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5:20 (금)
테세우스의 배
테세우스의 배
  • 허성원
  • 승인 2022.04.05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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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의 여시아해(如是我解)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그들이 다시 뭉쳤다. 수년 전 멘토링을 했던 스타트업 멤버들이다. 당시 일의 진척이 더디자 팀을 해체하였다가 이번에 미련을 되살려 다시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비즈니스모델과 멤버가 동일하니 회사 이름도 그대로 쓰기로 하였다. 그런데 논쟁거리가 불거졌다. 이 새 회사가 처음 회사와 동일한지 여부를 두고 미묘한 의견차가 생긴 것이다. 동일하다면 과거의 지분, 기여도 등을 고려하여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백지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논쟁이 약 2000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도 있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는 다음과 같은 화두가 있다.

"테세우스와 아테네의 젊은이들이 타고 돌아온 배는 서른 개의 노가 설치되어 있었고, 아테네인들은 그 배를 데메트리오스 팔레레우스의 시대까지 보존하였다. 그들은 삭은 헌 널빤지를 뜯어내고 튼튼한 새 목재로 교체하였다. 그러자 이 배는 철학자들 사이에서 `생장하는 것들에 대한 논리학적 의문`의 살아있는 사례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배가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다른 이들은 배가 다른 것이 되었다고 논박하였다." 테세우스는 아테네 최고의 영웅으로서, 크레타 미노스왕의 미궁에 있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제물로 바쳐진 아테네의 청년들을 구출하여 돌아온다. 그 영광을 기리기 위해 당시의 배를 전시해두고 세월에 따라 삭은 널빤지를 하나씩 교체하였다. 그렇게 일부가 교체된 배는 테세우스의 배가 맞는가? 그렇다면, 세월이 더욱 흘러 널빤지가 모두 교체되었을 때 여전히 그렇다고 할 수 있는가?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 사람이 있다. 영국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이렇게 물었다. 한 수집가가 교체된 헌 널빤지를 빠짐없이 모았고, 모두 모였을 때 다시 조립하여 배를 완성하였다고 하자. 그러면 이 수집가의 배는 테세우스의 배인가? 홉스는 배의 본질이 지속되었는지를 기준으로 이 문제를 판단하였다. 존재의 단절이 있었다면 정체성을 잃었다고 보는 것이다. 배의 본질은 그 외관 형상과 기능에 있으며, 전시된 배는 비록 변화는 있으되 존재를 지속하며 본질을 지켰다. 그래서 테세우스의 배로 인정된다. 그러나 수집가의 배는 헌 널빤지들이 모두 모일 때까지 상당 기간 그 본질과 존재가 단절되었다. 그러기에 테세우스의 배로 인정될 수 없다. 여기서 모든 `존재`는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물은 유전(流轉)`(`panta rhei` _ 헤라클레이토스)하기에 변하지 않는 것은 존재할 수 없으며, 그래서 곧 존재의 단절은 변화의 단절이며, 변화가 있기에 존재가 증명되는 것이다.

이 논리는 기업과 같은 조직에도 적용된다. 조직도 변화한다. 시간이 흐르면 구성원, 자산, 핵심역량이 바뀐다. 그럼에도 동일성이 인정되는 것은 그 존재가 단절 없이 유지하면서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서두에 언급한 새로운 스타트업은, 수집가가 조립한 테세우스의 배처럼 존재 및 변화가 단절되었다. 그러기에 새 회사는 처음 회사와는 다른 조직으로 보아야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몸은 쉬지 않고 신진대사를 수행한다. 몸의 세포는 약 7년이면 모두 대체된다. `7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물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존재이며, 지적 정신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다. 그럼에도 `나`의 동일성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으며, 과거의 책임이나 권리와 의무를 여전히 나의 것으로 본다. 그것은 인간의 본질인 `정신활동`이 단절 없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를 컴퓨터에 연결하여 마음과 생각을 업로딩하는 소위 마인드 업로딩이 30년 내에 현실화될 것이라 한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의 궁극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이 기술은 인간을 컴퓨터 속에서 영생불멸하도록 만들어줄 것이다. 그러면 컴퓨터에 업로딩된 `나`는 정말 `나`일까? `테세우스의 배`의 논리는 당연히 부정한다. `나`라는 존재는 매 순간 끊임없이 느끼고 배우며 생장하고 노화하면서 변한다. 그러기에 `살아있다`고 정의되는 것이다. 아무리 완벽히 복사하더라도 `저장된 마음`은 저장 당시 그 순간의 상태에 불과하다. `삶`의 변화가 단절된 것은 진정한 `나`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머잖아 그런 가짜 `나`가 활발히 활동하는 세상이 오게 된다. 가짜 `나`는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두고 번민하면서, `테세우스의 배`를 거론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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