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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불교의 성격④ 힌두이즘과 호국불교
가야불교의 성격④ 힌두이즘과 호국불교
  • 도명 스님
  • 승인 2022.03.21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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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 스님 산 사 정 담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전 세계에서 가장 영적인 나라가 어디냐고 물으면 많은 이들이 인도라고 답한다. 인도는 불교와 힌두교, 자이나교라는 종교뿐 아니라 다양한 철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힌두교로 발전한 바라문교는 불교 이전부터 나라 전체에 퍼져 인도의 보편적 종교가 되어 있었다. 바라문교는 불교가 성립된 후에도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소통하면서 교류했다.

 그리하여 불교의 공론(空論), 무아론(無我論) 등의 고급교리가 힌두교에 영향을 주었고, 힌두교의 여러 신들과 다라니(주문) 등은 불교로 건너와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이처럼 종교는 본래의 특질 외에도 다양한 외부 요소를 포섭한다.

 우리의 전통 풍속의 하나인 남근, 여근 신앙처럼 인도에는 `링가`와 `요니`라는 토속신앙이 있는데 링가는 남성성, 요니는 여성성을 상징하는 석물이다. 공교롭게도 장유사, 부은사, 모은암, 흥국사, 만어사 등의 가야불교와 관련한 사찰들에서는 아직도 인도 힌두이즘의 흔적인 요니와 링가가 남아 있다.

 장유사 법당 앞마당에는 작은 돌절구처럼 보이는 석물이 여러 개 있고 그 안에는 둥그런 돌이 들어 있다. 동국대 세계불교연구소의 정진원 박사는 이것이 요니와 링가의 원시 형태라고 말하였다. 부은사 용왕당 옆에도 요니와 링가가 있는데 요니는 완벽한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지만 링가는 본래의 것은 분실하여 다른 돌로 대체하였다. 부은사의 요니는 얼핏 보면 맷돌 같다. 하지만 이 요니가 맷돌과 다른 점은 석물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있으며 바로 이 구멍이 링가가 들어가는 홈이다.

 모은암 동굴 나한전에도 나한 석상들 사이에 두 개의 돌이 있는데 그것 역시 링가이다.

 그리고 부산 강서구의 흥국사 미륵전에 가보면 미륵 부처님은 없고 돌 두 개만 덩그러니 있는데 그것이 링가이고, 돌 아래에서 1/3 지점의 색깔이 다른데 이는 링가가 요니에 박혀 있었던 흔적이다. 밀양 만어사 미륵전에 가면 고래 모양의 큰 바위가 있는데 그것 역시 링가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렇게 가야불교 관련 사찰에서 보이는 요니와 링가는 인도 힌두이즘의 토속신앙이 가야까지 영향을 미친 결과물로 보인다.

 한편 허왕후가 이 땅에 처음 도착해 명월산 산신에게 비단 바지를 벗어 폐백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풍속이다. 서울대학교에 교환교수로 왔었던 산토쉬 교수는 인도 북부 부다가야 주변의 소도시 `가야` 출신이다. 그의 고향인 북인도 지방에는 처녀가 시집가기 전에 자기가 입을 옷을 신에게 먼저 바치고 나서 착용하는 풍속이 남아있다고 한다. 다만 기록을 남기지 않는 인도인의 전통에 의해 문헌 기록을 찾기는 쉽지 않다고 하며 앞으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호국불교적 요소

 가야 초기 수로왕이 명월산에 지었다는 신국사, 진국사, 흥국사의 사명(寺名)에는 모두 나라 `국(國)`자가 들어간다. 이들 사찰의 이름은 `새로운 나라`, `안정된 나라`, `흥하는 나라`를 뜻하며 일종의 진호국가(鎭護國家) 사상이 반영된 호국불교(護國佛敎)의 요소로 해석된다. 또 신어산에 장유화상이 지은 서림사(西林寺)는 서쪽 인도의 부흥을 위해 지었고 동림사(東林寺)는 이 땅 가락국의 부흥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 또한, 화상이 나라의 부흥을 위해 창건했다고 전하는 흥부암(興府庵)도 있다. 이러한 사찰들의 건립은 수로왕과 장유화상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와 함께 <삼국유사> 「금관성 파사석탑조」에는 일연스님이 파사석탑을 보고 "탑실은 비단 돛에 깃발도 가벼워라, 놀란 파도 막고자 해신(海神)께 빌었도다. 어찌 황옥만 도와 이곳에 왔으리오, 천고(千古)의 남쪽 왜 성난 고래 막고자 함일세."라고 찬한 대목이 등장한다. 탑에 허황옥 공주의 안전한 항해를 기원했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왜구를 막는 상징 역할을 했다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 역시 호국불교의 성격을 가진다고 하겠다.

 기타그밖에 가야불교의 성격을 보면 연기사찰 가운데 부암(父庵), 모암(母庵), 자암(子庵)의 세 절은 가족과 관련한 이름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다른 지역 사찰에는 없는 특징이다.

 또한, 허왕후을 추모하는 왕후사(王后寺)와 수로왕을 기리는 성조암(聖祖庵)이라는 원찰(願刹)이 존재할 뿐 아니라 장유화상을 모시는 장유사(長遊寺)가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야불교의 주요 인물을 모시는 도량이 따로 창건될 정도로 후대인들이 이들의 존재를 소중하게 여겼다는 방증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기 48년 전래된 가야불교는 다양한 성격을 지닐뿐 아니라 보다 구체적으로 규명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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