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임된 부사ㆍ권농에 힘썼던 부사
잉임된 부사ㆍ권농에 힘썼던 부사
  • 경남매일
  • 승인 2022.04.2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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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삼 김해대교수 사회복지상담과
최학삼 김해대교수 사회복지상담과

임기가 만료되었으나 잉임, 즉 연임된 김해부사에 대하여 검토해 보고자 한다. 조선시대 때 통상적인 지방관의 임기는 관찰사는 1년(후에 2년으로 변경), 그 외 지방관은 5년(1800일)이었다. 예외적으로 가족을 동반하지 않는 지방관은 임기는 2년 6개월(900일)이었다. 김해부사 재임 중 임기가 만료되었으나 백성의 요구 및 조정의 명령으로 잉임된 김해부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홍중형 부사 재임기간: 1669년 5월 27일~1672년 8월 3일

중형 부사는 1년을 더 잉임 되었다. 홍중형 부사의 잉임사유는 「조선왕조실록」 등의 사료에서 기록을 찾을 수 없었으나 「국역 김해읍지」 및 「김해인물지」에는 1년 더 잉임한 것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2)박동상 부사 재임기간: 1722년 4월 8일~1724년 3월 15일

박동상 부사는 실제로 본인이 잉임 되지는 않았으나 2장에서 살펴봤듯이 흉년에 기민을 구제하기 위해 설창의 양곡을 풀어 먼저 구휼하였던 인물이다. 박동상 부사의 선정에 감복한 김해 백성들이 그가 전라우수사로 승진되어 떠날 때 임금의 명령으로 영전해 가는 길을 막을 수는 없으나 함께 김해로 왔던 종질 통훈대부 창진공이라도 김해에 머물게 해 달라고 애원하여 창진공을 김해에 머물러 살게 하였다고 한다.

3)서배수 부사 재임기간: 1795년

서배수 부사는 정조 19년(1795년) 8월 이조에서 오래 잉임하도록 건의하였다.

4)정현석 부사 재임기간: 1870년 6월 8일~ 1873년 12월 27일

정현석 부사는 순영장청, 즉 순영(감영)에서 장계를 올려 잉임 되었다. 정현석 김해부사는 재임 중 수많은 치적이 있었으며, 교육, 농잠, 광무 등을 위한 인재의 등용과 그 장려책을 조정에 건의하였다. 또한 권농전 일천 냥을 연급하기도 하였다. 김해 백성들의 요구도 있었을 것이고 감영에서도 조정에 장계를 올려 그를 잉임하게 한 것이다.

◇권농에 힘썼던 김해부사

이번에는 농업에 필요한 중요 자원인 물을 관리하고, 농업발전을 위해 권농전을 기부하는 등 권농에 힘썼던 김해부사에 대하여 검토해 보고자 한다.

1)정광제 부사 재임기간: 1752년

정광제 부사는 영조 때 권농정책에 따라 현재의 김해시 신문동 들판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보를 완성하여 농수를 관리하였다. 정광제 부사는 이러한 선정으로 인해 현재의 김해 신문동(장유중학교 교내)에 선정비가 세워져 있다. 선정비가 세워진 보라고 해서 보의 이름도 비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정광제 부사와 관련된 비보를 검토해 보는 과정에서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조병갑 부사이다. 그는 김해부사와 영동현령을 거쳐 고부군수로 재임하던 중 기존의 만석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석보를 다시 수축하였다. 또 만석보의 물을 사용하는 백성들에게 물세를 강제로 징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만석보와 관련된 일은 그의 수많은 악정 중 하나에 불과하였으며 결국에는 동학농민운동까지 일어나게 했던 것이다. 정광제 김해부사의 비보와 조병갑 전 김해부사의 만석보를 비교해 보면 보를 완성하는데 동원된 백성들의 고통에도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부역에 나와서 일하는 백성들도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부역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을 것이며 마지못해 참여하는 부역에는 그 고통이 가중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만석보의 경우에는 강제로 물세까지 징수했다고 하니 보의 물을 이용하는 백성들의 고통은 더 가중되었을 것이다.

2)이우현 부사 재임기간: 1789년

이우현 부사는 정조 13년(1789년) 남지라는 못을 팠다. 이 못은 읍기에 도움이 되고, 부민에 유리하다고 하여 새로 팠다고 한다. 옛 남지 터에는 현재 김해시 부원동의 김해세무서가 위치하고 있다.

신지신못이라 하였으며, 옛날에는 여기까지 해수가 올라왔고 뒤에 늪(소)이 되어 있었는데 저수지로 쓰기 위해 확장했다고 한다. 신지는 못을 파고 관리한 김해부사를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현재의 김해시 내외동 연지공원을 이루고 있는 바로 그 연지다.

3)권 복 부사 재임기간: 1829년~1831년

권 복 부사는 직천을 곡천으로 고치는 공사를 시행하여 읍기를 되살리고 백성들의 농경이나 어업에 큰 도움을 주었다. 곡천의 이름을 만세천이라고도 했다. 만세천의 의미는 곡천 공사를 시행하여 백성들에게 도움을 준 권 복 부사의 선정에 대한 고마움과 쇠락한 읍기를 회복하여 만세 동안 영원히 읍이 지속되기 위한 염원을 담은 것이다. 「김해지리지(국역판)」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호계의 남쪽은 강창포에 이르고, 세월이 오래되어 모래가 쌓였으므로 정조 14년(1790년) 내를 곧게 만들었다가 순조 31년(1831년) 직천은 읍기에 해롭다고 부사 권 복이 또다시 곡천으로 고쳤다고 한다로 기록하고 있다.

4)정현석 부사 재임기간: 1870년 6월~1873년 12월

정현석 부사는 앞서 살펴봤듯이 권농전 일천 냥을 연급, 즉 기부하였다. 농잠 장려 등 사재를 털어서까지 농업박전을 염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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