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04:52 (금)
지피지기와 지기지피
지피지기와 지기지피
  • 이광수
  • 승인 2022.04.17 22: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춘추전국시대는 중국천하가 대혼란에 빠진 시기로 패권경쟁에 한몫하려는 병가, 술가. 유가, 도가, 책사 등이 백가쟁명 하던 시기였다. 이때 중국의 모든 지혜를 담은 십대 병법서(兵法書)인 <손자병법>, <오자병법>, <사마법>, <울료자>, <손빈병법>, <장원>, <당리문대>, <육도>, <삼락>, <삼십육계>가 나왔다. 패도의 종지인 법가 한비자가 위세를 떨치던 시절이라 수많은 병법서들이 우후죽순처럼 출간되었다. 이 중 <손자병법>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친숙한 병법서이다. 흔히 적을 이기는 방법론으로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목표를 향해 매진한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모든 전쟁이나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손자는 단지 지피지기만 강조한 게 아니라 지기지피(知己知彼)도 동시에 강조했다. <손자병법> 제1편 `시계`에서 국가의 존망과 전쟁의 의미부터 새기고 양측의 실정을 비교해 상황변화에 맞게 대응해 적의 허점을 노려 공격하라고 했다. 이 전략 속에는 `지피지기`와 함께 `지기지피`도 함의되어 있다.

또한 무경십서(武經十書)중 제갈량이 쓴 것으로 알려진 <장원(將苑)> 장강(將强)편에는 장수에게는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덕목인 `오강(五强)`과 버려야 할 병폐인 `팔악(八惡)`이 있다고 했다. 잘 알다시피 제갈량은 유비를 도와 한나라를 건국한 개국공신이다. 그의 뛰어난 지략과 처세술은 현대에도 인구에 회자될 만큼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그는 버려야 할 `팔악` 중 `미책`은 좌절을 겪으며 실패했는데도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남을 원망하며 비방하는 것을 말한다. `오강`은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와 자질 즉 자강력을 말하며 `팔악`은 나의 허점인 아킬레스건을 말한다. 나를 먼저 앎으로써 상대방과 비교해 승산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3의 힘을 갖고 있는데(객관적인 자가진단에 의해)상대가 5의 힘을 갖고 있다면 질 것은 뻔하다. 물론 운에 기댄 무모한 도전이 의외의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긴 하다. 그러나 그런 경우도 상대와 거의 대등한 상태에서 특정부분이 취약할 때의 일이다. 전쟁에서 병사수가 많다고 이기는 법이 없음은 역사가 증명한다.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대군인 왜적을 물리친 것은 적의 물적, 인적 자원 수보다 앞선 리더의 탁월한 지략 때문이었다. `명장 밑에 졸장 없다`는 말의 산 증거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3대 전투(관도대전, 이릉대전, 적벽대전) 중 하나인 `적벽대전`은 조조와 손권ㆍ유비연합군이 격돌한 머리수와 지략이 대결한 명승부였다. 이 전쟁의 패배로 조조는 중원재패의 꿈을 접고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유비는 한나라 건국의 초석을 닦았다. 이 전투에서 조조는 18만 대군을 동원했으나 유비와 손권은 겨우 3만여 명의 연합군으로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분명 꾀 많은 조조는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전쟁으로 판단했지만 수전(水戰)에 취약한 조조의 아킬레스건을 간파한 제갈량의 전략으로 조조는 패전의 쓴잔을 들었다. 결국 조조는 지피지기는 했으나 지기지피가 부족했기 때문에 패한 것이다.

지기지피는 꼭 전쟁에서만 필요한 전략전술이 아니다. 필자가 공직의 인사부서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매년 연초나 연말 또는 수시로 상위직의 결원이 생기면 승진 인사를 하는데 상위 직급(특히 과장급)에 결원이 생기면 승진경쟁이 치열했다. 그 당시만 해도 관선지자체장 시절이라 사무관 승진은 공무원의 평생 꿈이었다. 그때는 내무부 등 중앙부처나 국회의원으로부터 시장에게 인사 청탁이 많았다. 그런데 청탁대상 직원의 승진후보자 명부 순위를 보면 승진 배수에도 들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임명동기라든가 전 직급승진일이 빠른 이유만으로는 자동적으로 승진되지 않는다. 이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지기지피가 부족한 소치이다. 민선 자치시대를 맞아 그 당시의 정실청탁인사가 청산되어 원칙대로 잘 시행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는 6월 1일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의 유세전이 치열하다. 경선후보자의 윤곽이 드러나는 가운데 창원시장 후보 공천을 신청한 국민의힘 예비후보가 9명이나 된다. 면면을 살펴보니 지기지피가 안된 사람도 더러 보인다. 현역 민주당 출신 시장이 단독으로 재출마한 가운데 누가 당선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처세술의 기서(奇書)인 <귀곡자(鬼谷子)>에서 `지기를 토대로 지피를 행하는 것이 옳은 방책이며, 지인(지피)에 능한 자는 지혜롭고 지기에 능한 자는 사물의 이치에 밝다.`고 했다. `지혜는 사물의 이치에 밝은 뒤에 나오기 때문에 지기지피가 우선돼야한다` 는 것이다. 제 분수를 알고 `수신제가 후 치국평천하`해야 한다는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