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레지스탕스 탁오 이지
위대한 레지스탕스 탁오 이지
  • 이광수
  • 승인 2022.04.24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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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탁오 이지의 역작인 <분서(焚書)>1,2권을 읽고 좀 더 상세하게 그의 사상적, 학문적 편력을 기술한다. 반봉건, 반전제, 반유가사상의 대표저작인 <분서(焚書)>를 읽어보면 말할 수 없는 분노와 함께 희열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저자가 분서라 했지만 불태울 <분서(焚書)>가 아닌 분노라 할 분서(憤書)로 서명을 바꿔야 할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처한 시대적 상황에 필설(筆舌)로 저항했다. 수천 년 동안 전래된 수많은 전적에 비수의 칼끝을 겨누다가 혹세무민의 죄를 뒤집어 쓴 채 분노의 자결을 결행했다. 그는 유가의 전제에 매몰된 사상적 허구와 위선들로 가득한 전적들을 까발리며 적필(赤筆)을 휘둘렀다. 안일과 평안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유가도통에 얼이 빠져 전통만 고수하는 유가와 도가들을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맞대응했다. 이처럼 기서로 폄하된 <분서(焚書)>는 탁오사상의 학문적 본류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지와 학문적으로 교유했던 원종도는 이온릉전(李溫陵傳, 이온릉은 원종도가 붙인 탁오의 존명)에서 이지의 삶의 궤적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는 속이 뜨겁고 외양은 냉정했으며, 풍채는 위엄이 서려있었다. 성격은 매우 조급하고 남의 잘 못을 면전에서 들추길 좋아해 서로 의기가 상통하는 자가 아니면 함께 얘기하는 선비가 없었다. 그는 주는 녹봉을 받는 것 외엔 아무것도 챙기는 재물이 없어 `육적의 울림석(鬱林石, 신당서 은일전ㆍ육구몽`에 유래한 전고 청렴한 관료생활비유)이나 임방의 도화미(桃花米, 남사 `임방전`에 유래한 제대로 찧지 않거나 오래 묵어 붉게 변한 쌀로 산 청렴한 관료생활비유)보다 나을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 28년의 청렴한 관료생활을 잘 말해주고 있다. 54세 때 사직한 후 아내와 하나 살아남은 딸과 사위를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객지인 항안에 남아 자칭 `객지에 정착한 나그네` 유우객자(流寓客子)가 되었다. 그는 타향살이 중 계족산에 입산해 삭발하고 불도가 되었다. 불학에 심취한 후기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승려들과 어울려 지내며 대문에 빗장을 채운 채 독서에만 전념했다. 대대로 전래된 전적들을 밤낮으로 두루 섭렵하면서 붉은 먹을 묻힌 붓으로 한 글자씩 짚어가며 전적의 오류들을 적필(赤筆)로 교감했다. 그의 문장은 마치 비바람이 몰아쳐 강물에 파도가 일렁이는 듯해 글을 읽는 사람마다 그의 식견과 재주를 흠모하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두려워했다.

이처럼 이지의 날선 비평은 그를 비방하는 자들이 허무맹랑한 말을 전파시켜 혹세무민하는 자로 낙인찍게 만들었다. 그러나 탁오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그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일일이 반박하는 서신을 보냈다. 그가 장문달의 탄핵상소로 혹세무민한 죄로 체포돼 심문할 때 심문관 금오가 `어찌 넷 멋대로 저술을 했느냐`고 묻자 `죄인은 저서가 매우 많지만 모두 세상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성인의 가르침에 부합되고 손상시키는 것은 없지요`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심문관 금오는 그의 뻣뻣한 태도를 비웃으며 옥에 가두고는 더 이상 심문하지 않았다. 전기를 쓴 원중도에 의하면 형청에서도 그가 대역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라 옥에 좀 가둬 고생시키다가 풀어 줄 심산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3주가 지나도록 옥에 갇혀 화를 참지 못한 탁오는 이발하러 가져온 옥리의 면도칼을 빼앗아 목을 그어 자결했다.

<이오릉전> 저자 원중도는 탁오에 대한 존경심을 구구절절 기술하면서 그의 결점도 지적하고 있다. 그는 <전> 말미에서 `나는 그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의 문하에서 배우지는 않았다. 그에게서 내가 배울 수 없는 점은 다섯 가지, 배우고 싶지 않은 점은 세 가지`라고 했다. 청렴결백한 관료생활을 한 점. 여자에게도 배울 기회를 주었지만 여색을 탐하지 않은 점, 오묘한 도에 깊이 들어가 대도의 실체를 본점, 초지일관 독서에 일관한 점, 곧은 기상과 꿋꿋한 절개로 남에게 굽히지 않은 점은 자기가 배울 수 없는 점이라고 했다. 거만하고 기가 세어 은인과 원수 삼기를 제멋대로 하고 잘못된 것은 붓을 휘둘러 남기는 점, 입산했으면 흔적을 숨겨야 하는데 속세를 배회하다 화를 키운 점, 대승의 이치추구에 조급해 계율을 잘 지키지 않고 기분 내키는 대로 입을 놀리다가 적을 만들게 한 점은 배우고 싶지 않은 점으로 꼽았다. 탁오의 <분서>는 그 문장 속에 예로 든 고금의 사례와 저서, 학자들이 수없이 등장해 <주역> 읽기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역자 김혜경 교수가 말했듯이 우리는 이제까지 이지같이 대륙적 소화력을 갖춘 사상가를 소유한 적이 없었다. 유ㆍ불ㆍ도와 문ㆍ사ㆍ철, 천ㆍ지ㆍ인이 그에게는 일사불란한 교조가 아니라 부글부글 끓는 용광로 속의 내용물처럼 뒤섞이다가 통합되고 분리되게 하였다. 탁오는 기인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저항 사상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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