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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시대의 역학
송나라 시대의 역학
  • 이 지산
  • 승인 2022.04.06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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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역설 <志山易說> 주역 연구가 이 지산

송대는 중국 고대철학사상발전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로 중국 역학발전사에서 가장 역이 번성한 시기였다. 남북송시대의 리학파(理學派)들은 거의 다 주역을 빌어 전(傳)이나 주(注)를 지었다. 송대 역학발흥의 원인으로는 그 시대적 상황이 봉건사회의 모순이 심화되어 지배계급에 대한 농민들의 잦은 봉기와 함께 북방이민족의 침탈이 반복됨으로써 국가통치에 심각한 위협을 가했다. 이처럼 내우외환에 직면한 상황에서 당시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사상적 무기를 찾아 나서게 된 것이 송대 역학흥성의 계기가 되었다. 이에 따라 송대 역학은 사회적 역사적 원인으로 리학이 정교하고 치밀하게 이론적으로 발전하였다. 당나라 때 불교 화엄종과 선종은 철학사상사에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정통을 자처하는 유가들은 유학의 지배적 지위에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석로사상(釋老思想)을 극력 배격했다. 유학자들은 오직 주역을 빌려 자신들의 사상적 철학적 인생관의 기조로 삼았다. 송대 역학의 기본적인 특징은 <역경>에 온축된 철리탐구를 위해 <역경>의 의리를 천명하는 일을 종지(宗旨)로 삼아 주역의 원리를 고도로 철리화(哲理化)했다. 송대의 상수학파는 <역경>의 철리를 탐구함에 있어 하도와 낙서의 수를 해석하는 근원문제인 태극설과 상(象)과 수(數)에 근거한 수리로 역을 해석하였다. 그러나 송대 상수파는 위진수당 시대와는 달리 음양재이(陰陽災異)와 천인감응(天人感應)의 미신적 요소를 배격하고, 상수학의 형성과 변화모델 탐구에 중점을 두어 철리화된 학문으로 발전시켰다.

북송의 상수파는 도서학파로서 진단(진희이), 종방, 목수, 이지재 등을 거쳐 주돈이, 소강절 같은 걸출한 상수학자가 출현함으로써 송대 상수역학의 대 흥성기를 맞았다.

한편 북송의 의리역학파는 상수를 역 해석에서 축출하고 주역을 현학적으로 해석하는 의리를 중시했다. 그러나 의리학파의 시조인 왕필의 학풍과 일맥상통하지만 의리역 의 해석은 서로 달랐다. 왕필은 노장으로 역을 해석했지만, 정이(정이천)는 노장현학을 역리해석에서 근본적으로 배격했다. 정이로 대표되는 북송의 의리학파는 장재(장횡거), 섭적 등 실용적 학풍을 중시하는 의리파로 취의(取義)와 상수(象數)를 겸수하는 관점을 보였다. 역학발전사를 개관할 때 주역의 변화도를 개

창한 것은 왕필, 한강백, 공영달의 <주역정의>가 그 단서이며, 정이의<역전>과 주희의<주자어류>와 <주역본의>에 의해 주역해석의 양대 중심이론으로 정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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