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22:41 (목)
포박지사
포박지사
  • 이광수
  • 승인 2022.05.01 22: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새 정부인수위에서 내각의 국무총리, 부총리, 장관 지명을 끝내고 국회청문 절차에 들어갔다. 징관급 이상 정부 인사는 국회인사 청문 절차를 거치도록 돼있다. 그러나 국무총리 외는 국회청문동의서가 채택되지 않더라도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인사권으로 임명할 수 있다. 전 정부에서 야당의 반대로 청문동의서 채택이 불발된 지명자를 23명이나 임명했다. 사실상 국회청문 절차는 형식적인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부적격 사유가 있어서 욕을 먹더라도 후한무치로 버티면 한 자리 차지할 수 있다. 이번에 새 정부 인수위에서 지명한 후보자들 중 몇 사람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있지만 자기변명으로 버티고 있어서 국회청문회 통과여부가 불투명하다. 이번 각료 후보자들의 면면을 언론보도를 통해 살펴보니 전 정부나 새 정부나 오십보백보 도긴개긴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참신한 인물을 기용하겠다고 공언하지만, 선거공신에 대한 논공행상이나 발탁인사는 구태의연하다. 지금 신구권력의 정권 이양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볼썽사나운 샅바싸움을 지켜보면서 우리 정치에서 의회민주주의를 기대한다는 것은 여양모육(與羊謨肉)임을 절감한다.

포박지사(抱璞之士)의 포박(抱璞)은 춘추전국시대 법가 한비(韓非)가 쓴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에서 유래된 전고(典故)이다. 재주는 있지만 때를 만나지 못한 뛰어난 인재를 비유한 말이다. 이에 얽힌 고사(故事)를 보자. 초나라 사람 변화가 여왕(勵王)에게 박옥을 바쳤는데 옥 감정사가 돌이라고 감정했다. 여왕은 변화가 거짓말을 했다고 그의 왼발을 잘랐다. 무왕 때 다시 바쳤는데 또 감정사가 돌이라고 감정하자 이번에는 그의 오른발을 잘랐다. 문왕이 즉위한 뒤 변화는 박옥을 안고 초나라 산 아래서 슬피 울었는데 눈물이 다하자 피가 흘렀다. 이에 문왕이 옥 감정사를 시켜 박옥을 쪼갰는데 돌 가운데서 아름다운 옥을 얻게 되었다. 이때부터 표박은 선택받지 못한 인재를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은 옥을 금만큼 귀한 보석으로 여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나라의 인재든, 조직의 인재든 때를 잘못 만나거나 시운이 따르지 않으면 아까운 재주를 발휘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조선 숙종 때 이긍익은 백조부 이진유가 역적으로 몰리는 바람에 삼족을 멸하는 연좌제에 걸려 과거시험의 응시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역사서의 당파성을 절감하고 새로운 사서 저작에 몰두해 기존의 편년체가 아닌 기사본말체 역사서<연려실기술>을 편찬했지만, 아까운 재주를 국치에 기여할 기회는 얻지 못했다.

널리 인재를 구한 성군이나 명군, 현명한 지도자를 만나면 포박지사는 발탁되어 빛을 보게 된다. 제갈량을 등용하기 위해 삼고초려(三顧草廬)한 유비 같은 영민한 지도자를 만나야 돌덩이 속의 옥을 발견할 수 있다. 인재가 곧 나라의 흥망성쇠나 조직발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근세 조선의 문예부흥을 이끈 정조는 문과대과 회시(會試)를 통과한 33인의 순위를 가리는 전시(殿試)에서 인재등용에 관해 이렇게 물었다. `내가 진정 보배로 여기는 것은 현명한 사람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재능이다. 초야에 묻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하던 인물일지라도 진실로 하나의 재주나 솜씨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추천서를 기다릴 것 없이 선발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알차지 않은 사람을 헛되이 추첨하는 일 없이 인재를 놓치지 않고 등용할 수 있겠는가. 화려한 이력에만 구구하게 얽매이지 않고 실제에 힘쓰는 인재를 구할 수 있겠는가. 규격에만 절절하게 굴 것이 아니라 두루 준수한 인재를 구하여 훌륭하고 재능 있는 사람 가운데 빠뜨린 인재가 있다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정조 임금은 함께 나라를 다스릴 유능한 인재발탁의 간절한 염원을 대과 최종합격자 33인에게 책문(策問)으로 물은 것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때를 잘못 만나 뛰어난 재주와 능력을 쓰임 받지 못한 채 진흙 속의 옥으로 묻혀버린 인재가 수없이 많았다. 나라가 외면한 천재, 세상이 버린 인재로 인해 잃게 될 국가적 손실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전 정부나 새 정부나 구태청산은 뒷전으로 밀려난 채 케케묵은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사생결단이니 통탄할 일이다. 정조가 뛰어난 인재발탁의 묘책을 왜 책문으로 물었으며, 유비가 제갈량을 등용하기 위해 왜 삼고초려했는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새 정치는 유능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지닌 인재들에 의해서 구현 될 수 있다. 문호지견(門互之見)이 판치는 구태정치에서 유능한 인재발탁을 기대한다는 것은 상산구어(上山求魚)나 다름없으니 일언지하(一言之下)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