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메시 프로젝트`
`길가메시 프로젝트`
  • 허성원
  • 승인 2022.03.2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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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의 여시아해(如是我解)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봄이다. 아침 산책길의 벚꽃은 팝콘처럼 터지고 목련은 벌써 화사하고 동박새 소리는 경쾌하다. 만물이 생명을 노래하는 이 밝은 때에도 우리는 음울한 죽음과 질병을 마냥 잊어버리지 못한다. 세계적인 미남 배우였던 알랭 들롱의 안락사 뉴스에 스스로 삶을 거두어야 할 선택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의 애먼 죽음들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한다. 지난 며칠간은 병원에서 무거운 마음으로 가족의 곁을 지키기도 했다. 병과 죽음은 진정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죽음을 초월하여 영생불멸을 누리게 될 거라고 감히 예견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금 40세 미만의 사람들에겐 현실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불멸을 추구하는 그런 노력을 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길가메시 프로젝트`라 부른다.

길가메시는 기원전 28세기경 수메르 지역의 우루크를 지배한 강력한 힘을 가진 왕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 엔키두가 병에 걸려 죽자 그 시신을 안고 오랫동안 슬퍼하다가, 시신에서 나오는 벌레를 보고 공포를 느껴 자신은 결코 죽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죽음을 물리칠 방법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 온갖 고초를 겪으며 불로초를 구하지만 결국 잃어버리고 빈손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인간은 창조될 때부터 죽음이 필연적인 숙명이며 그 숙명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길가메시는 실패하였지만, 그가 추구했던 영생불멸의 `길가메시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목표가 너무 멀고 높은 듯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인간이 이룩한 엄청난 의학적 성과를 보면 나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치명적인 질병이 극복되었고 그와 더불어 인간의 수명도 비약적으로 길어졌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죽음이란 그저 해결해야 할 기술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어떤 질병이라도 미래의 인간은 결국 그 치료나 예방 방법을 찾아내고 말 것이다. 인체의 노화도 유전공학의 발전으로 그 진행을 늦추거나 반전하여 회춘될 수 있다. 심장 등 장기가 적절히 가동되지 않으면 기계나 새것으로 교체하면 된다. 인체 장기의 3D프린팅 기술도 상당히 진전되고 있다. 그렇게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가다 보면, 인체의 많은 부분이 인공의 것으로 대체되면서 인간은 불멸의 사이보그가 되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생물학적인 육체가 없는 삶도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래인류는 마인드업로딩 기술에 의해 기계화될 것이고, 그러면 호모사피엔스는 생물학적 죽음 이후에도 영생과 여러 개의 삶을 누리는 신인류 호모옵티머스로 진화할 것이다." 미래학자 이안 피어슨 박사의 말이다. 마인드업로딩은 사람의 마음을 디지털화하여 컴퓨터 혹은 사이버 공간에 저장하는 기술로서 10년 내지 30년 내에 성공할 것이라 한다. 이는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의 주 연구과제이기도 하다. 인간의 마음이 컴퓨터 내에 저장되어 그곳에서 생각하고 의사 표현을 하며 살게(?) 된다. 원하면 인조인간 안드로이드에 다운로드되어 현실 세상을 버젓이 돌아다니며 활동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안드로이드에 혹은 안드로이드 하나에 여러 명이 탑재되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 뭔가 찜찜하고 불안하다.

불멸은 신의 것이다. 인간은 드디어 신의 경지를 넘보게 되었다. 신이 되는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 삶은 과연 행복할까? 영원히 산다면 매 순간을 열심히 살 이유가 있을까. 마치 돌아가야 할 집이 없는 영원한 여행과 같을 것이다. 그것은 방황이다. 골목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은 어둠이 내리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모든 순간순간이 절절히 즐겁고 행복하다. 정처 없는 방황이나 무한히 허용된 골목놀이에는 아무런 의욕도 즐거움도 없다. 영생의 삶이 그러하리라. 희망도 욕망도 없는 지루하기만 한 삶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유발 하라리는 그런 미래인류에 대해 이렇게 우려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는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영화 `트로이`에서 아킬레스는 브리세이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신은 인간을 질투하고 있어. 인간에게는 죽음이 있거든. 우리는 늘 마지막 순간을 사는 거야. 그래서 모든 게 더욱 아름다운거지.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지금 이 순간의 네가 가장 사랑스러워 우리에게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아." 지루한 신의 영원을 살 것인가, 차라리 신의 질투를 받으며 짧지만 아름답고 다부지게 살다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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