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2:39 (토)
문화예술의 진정한 힘을 알게 해준 친구
문화예술의 진정한 힘을 알게 해준 친구
  • 황원식 기자
  • 승인 2022.04.12 23: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원식 사회부 기자
황원식 사회부 기자

문화예술의 역할에는 `힐링`의 기능이 있다고 한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에게 문화 공연과 전시, 예술 활동이 실제 상처를 치유하는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실제 영국에서는 세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적극적으로 문화예술 장려 정책을 펼쳤다고 한다. 문화예술이 가진 힐링 기능을 한 친구를 통해 직접 경험해본 적 있다. 그 친구는 중고등학교 동창인 창원 남양동에 사는 `김민수`이다. 그렇게 친하지도, 안 친한 것도 아닌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7년 전 취업 준비를 하며 도서관을 전전하던 시기에 그 친구를 다시 보게 됐다. 당시 풀이 죽어 있던 상태였고 자신감이 없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 반갑게 인사를 했고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 당시 그 친구도 나와 같이 오랜 기간 백수였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 친구의 표정과 행동이 너무 밝아 의아했었다. 생각해보니 그 친구는 우리가 90년대에 HOT와 같은 아이돌을 좋아할 때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즐겨 듣고, 마이클잭슨, 영국 밴드 퀸 등 그 당시 서양의 다양한 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다시 그와 친해지고 나자 그는 정말 다양한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됐다. 매일 미술관, 전시회, 지역 행사 등으로 나를 이끌었다. 당시에는 뭘 해야 할지 모르던 시기였고, 그저 활발했던 친구의 제안에 곧잘 응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세상에 소외받았던 느낌을 받았는데, 그 친구와 가는 웅장했던 공연 장소마다 우리를 반겼으며, 우리가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또한 세상에 잘 찾아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있고, 그것도 공짜로 누릴 수 있는 행사도 많았고, 문화의 소비자로서 당당해 질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어쩌면 우울함과 무기력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느낌이 바로 `새로움`이 아닐까. 마케팅을 전공한 민수는 새로 생긴 음식점과 커피숍 등을 방문하며 도시의 변화를 체감하는 것을 좋아했다. 현실을 생각하면 우울하다가도 민수가 새로 생긴 가게를 소개하며 "오늘 한번 가볼까?"란 말 한마디에 힘이 났다. 매일 똑같은 도시와 시선 속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까지 했다.

기차 타고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민수는 돈이 없는 이유도 있겠지만, 꼭 멀리까지 떠나지 않았다. 근처 경남만 둘러봐도 충분히 새로운 장소들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새로 건설되기 시작한 진해 용원, 양산의 물금, 김해 장유에서도 전혀 다른 도시의 느낌을 맛볼 수 있었다. 심지어 매일 보는 도시 안에서도 각각의 골목이 주는 다른 느낌을 알 수 있었다. 도시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민수를 통해 조금이라도 얻게 됐다.

인문학이 주는 힐링은 `스토리`에도 있는 것 같다. 그 친구와 대화를 하면 모르는 것이 없었고, 어느 순간 그의 이야기에 빠져 있는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가령, 어느 날 TV를 보다가 미국의 시카고 도시가 나온다면, 민수는 `시카고 불스`라는 농구팀의 역사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시카고의 낙농업과 역사까지 줄줄 꿰고 있었다. 그러면 언제든 즐거운 대화와 이야기가 연결되는 것이다. 마치 요즘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asmr을 듣고 있는 편안한 기분도 든다. 공부하는 학생이나 학자, 혹은 정치인도 아니면서 도시계획에 관한 책이나 메타버스, AI, 예술에 관한 책을 10권씩 빌려나오는 친구가 어떤 때는 이해가 안가기도 하지만 백수에겐 냉혹하고, 그들을 소외시키기 좋아하는 이 세상에서도 당당히 주인으로 살아가는 듯해서 자랑스럽기도 하다. 현재까지도 이 친구와 자주 만나고 친하게 지내며 계속해서 힐링을 얻는다. 지금 생각해도 만약 그때 그 친구를 알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