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09:58 (목)
출가 이야기(出家記) ①
출가 이야기(出家記) ①
  • 도명 스님
  • 승인 2022.05.09 22: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명 스님 산사정담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지난 1년 반 가까이 가야불교와 관련한 역사 칼럼을 써왔다. 역사 전공자가 아닌 성직자가 가야사의 일부인 가야불교를 풀어내기가 여간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이런 인연으로 하여 <가야불교 빗장을 열다>라는 단행본을 낸 것은 저 자신뿐 아니라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겐 연구의 조그만 디딤돌은 될 수 있을 것이라 자평해 본다.

그동안 전공인 종교가 아니라 역사라는 비전공 분야로 외도(外道)는 하였지만 잃은 것 보단 얻은 것이 더 많은 시간이었다. 종교라는 틀을 벗어나 역사와 인문이라는 분야를 접하면서 앞서간 이들의 행로를 엿볼 수 있었고 내가 서 있는 곳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새로운 세계를 잘 구경하였으니 출가 초심으로 다시 `환지본처(還地本處)` 해야지 싶다.

수행인은 현재를 사는 사람이라 과거를 언급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행로를 위해 소회를 몇 자 적고자 한다. 사람 사는 게 다 팔자소관이고 사연 없는 인생은 없다지만 세상을 벗어난 출가 사문의 길은 세상 사람들과 또 다른 굴곡진 인생이 많다.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사춘기를 즈음해 집안은 엄청난 운명의 폭풍우에 휩싸이게 되었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필자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지 못할 마음의 깊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 급기야 고등학교를 1년 휴학하고 요양했으나 몸과 마음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했다. 복학하여 겨우 대학을 가고 군대를 제대했지만 마음 속의 번민은 해결되지 못했다. 인생의 고뇌를 해결해 보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려보았으나 이래도 저래도 되는 일이 없었다. 복학해서 1년쯤 다니다가 집에도 알리지 않고 결국 휴학까지 하게 되었다.

이후 걷잡을 수 없는 방황이 시작되었다. 여기가 끝인가 싶으면 더 깊은 바닥이 있었고 삶에 대한 깊은 회의가 몰려왔다. 어떤 때는 삶이 여기서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 한편 인생이 이렇게 의미 없게 끝나진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도 함께 존재했다. 현실의 절망과 미래의 애매한 희망 속을 오가며 막노동을 전전하고 술로 마음의 번민을 희석시켰다. 당시에는 `이 세상에서 나만큼 괴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는 확신 속에 살았다. 이때가 스물다섯쯤 되던 시기였다.

지친 심신을 쉴 요량으로 친척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조그마한 산골 절에 몇 달간 머물게 되었다. 얼마간 산골 암자 생활에 적응하고는 매일 조금씩 시간을 늘려 이산 저산을 훑고 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산골 깊은 곳에 쓰러져가는 초가집 한 채가 보여 다가가 보니 40대 중반 사내가 밖에 솥을 걸어 놓고 불을 때고 있었다. 머리를 짧게 깎고 옷은 남루하였지만 눈빛은 형형하고 얼굴은 맑았다. 먼저 인사를 하고 지금 사는 곳과 오게 된 경위를 말했다. 마침 점심때라 밥을 먹으라 권했는데 미리 싸 간 도시락이 있어서 사양하고 둘은 각자의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그 산에서 나는 약초들을 끓인 차를 한잔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산에 살게 된 사연과 서로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게 되었다. 깊은 산 오두막에서 만난 청년과 중년의 두 사내는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처럼 아무런 경계 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 사내는 나보다 더 기구한 운명으로 세상을 등지고 이 산속에 와 있었다. 약혼자가 있었는데 병명도 모를 특이한 병이 생겨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낫지 않아 결국 파혼했다는 것이다. 그 병의 원인이 자신의 `까르마`(업)에 있음을 알고는 세상을 등지고 업을 녹이기 위해 집을 나왔다고 하였다.

당시에도 그는 하루에 한 끼만 먹고 불교 경전인 아함경에 의지해 수행하고 있었다. 수행자처럼 사는데 `왜 출가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자신은 출가의 복력도 안 될뿐더러 스님들의 단체 생활보다 자연 속에 자유롭게 사는 게 더 좋다고 하였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 반가웠는지 언제든 또 오라는 말과 함께 헤어졌다.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그를 만나 수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며 무료한 산 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주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이분을 만나러 갔더니 키가 훤칠한 스님 한 분이 와 있었다. 후에 알고 보니 이분은 출가는 하였으나 정식 스님은 못되고 밀양 표충사 뒤의 사자평에서 홀로 수행하고 있었다.

전생의 운명이었는지 이때부터 다양한 수행자들과 인연이 이어져 끝내 입산 출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출가에는 좋은 인연으로 출가하는 순연(順緣)이 있는가 하면 어려움 속에 출가하는 역연(逆緣)이 있는데 필자는 후자에 속했다.

누군가가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라고 했다. 참 얄궂은 것은 뜻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지만 그 속에도 또 하나의 길이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