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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 시대의 역학
원나라 시대의 역학
  • 이 지산
  • 승인 2022.04.13 2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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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역설<志山易說> 주역 연구가 이 지산

송이 망하고 원나라(몽고)가 중원의 지배자가 되면서 정주역(程朱易)이 한족지식인들을 통해서 북방에 널리 전파되었다. 원나라 통치자들은 한족(漢族)지식인들이 한나라 가법을 시행해야 나라가 장구할 수 있다는 건의를 받아들여 한족의 제도와 사상ㆍ문물을 수용했다. 이에 따라 원대의 역은 한대의 송역이 그대로 계승되었다. 원나라 오징은 근고(近古)시기에 유가도통(道統)이 전해져 내려온 4단계를 언급하며 `주돈이가 원(元)이고, 이정과 장재(장횡거)는 형(亨)이며, 주희는 이(利)이니 누가 금일의 정(貞)인가`라고 했다. 이는 주학을 정통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주돈이ㆍ정이ㆍ장재ㆍ주희의 계보가 공인되어 주학의 정통지위가 확립되어 역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때 나온 역서로 볼 때 원대역은 대개 네 단계로 나뉘어 역에 대한 연구경향을 보였다.

첫째는 정이와 주희를 겸하여 종주로 삼는 경향이다. 주희역학 가운데 상수의 내용을 따름으로써 의리파 역학과 상수파 역학을 절충하는 식이다. 이로써 원대는 정주를 종주로 삼는다고 표방하여 정이와 주희 두 학파의 균형을 견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둘째는 주희를 종주로 삼는 경향이다. 주희의 역학 중에 상수의 내용을 탐구하여 역의 본질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이는 왕필의 순수의리 역학에 대한 반동으로, 전적으로 의리만을 궁구하지 않고 복서(卜筮)로 괘효사를 해석하는 주희의 역해를 추종한다는 뜻이다. 이경향의 역학자로는 <오경찬언>을 저술한 원대 최고역학자 오징(吳澄)이다. 그의 역학은 수(數)로써 일체를 해석함으로써 소강절의 상수학과 마찬가지로 신비적이고 다소 황당한 색채를 띠게 되었다. 그는 주희의 이론을 계승하여 우주의 본원은 태극이며 이 태극이 음양 2기를 낳아 만물을 화생(化生)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셋째는 한역과 왕필의 의리역을 절충해야 한다는 경향이다. <주역본의통석>을 쓴 호병문과 <주역본의집성>을 쓴 응량보가 주장한 견해이다. 이들은 모두 주희의 역학을 오른쪽 날개로 삼아 `정이와 주희` 또는 `정이와 소강절`을 하나로 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넷째는 순수하게 의리로만 역을 해설한 경향이다. 수를 생략하고 이를 주로 한 저서들이 나왔는데 증관의<역학변통>은 왕필의 의리파논법을 계승하면서도 상수파의 호체설도 취해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를 밝히는데 치중했다. 이처럼 원대의 역은 주학의 영향을 깊이 받아 의리와 상수를 겸하여 해석함으로써 송대의 한역을 그대로 계승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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