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ㆍ청시대의 역학 ①
명ㆍ청시대의 역학 ①
  • 이 지산
  • 승인 2022.04.20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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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역설 <志山易說> 주역 연구가 이 지산

명ㆍ청시대는 중국의 봉건주의가 쇠락의 길로 접어든 시기였다. 통치자는 전제주의 권력을 공고히 하며 신민에게 자유로운 사상의 통제를 가했다. 명대는 정주(程朱)만을 존숭하고 송학을 정통관방학(官房學)으로 고착시켰다. 관리를 뽑는 과거시험도 팔고문(八股文: 명ㆍ청 과거시험의 틀에 박힌 문장형식)으로 선발하면서 사서(대학, 중용, 논어, 맹자)는 주희의 집주(集注)에 의거토록 규정했다. 그리고 지식인의 반항과 이단을 금기시하여 그들의 저작물을 감시하고 통제했다. 소위 문자옥(文字獄)으로 불리 학란을 일으켜 이단사상을 가진 지식인들을 탄압했다. 이에 따라 송학의 내재적 발전을 이어가는 추동의 힘을 잃었다. 그러나 강희제가 등극하면서 유학을 숭상해 고래로부터 전승된 여러 서적들을 정리해 편찬하는 전적의 발간에 힘썼다. 청대 초기의 황종희와 고염무는 복고적 색채가 농후한 한학(漢學)을 발전시켰다.

명ㆍ청시대의 역학은 사상과 문화사조와 같은 행보로 발전해 <사고전서총목제요>와 <속수사고전서제요간목>이 황제의 명으로 출간되는 등 명대의 역학저서는 200여종, 청대는 460여종에 이르게 되었다. 명ㆍ청대의 역학은 명초부터 청초까지는 송역의 단계로, 청대 중엽에서 청말까지는 한역의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송역과 한역은 서로 대립하면서 발전해 왔다. 송대에서 발전되어온 송역은 상수파는 도서(圖書)를 가지고 역을 해석했으나, 의리파는 도서학을 배격하고 주역은 오직 경전의 문사(文詞:괘효사)에 의거 의리를 탐구하는데 치중하였다.

명ㆍ청시대의 상수파와 의리파는 비록 역의 해석방법은 달랐으나 경전에 대한 훈고는 추구하지 않고 경전으로 도를 밝혀 도서상수에 머물지 않고 역을 빌려서 성리학을 천명하였다. 이는 결국 상수나 의리나 모두 리학의 범주에 속했다고 볼 수 있다. 명ㆍ청시대의 한역은 문헌학과 고거학(考據學)의 방법론으로 역을 연구했다. 따라서 한역은 철학의 방법으로 역을 연구해 송역과는 전혀 달랐다. 양한시대의 한역은 음양재이설과 천인감응설로 참위적인 반면, 명ㆍ청의 한역은 고거역학과 박학역(朴學易)이라 할 수 있다. 청대에 발흥한 박학역은 리학역(道學易)과 대립하므로 본질적으로 다르다. 송역은 명ㆍ청시대에 발전한 후 쇠락의 단계를 거쳤다. 명초에 호광 등이 영락제의 칙명으로 <주역대전>을 편찬하고 중엽에는 체정인의<역경몽인>, 왕부지의<주역외전><주역내전>, 이광지의 <주역절중>이 간행되어 고경의 집역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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