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9 16:53 (화)
나의 조각상
나의 조각상
  • 이도경
  • 승인 2022.05.02 22: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도경 보험법인 대표
이도경 보험법인 대표

`우정` 이숙의 노래, 지인이 보낸 음악이 카톡으로 배달되어 왔다. 음악을 듣는 순간 멍해진 가슴과 함께 두 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득한 옛날이 되어버린 여고시절의 내 모습이, 접어 두었던 병풍처럼 겹겹이 펼쳐지며 가슴에 묻어둔 또 다른 내가 나를 끌고 추억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땐 그랬었지, 나는 영원히 나이 들지 않을 것 같았고, 나이 드신 어르신들을 볼 때면, 나와는 전혀 무관할 것 같았던 철이 덜든 푸른 시절. 하늘을 떠다니는 무지개 풍선처럼 꿈을 간직하고, 백마 탄 왕자라도 만날 것 같았던 우아한 꿈속에서 살았던 학창 시절이다.

추억의 교복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하얀 컬러 깃을 빳빳하게 풀을 먹여 다림질하여 챙겨 입고, 치마는 작은 주름조차 용납하지 않았던 도도한 듯, 싱그러움의 여고시절이다. 겨울이면 목까지 올라오는 교복단추를 잠그고, 검정 학생 모자를 눌러쓴 똘망똘망 밤톨 같았던 남학생들도, 푸른 꿈을 가슴에 안은 채 미래의 무지개 꿈을 동경했으리라.

그 소년 소녀들은 시간이라는 강을 타고 여기까지 왔다. 태어나면서 백지 한 장을 받아 그 하얀 백지위에 퍼즐을 맞추고 살아왔지만, 아직은 미완성된 작품 앞에 서서보니 60의 숫자가 나와 함께 서 있다.

인생은 퍼즐 맞추기다. 맞추어 나가다 멈추는 그 자리, 그곳이 나의 작품인 것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길에, 세월은 가정과 사회에 발자국을 남기고 왔다. 어느 곳 어느 자리에 서 있던지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위대하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미켈란젤로에게"어떻게 피에타상이나 다비드 상 같은 훌륭한 조각상을 만들 수 있었냐"고 묻자,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미 조각상이 대리석 안에 있다고 생각하고 필요 없는 부분을 깎아내어 원래 존재하던 것을 꺼내 주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은 거 아닌가.

그렇다면 아직 꺼내지 못한 나의 조각상은 뭘까. 내가 가진 대리석 안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어디를 더 깎아 내어야 나의 조각상이 보일까. 장래희망을 적는 란에 그게 뭐 그리 대단한 벼슬이라도 되는 것인 냥 `현모양처` 라고 써넣었던 그때 그 시절의 꿈. 賢母良妻(현모양처), 현명한 어머니와 어진 아내라는 어의적 의미를 제대로 알기나 하고 희망했을까. 나도 그렇게 쓴 적이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그래 인생 뭐 그리 어려운 건가.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다. 쉬운 것부터 해보자,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사랑한다고 지금 말하고, 그리운 친구가 있다면 지금 만나자. 부모님이 살아 계신다면 훗날 진수성찬이 아닌, 국밥 한 그릇이라도 지금 대접하자.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고, 그 마음이 지나면 그때 그 마음은 지금의 마음이 아니다. 1시간 앞일도 예측이 불가하니 후회하고 살지는 말아야지. 그날그날, 필요 없는 부분을 깎아 내면서 산다면, 70세쯤이 되면 원하는 나의 조각상도 완성되어 있지 있겠지.

`우정`이라는 음악을 들으며 그 시절이 아닌 현재의 나를 바라본다. 아직은 내가 받은 백지에 공간이 남아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남은 백지의 공간 위에 한 조각, 한 조각, 조금은 더 소중한 마음으로 남은 퍼즐 조각을 맞추어 나가다 보면, 어느 날 나의 조각상도 완성되어 나타나리라 믿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