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7:35 (금)
가야불교의 가치와 전망 ② 역사왜곡 막는 수문장
가야불교의 가치와 전망 ② 역사왜곡 막는 수문장
  • 도명스님
  • 승인 2022.04.0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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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스님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스님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동북아시아는 지금 역사 전쟁 중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치열한 역사 내전(內戰)을 치르고 있다. 밖으로 한, 중, 일 역사 전쟁의 대표적인 것이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 왜곡이다. 그리고 안으로는 고조선의 강역과 단군의 실재 그리고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임나의 위치에 대한 해석을 두고 주류의 강단 사학계와 민족사학계가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다.

중국의 우리 역사에 대한 침탈은 중국 정부가 주도한 5대 역사 공정 중, 중화 문명의 원류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태호 복희, 염제 신농, 치우천황 등 동이족의 조상들을 자기 조상으로 둔갑시킨 `중화문명 탐원공정(探源工程)`이 있다. 그리고 우리 역사인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의 지방사로 편입시킨 동북공정(東北工程)이 있다.

일본의 역사 침탈에는 독도 영유권과 위안부 문제 그리고 일제 침략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던 정한론과 그 대표적 사례인 `임나일본부`가 있다. 이러한 역사 왜곡을 침략의 도구로 활용하는 예가 얼마 전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현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만든 것이다. 1917년 볼세비키 혁명 후 소비에트에서 국가와 국명을 주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10세기부터 독자 세력의 공동체를 형성해 민족 정체성을 오랫동안 형성한 역사적 실체를 가진 국가이다. 하지만 그는 역사를 왜곡해 우크라이나는 원래 러시아의 속국이었다는 명분으로 침략을 감행하였다.

한편 현재 일본의 초ㆍ중ㆍ고의 청소년 교과서의 지도와 내용에 직, 간접적으로 다시 임나일본부가 등장했다. 여전히 일본은 고대 한반도 남부가 자신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는 그룻된 논리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한반도 침략을 명분으로 삼는 `임나일본부`는 역사서의 기본인 기년도 제대로 맞지 않는 `일본서기`를 근거로 서기 4세기 중엽부터 200여 년간 한반도 남부를 점령하고 임나 7국 등을 세웠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이미 역사적 정당성을 잃었고 일본에 최초로 문명을 전파한 이들이 가야인들임은 일본에 남아있는 유적과 유물이 말해 주고 있다. 일본에 문명을 전파한 선진 제국인 가야를 인정한다면 `정한론`이라는 침략의 명분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었다. 그래서 일제는 일본열도에 있는 임나를 가야에 억지로 확정하고 임나를 세우기 위해 가야를 약화시키는 전략을 사용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가야 초기와 관련된 모든 분야의 기록을 지우려 했고 이후 완성된 `임나일본부설`은 한반도 침략의 명분으로 적극 활용된다. 그러나 이처럼 가야 초기와 관련한 그 어떤 내용이든 역사성이 입증되면 가야는 우뚝하게 세워지고 그들이 꿈꾸는 임나일본부설은 설 자리가 없어지기 마련이었다.

일제는 쓰다 소키치를 비롯한 식민 사학자들을 내세워 가야사를 유린했고 그들에게 영향받은 이병도 박사는 1962년 <수로왕고>, 1963년 <수로왕릉고>를 통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가야 초기 기록을 불신하는 논리를 만들었다. 그는 서기 42년이라는 가야 건국 절대년도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고 수로왕을 원시 부족국가의 우두머리인 군장(君長)으로 폄하했으며 시조가 아닌 중시조(中始祖)로 격하하였다. 또한 수로왕의 무덤을 뚜렷한 근거 없이 현재의 서상동의 왕릉이 아닌 동상동 연화사(蓮花寺) 사내 `궁허지(宮墟址)의 사면 석축`으로 추정했다.

이처럼 이병도 박사가 수로왕과 관련한 가야 초기 기록들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였는데 문제는 여전히 역사학계가 가야불교 관련 내용을 포함해 가야의 초기 기록들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류 사학계에는 여전히 수로왕의 가야 건국연대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그의 부인 허왕후도 실존을 의심하고 있다. 특히 장유화상의 경우 실재하지 않는 인물로 치부했다. 장유라는 지명과 장유화상사리탑이 있는 장유사와 신재 주세붕의 <장유사중창기>도 있지만 <가락국기>에 장유화상이 왔다는 기록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부정한다.

지금 역사를 둘러싼 여러 문제의 대척점에 가야가 있다. 가야사는 가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가야불교는 종교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야와 가야불교가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은 가야불교를 통해 가야 초기를 재구(再構)할 수 있으며 이는 가야사의 정립으로 이어진다.

가야사가 바로 서는 순간 임나일본부를 비롯한 일본의 역사 왜곡은 사라지고 그 기세가 북쪽으로 올라가 반도사관을 몰아내고 중국의 동북공정과 역사 침탈을 막는 든든한 수문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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