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교 때 독서에 빠져 늦게 하교
`무서운 골짜기`서 등골이 오싹
엄마가 마중나와 날 부를 때
고단한 삶의 연속 알지 못해
사랑의 기억 꺼내는 힘은 용기
누군가를 기억하고, 또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것은 사랑 때문이라고 한다.
"봄은 겨울이 자라서 오는 거란다."어머니란 이름의 기억은 나에게 살아갈 힘을 주니 겨울이 자라서 봄이 온다던 그 철학을 기억하며 나는 날마다 아침에 그 말씀으로 주문을 건다.
나는 글자를 모르고 초등학교에 입학해 혀 짧은 짝꿍의 읽기를 따라 하면서 그 발음대로 읽곤 했었다. 5월 월말고사에서 예를 들면 나비 그림과 `나비`란 글자 줄 잇기 문제를 모두 틀렸다. 6월부터 글자를 잘 읽고 쓰게 돼 일취월장 발전해갔다. 2학년이 됐을 때 우리 반 교실은 학교 도서관 겸용이었고, `그림 동화집`, 태어나 처음으로 동화책을 읽었다. 그때부터 책에 빠져들기 시작해 책 읽을 때면 누가 불러도 진짜로 듣지 못해 자주 오해를 받기도 했다.
책을 들면 몰입되곤 했다. 글자 분간이 어려워 도저히 읽을 수 없을 때에야 비로소 해가 저물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였다. 그날도 책을 읽다가 어둠이 자리 잡은 뒤에야 학교를 나서니 겁이 덜컥 났다. 집까지 3㎞쯤 되는 길, 학교 주변 마을이 있어 다행이었다. 그다음 들길을 따라 마을 하나를 지나면 세 구비 산길을 돌아야 하고, 우리가 `무서운 골짜기`라고 불렀던 마지막 좁은 골짝을 지나면 산 아래에 외딴 방앗간 집이 있다. 무작정 달리는데 누가 잡아당기는 것만 같아 등골이 오싹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무서운 골짝은 정말 무서웠다. 오도 가도 못하고 있을 때였다. `거 성자가?`하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무서움이 사라졌다. 엄마한테 달려가 안겼다.
그날 기억 때문에 아무리 책이 재미있어도 밝을 때 일어서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어둠 사리를 깨닫고서야 교실을 나서는 때가 자주 있었고, 나는 그때마다 책 읽은 걸 후회하면서 무서움을 이기려고 노래를 크게 부르며 마구 달렸다. `저기쯤 엄마가 마중 오고 계실 거야.` 주문을 걸면 무서움이 덜해지는데 그것은 엄마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마중 나오셨기 때문이다. 내가 믿는 구석이 생겨버렸던 것이다. "책이 그렇게나 재미있더나?" 하시며 엄마는 한 번도 나무라지 않으셨다. 얼마나 철이 없었던지, 엄마가 힘드시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엄마는 힘든 들일을 마치고 저녁을 해 놓고 잡숫지도 않은 채 마중 오셨던 것이다.
엄마가 돼 보니 어머니보다 훨씬 편한 부모 역할임에도 참으로 힘든데 그 당시 어머니는 얼마나 고단하셨을까. 당신의 고단한 일생을 위로드리고 싶고 부족했던 효도를 후회하지만 내게 주어졌던 그 많았던 다음들, 미뤘던 효도, 다음이란 그 기회가 사라졌다.
사랑받고 보호받는다는 것, 그 사랑의 기억이 내 삶에 힘이 돼 주고 있다.
`기억`이란 것이 지난 일 안에 머물지 않고 늘 현재처럼 다가오는 게 다행스럽다. 2000년 전 가야를 기억하는 김해가 그렇다. 역사도, 나도, 저 풀잎도, 저 꽃도, 힘 돼 주는 기억 안에서 새로운 기억을 틔우며 미래로 흐르고 있다. 우리가 지닌 수많은 기억 중에서 힘이 돼 줄 기억을 꺼내는 게 바로 용기가 아닐까. 오늘도 나는 묻는다. 어떤 기억하십니까?