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02:10 (금)
내 책을 불태워라
내 책을 불태워라
  • 이광수
  • 승인 2022.04.03 22: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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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좁은 땅덩어리에 5200만 명이 북적대며 사는 한국인의 일상은 치열한 경쟁의 연속이다. 갈수록 인심은 팍팍해지고 빈부격차는 커지고 있다. 우국지사를 참칭하는 정치인들의 국민통합 구호는 메아리 없는 허사로 떠돌 뿐이다. 좁쌀처럼 작은 권력을 쥔 자는 몇 푼의 은전으로 입에 재갈을 물리고 이에 저항하는 자의 반발과 투쟁은 되풀이된다. 겉으로 고상한 척하면서 재물과 권력과 명예에 쪽을 못 쓰는 소인배들은 죽기 살기로 상대방 흠집 내기에 혈안이다. 양심의 소리에 귀 막은 정의수호의 최후보루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권력을 감시한다는 시민단체는 자신의 이익을 쫓아 좌고우면 한다. 금권에 눈멀어 영혼을 판 이들이 언필칭 자유와 정의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처럼 양심을 저버리고 면후흑심(面厚黑心)한 자들에게 대오각성의 죽비를 내리친 위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분서(焚書)>를 쓴 중국 명말의 이탁오(李卓吾)이다. 그는 중국 복건성 천주출신으로 천성이 자유분방하여 구속을 싫어하고 모난 성격이었다. 본명이 이지(李贄)인 탁오는 26세 때 향시 거인(擧人)에 등과해 벼슬길에 올랐으나 강직한 성격 탓에 관직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변방을 전전한 지 25년 만에 4품인 부(府)의 지방장관이 되었다. 그러나 부패한 권력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54세 때 관직생활을 청산했다.(강성현, 백가쟁명 이탁오) 이탁오는 40대에 당시 발흥했던 양명학에 눈을 떠 지행합일(知行合一)과 양지(良知)의 개념 궁구에 몰두했다. 그는 청렴한 관직생활로 부인과 4남 3녀를 근사하기에도 벅차 가난을 숙명처럼 달고 살았다. 가족들도 큰 딸을 제외하고는 물에 빠져 죽거나, 병들어 죽고, 굶주려 죽었으니 기구한 운명의 인생사였다. 사직 후 호북성 황안에서 `천태서원`을 열어 훈장 노릇을 하며 지냈다. 그러나 그곳 생활도 지역 대지주와 고관과의 불화로 마찰을 빚었다. `도부동 불상위모(道不同 不相爲謀)`라는 <논어> 위공령의 말처럼 지향하는 바가 다른 그들의 학문과는 타협할 수 없었다. 그는 학문을 입신출세의 수단으로 삼는 거짓 유학자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꼈다.

 62세에 불도에 입문한 그는 공자사상의 유일 독존만 주장한 유가들의 전제와 반상신분의 차별, 남존여비사상 등 불평등한 제도에 대해 반박했다. 그는 불성(佛性)과 만인평등, 양심과 자유, 동심(童心)의 보존과 회복을 강조했다. 사람의 욕구를 긍정하고 남녀 간 애정의 자연스러움을 설파하며 `사람마다 모두가 성인이요 부처`라는 왕양명의 가르침을 전파했다. 이에 수많은 추종자들이 그의 강연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는 64세에 중국 3대기서(奇書)의 하나인 <분서(焚書)>를 간행했다. <분서>는 그가 지인이나 제자와 주고받은 편지와 토론 및 각종 문답 내용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그는 서문에서 `…그 책 속에서 논한 내용 가운데 근래 학자들의 고질인 결정적인 병폐를 깊이 파고들어 자극한 것이 많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는다면 그들은 반드시 나를 죽이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태워버리려는 것이다. 하나도 남기지 말고 태워버리는 것이 좋겠다….` 그 후 73세 때 68권 분량의 대작 <장서(藏書)>를 출간했다. 전국시대부터 원대말까지 800여 명의 인물을 세기 9권, 열전 59권으로 묶은 기전체 역사서이다. 기존의 세가와 유가열전을 비판적 시각으로 재평가했다.

 그러나 그의 그침 없는 유가비판은 사문난적(斯文亂賊)의 이단으로 몰려 혹세무민죄(惑世誣民罪)로 체포돼 옥에 갇혔다. 영어의 신세로 울분을 삭이지 못한 그는 이발하러 옥안으로 들어온 시종의 면도칼을 빼앗아 스스로 목을 그어 자결했다. 그의 나이 76세 때이다. 그는 공자를 존중했지만 공자를 팔아먹고사는 유학자, 사대부, 관료집단을 경멸하며 유교의 전제에 강하게 맞섰다. 환관에게 아첨하고 굴종하는 재상들을 향해 `환관의 노예`라고 힐난했다. 이로써 그는 공공의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탁오 평전>의 겉표지와 라벨카피가 무척 의미심장하다. `내 책을 불태워라! 중국사상사 최대의 이단아 이탁오, <장서>는 감추지 못했고, <분서>는 태우지 못했으며, <설서>는 다 말하지 못했다.`, `나이 오십 전까지 나는 한 마리 개였다. 앞에 있는 개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같이 따라서 짖어대던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이 시대의 지성이라 자부하는 학자, 정치가, 관료들이여! 그대들은 과연 양심에 따라 소신껏 말하고 행동하는가. 어느 평자의 말처럼 이지는 비록 까막까치 철새 떼에 몰려 비명에 갔지만 그의 내면세계는 풍요로웠을 것이다. 권력과 재물과 명예의 노예로 살다가 회한에 찬 생을 마감하는 우리들에게 그의 고독한 외침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엄혹한 세상에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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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2-04-04 16:39:38
이단이나 반골이 나타나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중에, 엄격한 제재를 하거나 혹평하거나, 서양의 경우 종교재판을 통하여 화형식도 거행해온게 인류 역사임. 이슬람은 돌로 치는 형벌도 유지해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