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08:41 (금)
마주볼 수 있는 엄지손가락
마주볼 수 있는 엄지손가락
  • 허성원
  • 승인 2022.05.10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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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의 여시아해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엄지손가락이 차의 문에 끼는 사고로 한동안 손가락 깁스를 한 적이 있다. 물건을 제대로 잡을 수 없어, 글쓰기, 세수, 양치질, 식사, 운전, 단추 잠그기 등 모든 일상이 너무도 불편하였다. 스마트폰 사용도, 주로 검지로 눌러 입력하던 예전 휴대폰과 달리, 화면을 엄지로 밀어 올리거나 좌우로 미는 조작이 많아 보통 힘들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휴대폰 인터페이스를 검지에서 엄지로 전환시킨 손가락 혁명임을 절감했다.
인간의 엄지손가락은 그 작동 구조가 독특하다. 이를 `마주볼 수 있는` 혹은 `맞설 수 있는 엄지손가락(Opposable Thumb)`이라 부른다. 나머지 네 손가락은 모두 같은 방향으로 작동하지만, 엄지손가락만 홀로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자유로이 돌아갈 수 있다. 그래서 손바닥을 가로질러 다른 손가락들과 마주볼 수 있기에, 손가락들이 서로 협력하여 도구 등 물건을 감아쥐고 조작할 수 있으며, 때로는 주먹질도 가능하다. 게다가 손가락 끝을 서로 맞대어 가늘고 미세한 것을 집을 수 있어 바느질이나 젓가락질 같은 정교한 작업도 해낼 수 있다. 견고함과 함께 정교함까지 더하여 물건을 다루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마주볼 수 있는` 엄지손가락은 직립보행 및 두뇌 크기와 함께 현생 인류의 진화를 촉진한 3대 핵심 요소 중 하나이다. 침팬지, 고릴라 등의 유인원과 일부 조류도 유사한 엄지 구조를 가지지만, 그들의 엄지는 인간에 비해 힘이 약하고 길이가 짧아 운동 범위가 제한적이다. 그래서 인간처럼 견고하면서도 정교하게 물건을 잡고 조작하지 못한다.
마주 본다는 것은 거스르는 것이다. 모든 손가락이 동조하여 일제히 한 곳을 향할 때 엄지손가락은 홀로 그 반대 방향을 볼 수 있다. 엄지와 다른 손가락들 사이의 간격이 접근 혹은 이격되면서 힘을 조절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인간은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한편 인지 능력도 향상되게 되었다. 토론토대학교의 로저 마틴은 그의 저서 `생각이 차이를 만든다`(원제 : `Opposable Mind`)에서 그런 진화의 도움으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한 리더들은 공통적으로 엄지손가락처럼 `마주볼 수 있는 사고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대립하는 사안들을 두고 선택하여야 할 의사결정의 기로에 섰을 때,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나머지를 포기하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탁월한 리더는 그 선택안들의 조합 혹은 통합을 통해 새로운 솔루션을 창출하는 `통합적 사고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통합적 사고`의 의미는 안자춘추(晏子春秋)에 잘 설명되어 있다. 양구거가 마차를 몰고 달려오자 제경공이 말했다. "양구거만이 나와 어울리네(和, 조화)." 그러자 안영이 말했다. "양구거는 그저 같을(同, 동조) 따름입니다. 어찌 어울린다 하겠습니까?" 제경공이 "`어울림(和)`과 `같음(同)`은 다른 것인가?"라고 묻자, 안자는 서로 다르다고 하며 말한다.
"어울림(和)은 국을 끓이는 것과 같습니다. 물, 불, 식초, 간장, 소금, 매실을 써서 생선과 고기를 삶고 끓일 때 요리사는 그 재료들이 잘 어우러지게 하여 맛을 냅니다. 모자라면 더하고 과하면 덜어내어, 그것을 먹을 때 입맛에 딱 맞도록 하는 것입니다. 군신 관계도 그러합니다. 임금이 긍정하였는데 그 속에 부정할 점이 있다면 신하는 그 부정할 점을 아뢰어 긍정했던 것을 시정하게 하고, 임금이 부정하였는데 그 속에 긍정할 점이 있다면, 신하는 그 긍정할 점을 아뢰어 그 부정한 것을 버리게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양구거는 그렇지 못합니다. 임금이 좋다고 하면 자신도 좋다고 하고, 임금이 싫다고 하면 자신도 싫다고 합니다. 마치 물에 물을 더한 것 같으니 그걸 누가 맛나게 먹겠으며, 거문고와 비파가 한 가지 소리만을 내는 것과 같으니 그 소리를 누가 즐겨 듣겠습니까?" 
`같음`이 모인 것은 물에다 물을 더한 것과 같고 한 가지 음을 내는 악기들의 합주와 같다. 그것을 동조(同調) 혹은 뇌동이라 한다. 그에 반해 조화(調和)는 서로 대립할 수 있는 `다름`들이 함께 어우러진 것으로서, `통합적 사고능력`의 뿌리가 된다.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조화를 이루되 동조하지 않고(和而不同), 소인은 동조하되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同而不和),` 그래서 `마주볼 수 있는 엄지손가락`의 덕목은 군자와 리더가 본받아야 할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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