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부 조세창고 등을 창건ㆍ중건
김해부 조세창고 등을 창건ㆍ중건
  • 최학삼
  • 승인 2022.03.24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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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부사 이야기
최학삼 김해대교수 사회복지상담과
최학삼 김해대교수 사회복지상담과

평상시 조세와 군기의 관리는 지방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김해부사도 예외일 수 없었을 것이다. 김해의 조세창고 및 군기고를 창건 및 중건한 김해부사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또한, 관련 김해부사를 확인하지 못한 주요 창고의 내용도 검토해 보고자 한다.

◇강창 김해읍성의 서쪽 해반천의 하류인 강창포에 있었으며, 김해부의 조곡을 모아 두는 창고였다.

◇진휼창 흉년에 궁민을 구제하기 위한 구호곡을 모아 뒀다.

◇설창 현종 7년(1666년) 김 성 부사가 중북촌에 창건했다.

청천, 하계, 중북, 상북, 하북 각 면의 세곡을 수납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화포천가에 세곡을 모아 쌓아 뒀다.

◇불암창 조선 초기 및 중기에 도내의 공부(조세현물)를 수납하는 조세창고였다. 경남에는 마산 합포창, 사천 통양창도 있었다. 이러한 조세 창고를 조창이라고 하였다. 불암창이 있던 김해시 불암동에는 조전성이 있어 조세창고인 불암창을 경비했다.

◇산산창 영조 20년(1744년) 산산창을 세워 명지도의 소금 굽는(자염생산) 염간을 상대로 소금 2석을 쌀 1석과 교환해주는 소금을 저장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산산창 별장을 두고 염정을 전관하게 하다가 뒤에 김해부사의 소관이 됐다. 영조 39년(1763년)에는 다시 감영(관찰사)에서 담당하도록 됐으며, 매년 이곳의 창미 1500석을 염간의 식량으로 나눠주고, 소금은 매년 봄에 2000석, 가을에 1000석을 모아서 낙동강상류에 싣고 가서 판매하도록 했다. 공염발매 전에는 사상이 소금매매를 금지했기 때문의 연강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보민창 보민창은 숙종 때 민원중 김해부사가 부사로 배임할 때 창설했다. 보민창은 보민고의 이전 이름이다. 조선 후기에 각 지방에서 전세 이외의 잡역 및 기타 관청의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설치된 민고라는 재정기구가 있었는데, 보민고, 대동고, 고마고 등으로 불려졌다.

◇산창 부동 30리 지점에 있었던 창고로서 동래의 금정산성과 대치하고 있었다.

◇수창 수창에 대해 이병태(2002)의 「김해지리지(국역판)」에는 짚단의 창고로 기록돼 있다. 인조 24년(1646년) 이상경 부사가 부아의 동쪽에 새로 지었다. 그러나 이병태(2001)의 「국역 김해읍지」 공해 조의 수창에는 짚단 창고라는 기록은 없고 다른 내용은 동일하게 기록돼 있다. 이와 관련해 민긍기(2014)의 「역주 김해읍지」 창고 조에는 읍창에 대한 주석으로 `읍창`은 김해시 회현동이 속한 서상동에 있던 창고이다. 읍창이란 망은 본래 관아에 속해 있는 창고를 뜻하나 여기서는 관아의 대표적인 창고라는 뜻으로 사용된 듯하다. 본래 곡식을 쌓아 두는 뜻으로 수차라고 불리던 것이 점차 읍성으로 불렸던 것으로 생각된다. 「여지도서」를 보면 읍창 대신에 수창이 등장한다. 수창은 조선 인조 24년(1646년)에 `부사 이상경이 세웠다`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같은 책 공해 조에도 수창은 `부의 아사 동쪽에 있으며 부사 이상경이 병술년(인조 24년(1646년))에 지었다`로 기록하고 있다.

◇대동청 김해부 아사의 북쪽에 있었는데 광해군 6년 홍 걸 부사가 처음 건립했고, 고사도 함께 지었다.

한편, 「김해인물지」 역대지방관록에 정재용 부사가 재임 중에 본해설 3창을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3창이라는 의미는 세 개의 창고라는 의미일 것이며, 해창과 설창 그리고 김해부의 중심이 되는 창고를 의미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해창 수군이 군기를 보관하기 위한 창고로서 효종 즉위년(1649년) 박경지 부사가 창건했다.

「김해인물지」 역대지방관록에서는 김 성 부사가 해창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수어창지 옛날 남한산성에 있던 수어청에 상납하는 곡식을 보관하던 곳이다. 고종 3년(1866년) 읍지에 의하면 남한수어영납의승방답전 154양내 77양편분리전 상중하, 지소77양 상진조가분모 77석회감작전 10월 상납 본창색 공례방으로 나와 있다.

◇도호선창 동오개, 도선이라고 부르며 김해 도호부의 선창이었다.

◇군기방 김해 객관의 북쪽에 있었으며, 선조 37년(1604년) 원사립 부서가 창건했다. 인조 5년(1627년) 조 즙 부사가 중수, 효종 즉위년(1649년) 박경지 부사가 동서의 고서를 지었다. 집기고 4간과 화약고 3간이 있었다.

◇대변청 해창의 남방에 있었다. 인조 24년(1646년) 이상경 부사가 창건해 전함과 군기를 비치해 효종 즉위년(1649년) 박경지 부사가 전선 1척과 군기를 갖추었다. 이곳에는 황자호전선 1척과 병선 1척, 사후선 2척이 있었다.

◇주사화약고 영조 4년(1728년) 실화해 군기와 화야기 모두 소실됐으므로 홍덕망 부사가 다시 중창했다.

사창 조선시대 때 환곡을 쌓아두던 창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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