나 영화, 드라마 속의 이야기는 우리 인생사 그 자체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희로애락의 반복이기 때문에 기쁘고 화날 때도 있고, 슬프고 즐거운 때도 있다. 하루하루 사는 삶이 마냥 화나고 슬프기만 하면 누가 살고 싶어 하겠으며, 마냥 기쁘고 즐겁기만 해도 그 삶은 지루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인간은 감정 기복이 심하고 복잡한 고등동물이라 너무 좋아도 탈이고 너무 나빠도 탈이다. 그래서 선현들은 마음 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중용지도를 지키라고 강조했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항상 배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사랑의 연원인 인연은 우연과 필연의 산물이다. 수필가 피천득은 그의 시 <인연>에서 `살면서 참 슬픈 일은/가슴을 갈라 마음을 꺼내어/보여줄 수 없는 것이고/그보다 더 슬픈 일은 마음을 꺼내 보여 주었음에도/그것을 진정 몰라주는 것이며/이 모든 것보다 가장 슬픈 것은/그것을 알고 나서도/어쩔 수 없이/도로 덮어놔야만 하는 인연들이다.`고 했다. 이 글은 그가 17세 때 일본 동경에 머물 때 하숙집 딸인 `아사꼬`라는 소녀와의 이루지 못한 슬픈 인연을 그리워한 글이다. 시인이나 소설가, 드라마 작가는 작품 속에서 사랑과 우정의 의미를 다양한 각도에서 그린다. 그래서 우리가 접하는 모든 문학작품과 영화 드라마에서 사랑과 우정이라는 주제를 빼고 나면 스토리 전개 자체가 불가능하다. 인생사는 인연이 낳은 사랑과 우정에 얽힌 사연의 연속이다. 생사가 오가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사랑과 우정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살아 숨 쉰다. 그건 인간이기 때문에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옛적의 학자문인들은 우정을 순수한 우리말인 `벗`으로 표현했다. 선비에게 벗이 없는 삶은 삭막한 사막처럼 여겨 동기보다 더 가깝게 붕우유신(朋友有信)했다. 특히 한 스승 아래 동문수학한 선비들은 평생토록 벗이 되어 동고동락했다. 벗에 관한 사자성어(四字成語)나 전설들이 많은 것도 그만큼 우정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사마천의<사기>에 실린 "문경지교(刎頸之交)"와 "관포지교(管鮑之交)"는 우정에 관한 대표적인 사자성어이다. <사기>`염파 인상여전`에 실린 `문경지교`의 유래를 보자. 춘추전국시대 조나라 명장 염파는 한때 명신 인상여의 승진을 시기하고 불화해 서로 외면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신하가 인상여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자신은 이미 조나라 최고의 실력자라 염파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면서, 그렇지만 염파와 대립하면 내분이 일어나 진나라가 쳐들어올 것이 빤하니 그를 피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사실을 전해 들은 염파는 끝까지 나라를 위해 참는 인상여의 넓은 도량에 감복해 웃통을 벗어 던지고 회초리를 한 짐 짊어진 채 인상여를 찾아가 벌 받기를 자처했다. 이후 두 충신은 다시 친한 사이가 되어 죽음을 함께 해도 변하지 않는 친교를 맺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우정이라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쳐도 될 찐한 우정이 아닐 수 없다. 배신을 식은 죽 먹듯이 하는 요즘 세태의 얄팍한 계산적인 우정과는 차원이 다르다. 관중과 포숙아의 `관포지교`는 워낙 잘 알려진 우정얘기라 생략한다. 그 밖에 우정에 관한 사자성어로 유비와 제갈량의 `수어지교`, 어릴 때부터 막역한 친구지간인 `죽마고우`, 지초와 난초 같이 향기로운 사귐인 `지란지교`, 가난할 때 친해진 친구인 `빈천지교`, 아교풀처럼 딱 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교칠지교`, 자신을 알아봐 준 벗인 지기지우의 죽음을 슬퍼하는 `백아절현`, 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친밀하게 사귀는 `간담지교`, 오직 믿음으로 사귀는 `교우이신`, 쇠붙이도 끊을 만큼 굳건한 우정인 `단금지교`, 처음 만나자마자 구면처럼 친해지는 `경개여구`, 서로 마음이 맞아 거스르는 일 없이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막역지우` 등이 있다.

시인 정호승은 `친구는 한 사람이면 족하고/두 사람이면 많고/ 세 사람이면 불가능하다`고 했다. 참다운 친구는 귀하고 소중하다는 말이다. 필자는 타인과의 관계 트기가 쉽지 않은 모난 성격이다. 학창 시절이나 사회생활에서도 사자성어의 우정을 나눌 만큼 각별히 친한 친구가 별로 없었다. 초등 때는 `꼬치친구`이고, 중ㆍ고생 때도 딱 한 명의 공부 친구만 있었다. 대학에서는 뒤늦은 공부라 그렇게 친밀한 교우관계는 없었다. 당나라 시인 두보의 `몽이백 낙월옥량`처럼 꿈속의 벗을 만나면 모를까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지난 시절 내 곁에 잠시 머물다간 인연의 덫 `사랑과 우정`은 추억의 창고 속에 잠재우고, 서책을 벗 삼아 소식영허의 섭리대로 독고독락(獨苦獨樂)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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